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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Oct 19. 2023

산파가 되고픈 남편

무엇이 비정상인가요?

진통이 시작되었다. 산모의 집은 조산원과 100킬로 정도의 거리에 살고 있다. 빠르게 달려도 한 시간 반이 소요된다. 두 번째 아기이니 바로 출발을 했다. 조급해진 마음이 자꾸만 엑셀을 밟는 통에 과속경고가 자꾸만 울린다. 


출발한 지 채 사십분이 되지 않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이다. “선생님 아기가 태어났네요.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큰 아이의 흥분된 목소리도 들린다.“ 아기다!” 다행스럽게도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네, 축하드립니다. 아직 그곳까지 가려면  40킬로가 남았어요. 아기의 울음소리가 우렁차네요. 아기를 수건으로 닦으신 후 엄마의 가슴에 올려 주세요. 아기를 속싸개로 좀  싸 주시구요. 제가 도착할때까지 딱히 하실 일은 없습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물려주면 좋긴 해요. 첫아기때 모유를 잘 먹이셨다니 한번 시도해 보셔도 좋습니다. 젖을 빨리게 되면 자궁수축이 와서 태반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제가 도착할 때까지 만출 증상이 없다면 그냥 두세요. 그래도 혹시 태반이 일찍 나올지도 모르니 태반을 받아낼 조금 큰 그릇을 가져다 놓으세요. 산모가 배가 많이 아프다고 한다면  *태반이 나오는 증상이니 잘 살피시고 그럴 경우 제게 전화를 해 주세요. 최대한 빨리 가고 있습니다. 그토록 원하신 ‘아빠산파’가 되셨네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빨리 태어나다니, 경험치에서 멀리 있는 일이다. 아주 드물게 성급한 아기들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태어나곤 한다. 무용담처럼 들릴지 몰라도 대부분 두 생명은 건강하다. 하지만 그 순간엔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빨리 태어난다는 것은 자궁이 많은 일을 한꺼번에 했다는 것이다 자칫 그 이유로 *자궁 허탈증에 빠져 출혈을 할 수도 있다. 남편이 다른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것도 문제 되지 않는 상황인가 보다. 내심 내가 도착할 때까지 태반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처음 상담전화를 받을 때  아내는 남편이 혼자서 아기를 받겠다고 많이 고집을 핀다고 했다. 출산 예정일이 많이 남아서 여유로운 마음이었을 때에는 “그래보지 뭐” 라고 대답을 했었다. 하지만 점점 예정일이 다가오자 불안이 몰려왔다고 했다.

 기다리던 출산예정일이 이틀 지나가면서 산모의 불안은 최고조로 올라갔다. 남편에게 출산을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산모는 결국 내게 출산 도움을 요청했다. 얼굴 한번 보지 않은 산모의 아기를 받는다는 것은 내게도 큰 모험이긴 했다.


 줌으로 인사를 나누고 준비물들을 점검했다.. 산모의 말처럼 고집스럽지도 않았다. 외려 따듯하고 선한 느낌의 남자 같았다. 아버지가 자식을 받아내겠다고 결심한 일은 진심인 그의 성정으로부터 왔을 것이다. ‘그래 한번 믿어보자!’


  예감은 참 신비롭기도 하고 과학으로 설명 불가하다. 예정일에서 삼 일이 지나간 오늘은,  나도 모르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가까운 시장조차 나가고 싶지 않았다.  출발선에 선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산모의 집으로 내달릴 생각으로만 유독 가득 찼다.


  어찌되었던 간에 조산사의 도움을 받으며 아기를 낳고 싶다는 아내의 말을 남편이 승낙하자마자 아내는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마음이 풀어지니 몸이 저절로 풀어졌어요. 짧은 진통으로 아기를 만난 것이 그 이유인 것 같아요. 예정일이 다 되었는데 흔쾌히 아기 받아주시겠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산모의 집에 도착하여 방으로 들어가 보니 아기는 엄마의 젖을 정말 열심히 빨고 있었다. 결국 남편이 아기를 받게 되었지만 그녀는 그조차도 많이 행복해했다.  


3.9킬로의 아기는 회음 손상 없이 태어났다. 조산사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아기는 태어난다. 물론 다른 소소한 일들을 처리하는 능력은 갖고 있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도움을 주려고 오고 있다는 마음은 그녀를 안도하게 했다.  태반은 내가 도착하고서 이 십 여분 후에 깨끗이 떨어졌다.  자궁수축도 잘 되어 출혈도 없다. 

 

  아기의 몸을 확인하려 엄마 젖을 떼니 집이 떠나가도록 운다. 

남편이 산파 노릇을 해도 될 만한 건강한 몸을 지닌 아내다. “다음에 만약 셋째를 갖게 되신다면 제가 필요 없겠어요. 가족끼리 낳아도 문제없을 겁니다.. 건강한 아내를 둔 남편 분은 참 장가 잘 가셨습니다.” 

이보다 더 칭찬을 해도 부족하다.


더불어 남편에게 태반 나오는 감각과 자궁수축을 체크하는 법도 알려주었다. 건강한 그들에게 주는 나만의 특별한 보너스다. 귀 기울여 집중하는 남편의 얼굴에는 셋째를 받아 낼 각오가 서려있었다.   


       

☀태반만출증상; 진통 같은 수축이 다시 오면서 배가 아프다고 말한다. 

               텟줄이 밖으로 조금 밀려나온다. 

               검은 피가 흘러내린다.

☀자궁 허탈증; 아기를 낳기 직전에 강한 진통이 끊임없이 오는 경우 자궁이 힘을 잃어 

             자궁 수축이 미약하거나 풀리는 경우를 말한다. 그로 인해 출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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