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행복한 조산사, 다큐 여자]

살아가기.조산사의 삶

by 김옥진


조산원을 개원 한지 4년이 지나가던 2005년 가을, EBS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성의 삶에 대한 다큐를 찍고 있는데 병원출산이 대세인 시절에 올드한 느낌의 조산사라는 직업이 흥미롭다고 했다. 스믈세살부터 마흔 두살까지 아기를 받는 일을 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키우는 여자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해도 <여자>라는 다큐제목에 걸맞아 보였다. 방송을 타고 나가는 자연출산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출산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선 작가와 피디 김민정선생에게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촬영을 할 사람은 아이를 품고 낳고 길러본 여성 방송인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야 무엇을 찍어야 할지, 어떤 글을 써야 할 지 감이 잡힐것이라 했다. 낯선 카메라에 아기를 낳는 산모가 부담을 느끼지 않아야해서다. 바쁜 그들을 붙잡고 세시간 가량 내가 하고있는 별난?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퍼부었다. 자연출산에 대한 이야기라면 며칠을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열정이 넘쳤던 사십대 초반의 내 이야기를 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내 공감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렇게 강하지 않아도 되었을것이다. 아기를 받아내는 모습만 함께해도 충분히 이해했을 그들이었다. 그 후에도 여러 방송을 촬영했었는데 대부분 일주일 정도 방송일을 남기고 촬영을 요청했고 스텝들은 대부분 남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얼떨결에 번갯불에 콩 구어먹듯 한 촬영을 보며 후회를 하곤했다. "저건 아니지~" 번갯불에 콩 구어먹듯 아기를 낳게 하는 것에 신물이 났었는데 대부분의 방송들이 그것과 닮아 있었다. 오래걸리는 다큐만이 여성의 엄마됨을, 섬세한 모성을, 새로 태어나는 가족애를 세세히 찍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편, 촬영일이 다가오자 슬슬 걱정이 되었다. 출산이라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것이 아니다. 촬영일자가 잡히긴 했어도 그 시간 내에 아기가 태어나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만난 사람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있었다. "인생사 마음되로 되지 않으니 좋은맘으로 기다리자"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제목은<행복한 조산사>로 정해졌다고 했다.
조산사가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거의 매일 밤을 새고 아프다고 하는 사람을 계속 만나는것이 행복할까? 난 행복한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하면서 촬영은 시작되었다. 언제 시작될지 모를 출산은 늘 나를 긴장시켰다. 게다가 촬영PD에게 연락을 해야하는 일, 산모에게 양해를 구하는 일이 더해졌다. 세 명 정도의 아기가 태어나준다면 바랄것이 없다고들 했다. 자그마한 다부진 체격의 김민정PD는 일복이 많은 사람인지 신기하게도 아기들이 많이 태어났다. 자그마치 여섯아이나! 우리는 둘이서 충청도로, 경기도 평택으로 산속 시골 마을로 밤낮없이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바쁘고 피곤했어도 출산을 돕는 나와 다양하고 생경한 출산상황들을 만나는 PD선생도 내심 흥분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촬영 테입이 금방 동이나서 작은 피디는 밤낮으로 공테잎을 날라다 주었다. 곁들여서 조산원에서 태어나는 아기, 순조롭지 않은 진행으로 제왕절개를 하는 아기들까지 아주 다양한 모습들이 카메라에 담겨졌다. 부끄러웠지만 우리집도 촬영했는데 김치찌개 하나 달랑 올려놓고 딸에게 당당하게 훈수하는 철면피인 나의 젊은시절의 모습도 담겨 있다.

지금이나 그 때나 조산원과 조산사라는 단어가 생소한건 매한가지였다. 김민정PD는 어떤 것들을 찍을까하고 굉장히 궁금했던거 같다. 그녀는 약 열흘간 24시간 나와 붙어다녔는데 어떤 날은 남의 집 한켠에서 쪽잠을 자기도 했다. 새벽 두시에 도착했던 어느집에서는 우리를 위해서 새 이부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이 보다 더 큰 환대는 없다. 푹신한 새 이불 덕분이었을까? 너무 깊은 밤이어서 였을까? 깜박 잠이 들어버렸다. 진통소리에 화들짝 나가보니 거의 출산이 임박해 있었다. 아쉽지만 과정을 놓친 그날의 출산이야기는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날이 밝자 삼신할머니께 미역국을 드려야 한다며 친정어머니는 정성스레 밥상을 차려 주셨다. 상위의 창란젓과 조개젓은 밤샘을 한 우리들의 입맛을 돋구는데 충분했다.

딸 둘을 낳은 후 늦둥이를 낳은 ♡♡의 집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지방의 고층아파트로 들어간 시간은 새벽 네시, 키 작은 산모는 날이 밝도록 본 진통이 오지 않았다. 그 날은 하얗게 눈이 내렸다. 고층에서 내려다 본 하얀세상을 보며 건강한 아기를 만나게 해 달라고 마음으로 빌었다.
부부는 아이들과 할머니를 집에 두고 진통을 기대하며 층계를 오르내렸다. 십년정도 부부로 살면서 남편과 함께 걷는것이 참 오랫만이라며 부끄럽게 웃던 그녀는 한 낮이 되어 아들을 낳았다. 먼저 태어난 두 아이의 출산경험은 힘이 들어가는 것을 채 느끼기도 전에 꺼내졌다. 그래서인지 막판 힘주기가 영 시원찮아 한참동안 애를 먹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안겨서 온가족이 함께한 출산은 그녀에게 잊지못할 추억이 되었을거다. 아들아기를 가슴에 안고 감격해하는 모습에 함께 자리했던 할머니는 내 등을 토닥여 주셨다. "고마워~" 할머니의 두 눈 그렁한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옆에 바싹 붙어서 촬영을 하던 김민정선생도 눈을 훔쳤다.훌쩍거림의 오중창이 화면밖에 있었다는건 우리만 아는 비밀이다.

촬영분량을 다 채웠다. 그 때까지 찍은것만으로도 4부작 분량도 될 것이라며 만족해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산모의 세번째 아기 진통소식이 왔다. 아기를 받는 나는 또다시 길 위를 달려야 했고 사실 PD민정선생은 집으로 돌아가도 되었다. 출산 준비물을 챙기며 힐금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저는 갑니다! 그 동안 정말 수고가 많으셨어요" 막 문을 나서려는데 일복 많은 그녀가 촬영장비를 들고 따라 나왔다. 이제는 말 하지 않아도 어떤 마음인지 아는 사이가 되었다. 시골 전원주택까지 찾아가는 일은 가끔 무섭기도 했는데 친구가 되버린 PD양반 덕분에 가는길이 신났다.

깜깜한 마당에 우리를 반기는 외등이 켜있다. 겨울밤 거실엔 장작이 소리를 내며 온기를 더한다. 진통이 시작되자 겨울숲으로 간 아빠는 갓 태어난 작은것을 씻기기 위해 약수를 받아왔다. 난로 위에는 산화된 장작불이 아빠정성이 더해진 약수를 데우고 있다. 굳이 장작을 패서 불을 피우고 약수물을 떠 온 것은 인공적인것보다 자연의 기운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라고 했다. 본진통이 늦어져 결국 물은 졸아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남아서 우리들은 산모가 내어준 차도 마시고 아기아빠의 기타소리에 맞춰 노래도 불렀다. '광야에서'를 부르는 네 사람은 마치 자연출산을 위해 혁명을 꿈꾸는 레지스탕트였다. 충분히 그랬다. 낳는 이나 받아내는 이, 함께하는 모두가 소중한 생명을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홀로 생겨나는 생명은 없다. 위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합쳐져 태어나고 살게 한다. 어쩌면 우리는 탄생의 자연스러움이 미치는 영향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이거 아기낳는 풍경 맞아요? 호호호" 우리는 그렇게 아기가 뜸들이는 동안 겨울밤을 즐겼다.
아쉽게도 정성이 들어간 약수는 본진통이 늦어지는 통에 결국 끓어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장작이 사그라들고 밤의 정적이 찾아오자 진통강도가 세어졌다. 힘이 들어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부산히 아기받을 준비를 했다. 눈치를 챈 아기아빠는 잡고 있던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는 이층으로 달려갔다. 깊은 잠에 빠진 작은 아들은 아빠품에 안겨서 내려오고 큰 아들은 비틀비틀 눈을 비비며 층계를 지나 출산방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 산모의 다리사이로 까만 머리카락이 보인다. "보고 있니?" 그 와중에도 아이들이 막내가 태어나는 것을 보라며 말을 하는 어미가 대단하다. 부모는 아이들이 사람의 탄생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했었다. 갓 태어난 작은 아기가 엄마품에 안기고 눈을 떠 가족들을 본다." 우리 이제 여자가 한명이다 그치!"여동생을 본 둘째오빠가 살포시 아기의 손을 잡고 말한다.
PD선생은 모든 탄생의 순간이 경이롭지만 특히나 이번출산을 촬영하지 못했더라면 매우 섭섭했을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누가 보아도 감동이 오는 그 출산 이야기는 방송 첫 부분에 장식되었다.

"다큐 여자"를 촬영한 그들이 여자이기에, 아기를 낳고 길러 본 엄마이기에 더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PD선생 김민정은 산모가 불편하지 않도록 제일 작은 카메라로 혼자 촬영을 해 주었다. 가끔 그녀의 존재를 잊을 만큼 숨죽여 내 곁에 있었다. 함께 다니며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하는 또다른 직업이 있음에 위로 받기도 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많은 이들의 노력과 좋은 마음이 필요한것처럼 방송을 제작하는것 또한 수 많은 이들의 콜라보가 어우러질 때 멋진 작품이 탄생되는거였다.
EBS다큐 여자 <행복한 조산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방영된 후 조산원 전화에 불이 났다. 조산원이나 집에서 아기를 낳고 싶다는 산모의 문의가 이어졌다.
덕분에 다른 조산원도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세상은 경쟁을 하라고 부추기고 누군가를 밀치고 나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게 배운 우리는 출산이라는 자연스러운 일조차 경쟁구도에 넣는 오류를 범한다. 나도 그 소용돌이 속에서 배우고 길들여졌다. 출산의 매 순간들은 경쟁의 소용돌이에 있는 나를 밖으로 끌어내 주었다. 경쟁보다는 함께를, 봄꽃을 본 후에만 만날 수 있는 여름비를, 기어다닌 후에 앉고 서는 어린생명을 보며 자연의 순리에 감탄한다. 태어남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다. 다시 태어나게 하는 출산의 현장은 그곳의 모두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힘은 들었지만 다큐를 촬영한 것은 잘 한 일이었다. 아직도 소수의 여성들은 본능적인 모성과 아기의 힘을 믿고 자연스런 출산을 선택한다. 그 길위에서 조산사는 위로며 격려이고 사랑이다. 건강함의 시작을 돕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나는 정말 행복한 조산사인게다.


2006년 1월 EBS 다큐멘터리 <다큐 여자>에 '행복한 조산사'가 2부로 제작되어 방영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