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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Oct 09. 2023

명랑남자

명랑남편

어떻게 먹고 살 거야" 퇴직한 남자의 뒤통수에 미운 털이 보일 때 내 입에서 종종 튀어나오는 말이다. '난 이제 일하기 싫어 노는 게 좋아'라며 웃는 그는 명랑 남자다. 나 참 기가 막혀서. 뭐 자기가 개구쟁이 뽀로로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 깊숙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면 진심으로 개구쟁이 뽀로로 같다. 명랑을 맹랑이라고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맹랑 남편! 아등바등거리는 삶이 힘겨워 몸서리가 쳐질 때 그는 대부분 명랑 남자로 있거나 외국에 있었다. 그럴 때마다 벌어지는 환장 파티는 내 인생의 담금질 역할을 했다. 난 더없이 딱딱해졌다. 긴 시간 동안 그것을 푸느라 또 애를 써야만 했다. 이게 뭐지? 갸우뚱거리며 그가 고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돌아보니 결국은 헛발질만 한 셈이다. 외려 명랑하거나 맹랑하게 사는 그가 더 고수였다.


퇴직 후 집에서 보내는 그의 일상은 컴퓨터를 뜯어고치거나 남들처럼 검색을 하는 것이다. 무역 오퍼를 했던 그는  한때 검색의 대마왕이었다. 지금도 뭔가 찾아달라고 하면 귀신같이 빨리 찾아낸다. 썩히고 있는 재능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이 들지만 놀고 싶다는데... 또 다른 그의 놀잇감 중 하나는 알리 익스프레스. 물건들이 저렴하기도 하지만 무료배송이라는 유혹은 자연스럽게 앱에 접속하게 만든다. 알리 익스프레스를 며칠간 뒤적이면 며칠 후 작은 물건들이 배달된다. 비싼 건 한 달 놀잇감, 조금 저렴한 건 삼일 놀잇감이다. 그것들을 끼워 맞추고 해부하는 그는 늘 진지하다. PCB 판에 납땜까지 하는 통에 집에서는 공장 냄새가 나기도 한다.


한 달 중 반은 시골집에 머문다. 땅을 밟고 있으려면 노동은 기본이다. 땅을 파고 나무들을 옮기고 가끔은 톱질에 못도 박아야 한다. 몸을 사용하는 것이라고는 농구하는 것뿐이었던 남자는 이 모든  몸 노동이 어설프다. 공부는 잘했을지 몰라도 리어카에 무게중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삽질의 기본도 물론이다. 오죽하면 남동생이 매형보다 누나의 삽질이 더 훌륭하다고 칭찬을 했다. 덕분에 남편은 또다시 명랑하게도 삽질하는 나를 구경하기만 했다. 우리는 절대로 그이에게 몸 노동을 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결국 명랑할 수밖에 없다.


정신건강을 위한 최고봉의 멘틀을 가진 맹랑 남자는 오늘도 밥을 하고 식탁을 차린다. 그가 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맛있어? 깨끗하지? 뭐해 먹을까? 시장 가자!"

"어떻게 먹고 살 거야"라고 던진 말이 맥을 못 춘다.

본전치기 장사나 하면 다행인 셈.


종종거리며 살아온 길은 하늘을 보며 천천히 걷는 길로 바뀌었다. 그는 늘 여전히 명랑하고 맹랑하다. 아주 가끔은 진지하기도 하다. 명랑과 맹랑보다 나는 진지함이 좋다. 사랑받는 것조차도 그저 명랑한지라 알아채지 못하는 그는 내가 진지함을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이나 할까. 매일매일 리셑되는 명랑 남자에게

슬쩍 다가가 귀에 대고 속삭인다.

"나도 노는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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