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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Oct 19. 2023

둘째는 자연출산

무엇이 비정상인가요?

첫아기를 제왕절개로 낳은 산모가 이번 둘째만큼은 기필코 자연적으로 아기를 만날 거라며 나를 찾아왔다. “ 낯설었던 수술실, 더 낯설었던 아기와의 첫 만남, 배에 길게 난 수술의 상흔은 일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각인되었다. 

 너무나 바빴던 일상은 아기, 생명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단다. 일로 빼앗겼던 사랑의 시선을 되찾고 점점 커지는 뱃속의 아기를 순간순간 느끼며 지금을 즐기고 있다고 자랑을 한다. 


 첫아기를 품었던 경험은 사실 잘 기억되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바빴고 또다시 온 아침은 번잡스러웠다. 예정일 즈음, 자연스레 진통이 왔다. 아기를 낳으러 가서 출산휴가를 허투루 써버릴까 봐 분만유도제를 요구했다. 참을만했던 자연 진통은 약이 들어가자 미친 듯이 몸을 휘돌아 자극했고 약물 주입량이 늘어날수록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강한 수축이 오고 갔다. 


 그런 힘듦이 오고 가는 건 그래도 괜찮았다. 정말 참을 수 없던 것은 산모의 몸을 마구 대하는 사람들의 무례함이었다. 무례함은 더 이상 진통을 견디고 싶지 않게 했다. 아랫도리가 얼얼할 정도로 수 없이 내진을 했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데도 힘을 주라고 했다. 아기의 심박동 수는 크게 오르내렸다. 사람들은 아기가 위험하다며 응급제왕절개를 마지막 카드로 내밀었다. 남편도 나도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었다. “

그들은 그렇게 첫아기를 제왕절개 수술로 맞았다. 


 첫아기와의 만남을 이야기하며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수술의 통증은 아기를 낳기 위한 진통이랑 또 달라서 힘이 들었고 왠지 아기를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아픈 배를 부여잡고 유리창 너머의 아이를 본 건 수술을 한 지 이틀 후였다. 아! 저 아기 손목에 내 이름표가 붙어있구나! 그럼 내 아기겠지! 아기를 보며 행복감보다는 의무감이 불쑥 올라왔다. 사랑보다는 불안감이 더 컸었다. 내가 키워야 하는구나! 공부도 시키고 잘 먹이고 나와 한 공간에서 살아갈 사람이구나! "두 번째 임신을 하고서야 이젠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런 그녀의 힘이 내게까지 전해졌다. 마구 대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위로를 전했다. 처음에 브이백을 하기로 결정하고 출산할 곳을 찾으려니 방해꾼은 지난 출산보다 훨씬 많았다며 더 무서운 이야기를 마구 들었다고 했다. 그 무서운 이야기는 두 생명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용기 내지 않으면, 스스로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허사가 될 것이라고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고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브이백을 시도하다가 또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산모가 원하는 조산원 출산은 브이백을 대처하기엔 부적절 한 장소이므로 병원에서 출산할 것도 권했다. 산모 스스로가 응급 상황이 일어났는지를 제일 먼저 감지하게 되며 그래서 자신의 몸 상태를 늘 스캔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도 알려 주었다. 제왕절개의 좋지 않은 경험보다 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을 수도 있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그에 대한 비용 또한 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생명 모두 죽을 수도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럼에도 브이백을 선택하겠냐고 재차 물었다.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한 각각의 시나리오를 고지하면서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긴다면 이 모든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궁이 터지고 아기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산모의 생명을 담보한 브이백, 실상은 그녀보다 내가 브이백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하지 말까? 못하겠다고, 안한다고 하면 그만인 것을 왜 또 스트레스를 사서 받는 결정을 하는 것일까? 그녀의 각오서린 목소리가 자꾸만 나를 건드린다. 자연스런 출산을 돕겠다고 한 것이 잘한 일일까? 


 "이 사람이 선생님을 무작정 신뢰하는데 저는 할 말이 없네요! 왜 그럴까요? 선생님과의 만남 이후로 이상하게 더 많이 편안해한답니다"  남편의 칭찬에 기분은 좋았지만 사실 나를 만나 편안해진 것이 아니고 나를 만나 브이백을 향한 각오가 더 단단해졌던 것이란 생각을 했다. 


브이백을 성공하기 위해서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운동이고 체중조절이다. 긍정적 사고는 태아에게 막강한 정신력을 심어 줄 것이며 진통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그녀의 브이백 성공을 위한 준비는 단지 그것뿐이다. 


 잘 따라서 준비하는 그녀는 그 후 운동으로 열심히 체력을 키웠고 음식 조절로 막달 체중은 평상시 체중에서 10킬로만 늘었다. 우리는 이미 설명한 대로 병원에서 자연출산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에 한 걸음에 병원으로 갔다. 괴로워하지 않고 진통 앞에 당당한 그녀의 미소는 자신감을 대신한다. 그런데 ! 어쩜 이리도 진행이 잘 될까?  처음 열리는 자궁문은 경산의 속도로 재빠르게 열리고 있다. 골반도 넉넉하여 열리는 자궁 문에 맞춰 아기도 함께 쑥쑥 내려온다. 자궁파열을 걱정하는 의료진들이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내 머릿속엔 브이백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렸다. 내가 느끼는 불안이 그녀에게 까지 가지 않기를 바랬기에. 진통 시작시간부터 여섯 시간이 지나간다. 


  진통 막바지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반 산모의 출산보다 더 많은 의료진이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아기 머리가 보였다 들어 갔다를 반복하다가 회음 열상 없이 아기가 세상으로 나왔다. 그곳의 걱정과 두려움은 아기가 핑크빛 몸을 보여주자 도망가 버렸다. 

 

모든 의료진의 눈들이 휘둥그레졌다. 아주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 자리의 모두가 박수를 쳤다. 


 그 다음 할 일이 있다. 제왕절개 부위가 터지지 않았나 초음파로 확인하는 일이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열심히 수죽과 이완을 했던 자궁은 터지지 않았다. 


만약 조금이라고 벌어졌다면 진통은 오지 않는다. 


과거 두 번의 경험으로 터득한 바다. 생명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전장의 승리만이 승리가 아니다. 우리는 이겼다. 목표를 이루었다. 원한 데로 그녀는 생생한 정신으로 아기를 가슴에 안았다. 행복해하는 그녀,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말해 뭐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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