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산사 이야기
평생을 아기를 받았으면서도 산모가 입원하여 무사히 아기 낳을 때까지 내내 두렵다. 40년 동안 익숙해졌는데 뭘 죽는 소리를 하냐고들 하지만 진심으로, 진심으로 두렵다. 세상의 단 하나뿐인 생명을 내가 속속들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기가 태어날 때 까지 알고 있는 진정 방법들을 총동원 한다.
대부분의 산모들은 건강하다. 건강한 산모의 아기도 물론 건강하다. 문제는 건강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의 한계이다. 건강하다는 것의 범주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모든 생명들이 자손을 내어 놓는 것에 진심이라는 사실에 기댈 수밖에 없다.
두려움에 떨며 수많은 아기들을 받았다. 고맙게도 아기들은 자연의 섭리대로 스스로 태어났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는 위로와 기도였다. 나에게 주는 위로와 기도의 힘이 아기 낳는 여성에게도 전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산모의 배에 손을 대고 태동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빈다. 무사하거라. 용기 내거라. 잘 견디거라.
두려움 없이 아기를 받아내는 사람이 있을까?
명상을 배우러 인도로 떠났던 때가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오랜 시간 동안 가부좌로 앉아있었다.. 살면서 가만히 앉아 있었던 시간이 내게는 왜 없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만 있었다. 참 평화로웠다.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명상 선생님이 물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두려움들을 나열했다. 나는 출산을 도울 때라고 말했다. 안무서우려면 어찌해야 하냐고 물었다. 답은 아주 간단했다. 출산을 돕는 도중 느끼는 두려움은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두려움이라 했다. 그러니 부딪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고 했다. 두려움이 올 때 상대를 위로하라고 했다. 위로 하는 마음을 꺼내고 아기에게 용기를 주는 생각을 하라고 했다. 스믈 세 살부터 하고 있었던 일이다. 세상의 모든 아기 받는 사람들의 마음은 똑같지 않을까? 아기를 받아내는 일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할 수 없었다.
평생 한 가지 일만 한 것은 내가 그 일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도 했다. 문득 ‘나의 일을 좋아하고 있었나?’라고 자문했다. 우울이 바닥을 칠 때는 주변머리가 없어서, 게을러서, 머리가 나빠서, 가난해서 이 일로 먹고사는 것이라 여겼다. 명쾌한 말! '아기 받는 일이 좋아서 같은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는 말에 황홀했다. 그래! 난 이 일을 좋아해! 방송이나 잡지사 인터뷰 때 단골로 묻는 질문은 '당신은 아기 받는 일을 좋아하나요?'였다. 그때마다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열거한 우울의 양보다 갓난 아기를 손에 안고 느꼈던 행복감이 훨씬 컸다.
놀라서 버둥거리는 갓난아기를 어미의 품에 건낸다. 웅얼웅얼 계속되는 말은 ‘잘 살거라 아가야 !’다. 순간 두려움은 기쁨으로 바뀐다. 아기들은 그렇게 나를 다시 제자리에 데려다 준다.
하루 종일 진통을 한 산모가 막바지 힘을 준다. 진통 중에 간간히 빨라졌다가 느려지는 태아 심박동수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급기야 진통만 오면 맥박수가 뚝뚝 떨어지다가 진통이 사라지면 회복이 된다. 탯줄이 짧은 것이 아닐까?. 이럴 때는 탯줄이 당겨지지 않게 해야 한다. 진통이 사라졌다. 손가락 한마디 안에서 만져지는 아기를 자궁 안으로 다시 올려 놓는다. 심박수는 다시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이정도로 진행이 된 상황에서 병원으로 후송하는 것은 일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 판단했다. 할 수 없다. 죽으나 사나 아기를 낳아야 한다.
긴장한 내 심장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 경동맥도 펄떡대고 얼굴에 열이 난다. 쿵쾅거리는 몸과 마음에 처방은 기도다. 기도하라고 소리쳤다. 힘쓰는 아내도 기도를 했다. 그토록 절절한 기도는 우리 모두 해 본적이 없다.
마지막 피치를 올려야 하는 시점, 되도록이면 빨리 아기를 태어나게 해야 한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사이 진통은 또 사라졌다. 산모에게 산소를 주고는 아기의 심박동수를 또 체크한다. 뚝 떨어졌던 박동이 서서히 제 자리로 온다. 아가야 제발 정신 차리자! 다음번에 나오는 거야! 알았지!
아기가 태어났다. 엄마의 가슴에 올려 지지 않을 정도로 역시나 탯줄이 짧다. 대신 제법 굵다. 굵은 탯줄이 아기를 살린 셈이다. 만약 탯줄이 얇았다면 이 과정을 견딜 수 없었을 거다. 나의 생각이 맞았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엄마 젖을 빨고 있는 아기가 보인다. 폭풍 후에 오는 고요는 여느 고요보다 더 진하다. 세상을 다 가진 것이 이보다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