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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Feb 07. 2024

봄을 데려온 아기

아기를 낳다.

그녀는 아기를 낳으며 이상하리만큼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못 참을 것 같으면 소리를 내라며 허밍 시범을 보여도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내 귀엔 그녀의 숨 뱉는 소리만 들린다. 다른 산모들 같으면 벌써 살려달라고 말을 하거나 언제 끝나냐고 수시로 똑같은 질문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조언들을 묵묵히 따랐다. 아기가 나오는 길을 넓히기 위해 소변을 보는 일도 그랬다. 진통이 사라진 틈을 타 천천히 화장실로 향하는 걸음걸이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초연하다.

입원 한 지 세 시간이 흘러간다. 아기가 잘 내려오도록 서서 움직여보자는 조언을 했다. 서서 움직이는 자세는 중력의 힘을 얻어 좀 더 효과적으로 아기가 내려올 수 있다. 진통시간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일어선 지 채 삼십 분도 안되어 눕고 싶다고 말했다. 체력이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자꾸 속이 울렁거려 음식을 섭취도 어려운 상황이다. 힘을 내기 위해서는 뭔가 먹여야만 했다. 준비해 온 매실 진액을 진하게 타서 먹게 했다. 걱정스러웠지만 예상외로 아기는 잘 내려오고 있다. 아기의 위치도 좋고 크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진통이 강하게 온다. '서른다섯 살이 넘은 노산들은 가늘고 길게 진통을 한다'라고 한 내 말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다시 입을 꾹 다물고 견딘다. 같은 것이 반복되어 끝이 보이지 않아 절망스러웠지만 그 구절을 곱씹으며 각오를 다졌다고 했다.


순조롭다고 여긴 내가 철퇴를 맞는다. 그래, 지금까지는 좋았다. 예상밖으로 바깥골반이 좁다. 자궁문은 모두 열렸으나 두 시간째 힘을 주고 있다. 일으켜 세우고 다시 눕혀 다리를 잡고 힘을 주고, 내 무릎 위에 앉혀 등을 곧추세워 함께 힘을 준다. 볼록 나온 산모의 배가 나의 배와 밀착된다. 서로의 심장소리가 느껴질 만큼 가슴도 맞닿았다. 진통이 사라지면 올라앉은 것이 미안하다는 몸짓을 했다. 괜찮다고 했다. 그저 온몸을 내게 기대라 했다.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는다. 뜨거운 콧김이 내 목과 뒤통수에 뿜어진다. 고단하다. 나도, 그녀도. 조금만 견디면 환희의 순간이 올 것이다. 끝이 날 것이다. 다시 눕히고 다리를 잡고 힘을 준다. 슬슬 기운이 빠지지만 코딱지만큼 아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몇 번의 힘을 더 주어야 녀석을 볼 수 있을까? 되려 내가 내게 묻고 있다. 더 힘든 그녀의 각오 서린 몸짓은 처절하지만 아무 말도 없다.


 기특하고 애잔하다. 남편에게 나가있으라고 했다. 아기를 낳는 마지막엔 남편은 불편한 존재가 된다. 남편이 나간 후 출산방은 더욱 후끈해졌다. 까만 아기 머리칼이 점점 더 들락거린다. 삼 센티 정도 보였을 때 산모에게 아기의 머리를 만지게 했다. 따듯한 마음이 아기에게 전해진다. 산모도 보이는 고지를 보고 더욱더 힘을 낸다.

숨겨진 내면의 힘은 막바지 힘주기에서 발휘되고 있었다.

유독 새까맣고 풍성한 머리카락, 골반에 머리를 맞춘 흔적인 길쭉머리가 나왔다.  남편을 불렀다. 기다랗게 애쓴 머리모양은 엄마와 아기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는 녀석은 똘똘하다.

초음파를 보니 아기는 아빠를 닮은 듯 보였다. 맞았다. 어디 내놓아도 그의 딸이다. 겸연쩍은 아빠는 아기를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저를 닮았군요. 허허허 "

새벽 한 시 이십사 분, 2.96킬로의 고깔머리를 한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

보름달이 하늘과 산의 경계를 비춘다.

천지를 휩싸던 매서운 추위도 아기의 탄생과 함께 사라졌다.


아기를 만나며 그들은  잘 익어 숙성된 부부가 되었다. 가슴에 닿은 아기의 살냄새, 간질간질 꼬물거리는 팔다리, 만나보니

더, 더, 더 사랑스럽다.

행복에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추었으니,

불끈 주먹을 쥔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

무엇이던 이겨낼 수 있다.

지금 눈앞의 내 아기를 위해서라면...


아기 받는 일은 아기를 낳는 일과 같다.

온몸이 아기 낳은 사람처럼 아프다. 또다시 삼 일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뒹글거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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