아기를 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뱃속에서 부터 시작된다. 태아에게 주는 조그만 관심은 사랑이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태어날 아기를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곤 하지만 정작 사랑을 나누어 주는 일엔 서툴다. 게다가 그 누구도 태아와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지 않는다.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랑이라는 녀석은 경제적 가치보다 훨씬 상위에 있다. 아버지의 작은 변화가 큰 결실로 돌아오는 것은 아이가 아버지를 좋아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좋아하는 자녀를 가진 가정은 더 이상 걱정이 없다. 자라서는 아버지를 존경하게 된다.
출산 교육을 받으러 온 남편들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한 단어로 표현해 보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런 화두를 던지는 이유는 태어날 아이와 아버지의 관계가 좀 더 긍정적이길 바라는 마음에 서다. 불쑥 던진 질문에 바로 대답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드물게 바로 긍정의 답을 주는 사람도 있고, 용기 내어 부정적인 답을 내미는 사람도 있다. 아무 대답이 없는 사람은 나와 눈 맞춤을 피하기도 한다. 머뭇거린다는 것은 자신이 없고 상처를 내어놓고 싶지 않다는 뜻이니 굳이 답을 해보라고 조르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번 쯤, 아니 계속해서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스스로가 어떤 아버지가 될까 고민을 던지게 하는 것이 목표다.
한 예비 아빠는 아버지를 '장롱 다리' 라고 표현했다. 장롱 다리의 의미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함께 참석한 다섯 명의 다른 예비 아빠들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치 깊은 곳에 꼭꼭 숨겨 놓았던 비밀을 고백한 듯 후련해 보였다. 몇 달 후면 똑같은 아버지가 될 그대는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냐고 다시 물었다.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어 보겠다고 말했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꼭 그 약속이 지켜 질 수 있도록 응원을 보냈다.
아버지를 이야기할 때 술주정과 폭력은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다. 성인이 되어 아버지가 되면서 어릴 적 자신이 자동으로 꺼내진다. 자신도 모르게 각인된 아버지의 성정이 튀어나올까 하는 두려움을 겪는다. 아버지의 좋지 않은 대물림도 끊어 내기를 원한다.
부모의 성정과 다르게 크고 싶지만 결국 닮아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부모의 성정을 넘어 자유로이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좀 더 멋지고, 고상하고, 찌질하지 않게 살려고 노력해도 어느 날 문득 부모보다 더 못해 보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생리학적으로 인간은 좋고 행복했던 기억보다 힘들고 화난 사건들을 더 오래 기억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자식들은 늘 부족했던 것만 기억한다. 어찌 보면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이 맞는 것도 같기도 하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자신의 아버지보다 한 단계 더 성숙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작지만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받기만 하는 사랑에서 주는 사랑을 알아 가는 부모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모든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아내가 아기를 품는 순간부터 깊숙이 잠자고 있던 사랑을 조금씩 꺼내보자..
사랑을 전하는 가장 하기 쉬운 방법은 뱃속 아기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아내와 이야기 하면서 아기 이름을 불러 주는 것처럼 좋은 것이도 없다. 태아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가끔 발을 차며 대답도 한다. 감격의 순간의 느낌을 글로 적어 남기는 것도 나중에 아이에게 주는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태중에서 들었던 노래를 아기들은 제일 좋아한다.
나의 어머니는 따지기를 좋아했다. 함께 장을 보러 갈 때 꼬치꼬치 따지는 어머니가 창피했었다. 안 사면 될 것을, 그냥 지나치면 될 것을, 어린 나는 가슴이 참 답답했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 어머니에게 훈수? 두듯 나무라기도 했었다. 어느 날 신기하게도 문득 어머니와 똑같은 내가 보였다. 지나쳐 생각하니 언성을 높일 일도 아니었고 그저 눈을 질끈 감았으면 조용했을 일에 예민해져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나름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 하며 일일이 따지시던 어머니가 내게도 들어 있었다. 조금 멈추고, 힘을 빼고, 조심스레 다가가기로 마음먹는다. 나에게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성급함을 없애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며 눈을 맞추는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자신감으로 차 있다. 어디에서나 당당하고 거리낌이 없다. 부모가 주는 신뢰와 사랑은 가정 밖에서 힘을 발휘한다. 부족해 보였던 자신의 부모보다 조금만 더 따듯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 만으로도 훌륭한 아버지가 된다. 당신은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