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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Oct 19. 2023

이인분이니 더 먹읍시다.

무엇이 비정상인가요?

임신이 병이 된 세상에서 임산부의 운동은 위험한 것이라고 말한다. 편안한 생활은 계속되고 먹을 것들은 널려있는데 그 누구도 임산부에게 움직이라고 하거나 조금 먹으라고 하지 않는다. 임신을 한 대부분의 여자들의 일상은 그래서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감생심 자기들은 당연히 자연출산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버린다. 게다가 임신을 한 여성에게 주위 사람들은 뭔가 자꾸만 먹이려 든다. "이인분이잖아~ 잘 먹어야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어~' 


 먹을거리가 풍요롭지 못했던 과거의 덕담이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덕담대로 많은 이들은 산모에게 더 먹기를 권유한다. 나는 산모에게 임신한 딸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친정엔 되도록 가지 말라는 억지도 부린다. 돌잔치나 결혼식의 뷔페로 인한 과식을 방지하기 위해 잔칫집도 가지 말라고 한다. 엎드려서 물걸레질을 하라고 시킨다. 방방이 돌아다니며 하루에 한 번씩 꼭 닦으라고 한다. 이 동작은 아기의 위치가 자연출산하기에 좋은 쪽으로 바뀌게 도와준다. 출산교육에 단골로 등장하는 나만의 자연출산 매뉴얼중 하나이다.


 고교 동창 친구는 임신 내내 열감이 심해 아이스크림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에정일이 되자아기는 4킬로 넘게 자라서 자연출산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 친구 남편은 날마다 아내를 위해 냉동실에 큰 *** 아이스크림 통을 가득 쌓아 놓았다고 했다. 그것은 나름 아내를 위한 사랑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내와 아기를 살찌게 하는 아이스크림이었음을 알기나 했을까. 긴 시간 학교를 다녔음에도 대부분의 교과 과목엔 임신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적혀있지 않다. 그저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말만 난무한다. 


 먹은 만큼 움직이지 않으면 자연출산은 점점 멀어진다. 살이 쪄서 좁아진 산도와 커진 아기는 생과 사의 기로에 놓일 수도 있다. 더하여 다시는 아기를 갖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출산을 경험하기도 한다.  


 크게 자란 아기를 낳으려면 보통의 출산 시간+알파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림의 시간, 알파의 시간은 출산을 하는 현장에서 정상 취급하지 않는다. 더하여 의료인들은 출산의 과정을 정상의 범주로 돌려놓아야 제 할 일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벌을 받을 수도 있다. 


정상으로 돌려놓는다는 것의 대부분은 제왕절개 수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산원의 조산사들은 자주 정상과 비정상을 넘나들며 곡예를 하는 곡예사라고 말할 수 있다. 

조산사들에게 필요한 덕목중 하나는 임신한 여자들의 먹는 것을 조절하고 꾸준히 운동을 격려하여 체중조절을 시키는 것이다.   

 셋째를 낳으러 온 산모는 아기를 힘들게 낳고서야 아가기 커진 이유를 고백 했다. 막달에 정신 줄을 놓고 마구 먹었다. 절절히 인정한다고 했다.


 수월 할 것 같았던 셋째아기 출산은 예상과는 다르게 힘이 들었다. 마지막 골반을 통과하며 심박동수가  떨어졌다. 태아가 힘들어하자 모두들 극도로 예민해졌다. 제일 예민해진 사람은 아기 받는 나. 가슴이 둥당거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산모가 온 힘을 주는데도 아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더! 더! 좀 더! 산모는 힘이 모두 빠져 버렸고 큰 아기는 골반에 끼어서 사경을 헤맸다. 내기 대신 아기를 낳아줄 수도 없고,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기의 머리가 보이는데도 산모마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결국 남편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산모가 힘을 줄 때 남편이 아기의 엉덩이를 누르는 것이다. 항간에는 배를 눌러 아기를 낳았다는 좋지 않은 출산 후일담이 떠다닌다. 하지만 가끔은, 진정으로 배를 눌러야 하는 상황이 있다. 


 일단 남편에게 배를 누르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진통이 오자 남편이 최선을 다해 아내의 배를 눌러 아기를 밀어냈다.  온힘을 다하고 있는 남편에게 '조금 더! 더요! ' 라고 소리 쳤다.  남편은 당황한 빛이 역력했지만 지금의 지휘관은 나다. 진통이 올 때마다 남편은 점점 더 요령을 터득했다. 세 번의 진통이 오간 후 드디어 아기머리가 나왔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녀석이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빠져 나왔다.  


 태어나서 고요히 숨을 쉬는 일반 아기들과는 달리 녀석은 목 터져라 운다. 마구 울어도 좋다. 힘이 들었으니 마구마구 울어라! 나는 한 발자국 뒤로 주저앉아 안도의 숨을 쉬며 피식 웃었다. 감사의 미소다! 산모도 아기도 살았다. 애쓴 어미는 숨을 헐떡이며 진심으로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떨리던 내 손이 가라앉고 심장이 제 자리를 찾아갔다. 마음속으로 후회가 밀려왔다. 지난번 둘째아기의 경이롭고 행복한 출산은 그저 지나간 출산이었음을 기억했어야 했다. 셋째 아이도 처음 만난 아기처럼 챙겼어야 했다. 산모가 사는 곳이 멀더라도 한 번쯤은 만났어야 했다. 먹는 것들을 지적하고 몸을 움직이도록 격려하고 재촉했어야 했다. 어리석게도 전화로 들려오는 산모의 상쾌한 목소리에 나마저 정신 줄을 놓아 버렸던 거다.


 환상적이고 만족스러웠던 둘째처럼 셋째도 태어날 것이라는 허상을 믿었다. 정말 이토록 어렵게 아기를 낳을 거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번 출산으로 각각의 아기들은 모두가 다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다섯 식구는 피곤과 환희가 섞인 출산을 마치고 밤 열시에 멀고 먼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돌아간 텅 빈 방을 돌아본다. 다시 몸을 일으켜 이것저것 닦고 치우고, 출산에 필요한 물건들을 원래의 제 자리에 다시 가져다놓는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출산 방은 또 다른 아기를 만나기 위한 정갈한 방으로 변했다. 


 밤 열 두 시, 터덜거리며 집까지 걸었다. 시원한 밤공기기 나를 위로한다. 목이 마르다. 달달한 사과주스가 먹고 싶어졌다. 편의점 주인이 밤늦게 어디를 다녀오시냐고 묻는다. "제 일이 이렇게 밤낮이 없어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 편의점 주인이 고마웠다. 사과주스가 몸으로 넘어간다. 달콤한 물이 메마른 몸을 부드럽게 해 준다. 지금부터 오전 내내 잠을 잘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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