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의 브이백(VBAC)

사람들은 모르는 자연출산

by 김옥진



필리핀에서 왔다는 노라는 한국에서 첫아기를 낳았다.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은 것은 자신이 출산에 대해 너무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산 예정일을 앞두고 양수가 먼저 나왔고 진통이 시원찮아서 결국 진통을 유도하는 촉진제를 맞았다. 축진제를 맞는 하루 동안 굶고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서 지냈다. 출산 유도제의 효과는 생각만큼 도움이 되지 않았고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는다며 제왕절개를 권유받았다. 결국 제왕절개 수술로 아기를 만났다. 수술 후 아기를 안아보지도 못했고 수술 통증으로 긴 시간 아프고 불편했다. 수술부위 통증으로 젖을 물리지 못했고 먹이는 방법도 언어소통의 문제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몇 번의 시도는 불발로 끝났다. 그렇게 제왕절개로 만난 첫아기의 모유수유는 분유 수유로 대체되었다.


로라의 제왕절개는 누가 봐도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다. 양수가 진통에 앞서 나오고, 그 후 자연스러운 진통은 오지 않고, 유도분만제의 효과는 미비하다. 게다가 산모의 키는 제왕절개 적응증에 딱 맞는 150cm로 작은 편이고 외국인이라서 말도 통하지 않으니 소통에 오류가 발생한다. 게다가 의료적인 설명을 이해하기란 더욱 어렵다. 노라의 상황에서 자연출산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으려면 산모나 의료진이 많은 모험을 해야 했을 것이다. 결국 노라의 경우엔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제왕절개를 했을 것이다.


진통을 하고 아기를 낳아 가슴에 안아보는 것이 브이백의 위험성과 맞바꿀만한 일인가?

첫 젖 물기를 하여 아기에게 모유를 주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

왜 굳이 진통을, 고생을 사서 하려 하는가?


대답은 낳아 본 자만이 알 수 있다.


둘째 아기가 찾아오자 로라는 자연출산을 하기로 결심했다. 브이백(VBAC : vaginal birth after cesarean section)을 할 수 있는, 의료적 개입이 없는 출산 장소를 수없이 검색하고는 나를 찾아왔다. 학생 신분이었던 남편은 졸업 후 아직 취업을 못했다. 집 근처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한다. 다행히도 한국 의료보험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꿋꿋이 사는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임신 30주가 되어서부터는 날마다 운동을 시키고 식이조절을 체크했다. 남편도 감동할 정도로 그동안 열심히 잘 따라 했다. 24살,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진통이 어떻게 오느냐가 남은 숙제다. 자연주의 출산병원에서 경험한 브이백의 결과와 과정이 로라의 출산에 도움이 되길 기도했다.

예정일 하루를 남긴 새벽, 진통이 온다고 한다. 아직은 참을 만하다며 못 참을 정도의 진통이 오게 되면 연락을 하기로 하고 여차하면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재차 다짐도 받아두었다.


진통이 잘 오는 산모의 브이백은 성공할 수 있는 좋은 증상이지만 새벽부터 시작되었다는 진통 소식은 저녁이 지나 밤이 되어도 감감하다. 무소식이 희소식 만은 아닌 것이 브이백이다. 그래도 애써 전화를 하지 않았다. 나의 인내도 노라의 출산에 시험을 치고 있다. 스스로가 경험했던 진통의 양상을 알고 있으니, 견딜만하니 전화가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진통이 점점 강해지고 간격은 줄어들면 내개 전화를 할 거다. 집에서 견딜 수 있을 만큼 견디겠다던 로라의 각오를 떠올렸다.


혹여 밤중에 진통이 세어져서 올 것만 같아 낮잠을 자둔 덕분에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밤새 물이 불어 제법 큰 소리를 내고 있는 집 앞 냇물 소리도 한몫을 했다. 아침이다.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24시간이 지나간다. 지지 부지한 진통은 계속 있다고 문자가 온다. 어느 정도 진행이 되어가는지 진찰을 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보통 성공적인 브이백은 진통이 걸리기 시작하면 머뭇거림 없이 진행이 되는 것이 상례이다. 노라의 진행이 내가 경험한 양상과 달라서 점점 더 걱정스럽다. 36시간이 지나가는 둘째 날 오후, 진통하며 로라가 조산원으로 왔다. 비좁은 골반이 아직 아기를 내려보내지 못한 채 30% 진행되어 있고 자궁경부는 매우 얇아져 있었다.


마음이 아프지만 더 견뎌야 한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하고 견뎌 보겠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로라를 보내는 마음이 착잡했다. 이것저것 다 치우고 그냥 병원으로 가라고 하면 될 것이지만 노라의 눈빛은 강렬했다. 뒷모습을 보며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후회될 일이 생길까 두렵기도 했다.



노라는 자연출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나는 왜 힘든 일을 사서 하고 있을까?


자꾸만 지난번 진찰 때 다소 비좁게 느껴졌던 골반 크기가 마음에 걸린다. 진행의 속도를 보아하니 정말 노라의 골반은 넉넉지 않은 거다. 자연스러운 진통으로 아기의 머리가 골반에 맞춰 응형(moulding)되어야 골반을 통화할 수 있다. 아기도 노라도 애쓰고 있다. 예상으로는 저녁때쯤 아기를 만나지 않을까!

돌아간 지 5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진통이 온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41시간의 진통을 한 노라는 병원으로 가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준비된 옵션 2를 실행에 옮겼다. 병원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은 후 안절부절 마음 조리며 5시간이 지나갔다. 카톡이 왔다. 가슴이 두 방망이를 친다. 아기를 안은 노라의 사진이 보인다. 잘 낳았다고 , 모두 건강하다며 함박 웃는 사진이다. 병원 도착 한지 4 시간, 진통 시작 46시간 만에 노라는 자연출산으로 아기를 만났다.

41시간의 진통시간을 지켜보지 않은 사람들은 브이백에 대한 두려움을 그 시간만큼 느끼지 못한다. 입원하여 다섯 시간 만에 출산한 노라의 브이백 성공에 박수를 쳤을 거다. 모두들 아주 잘했다고 서로 흐뭇해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은 41시간 동안 진통을 견딘 노라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반대로 진통 시작부터 입원을 하고 지켜보았다면 과연 노라가 자연출산을 할 수 있었을까? 결국 출산은 스스로가 견딜 수 있는 보이는 힘과 볼 수 없는 힘으로 결정된다.


내년 9월, 노라는 셋째를 만난다. 임신하자마자 카톡을 보내왔다. 이번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나는 그녀를 도울 거다. 그것이 나의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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