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산모들의 아기를 받을 때는 보통의 산모보다 훨씬 많은 육체적, 정신적 중노동을 하게 된다. 잠시도 한눈팔 새가 없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우며 견디며 갖고 있는 모든 힘을 써야 한다. 다방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상치 못 할 상황들을 예견하고 준비하지만 무섭고, 힘들다. 요 며칠, 고위험 산모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오르락내리락 삶의 많은 부분이 지금처럼 흘렀다. 다행히도나만 초췌해졌지 결국 모두들 건강했다.
고위험산모는 조산사 단독으로 아기를 받지 말아야 한다지만 고 위험이라는 정의갸 과연 옳은 건지 늘 의문이다. 현대의학의 잣대로 보면 대부분 고위험 산모다. 빈혈이 있어서, 키가 작아서, 아기가 커서, 아기가 거꾸로 앉아 있어서, 한 명 이상의 아기가 자라고 있어서, 나이가 많아서, 첫아기를 수술로 맞아서... etc..
수 없이 많다. 이유를 들라치면 조산사가 받을 수 있는 출산은 극히 제한적이 된다.
코에 걸면 코걸이라 하니 고위험이라고 명명해지면 그렇게 귀걸이도 코걸이가 된다. 수많은 아기들을 받으면서 그 어미들이 과연 모두 정상이라는 잣대에 맞았던 사람들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임신과 출산을 삶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조산사는 대부분은 현대 의료와 부딪힐 수밖에 없다. 포장하고 선전하는 것들에 일반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점점 더 분간하기가 어렵다.
출산에 대해 솔직히 말하고 개개인에게 맞는 출산의 과정을 알려주는 조산사라는 직업은 현대 자본주의와 걸맞지 않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그 일을 지금도 한다.
*임신성 고혈압 세영 이야기
세영은 첫아기부터 인연을 맺었다. 출산 상담을 하러 왔을 때 혈압이 조금 높았었다. 근거 있게 병원 출산을 권하기엔 애매한 수치여서, 출산에 대해 여타 여자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어서 그녀의 아기를 받아냈었다. 둘째 때도 그랬다. 신기한 것은 아기를 낳자마자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거다. 또 한 번 알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만약 또 다른 혈압 높은 산모가 온다면 역시 망설여지거나 거부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곤 했다. 세영은 '자연스러운 출산'을 폄하하는 의료적 출산이 대부분인 지금, 드물게 나와 같은 생각으로 출산하고 싶어 한 사람이다. 세영은 출산만큼은 병이 아닌 것, 자연스러운 것으로 믿고실천한 사람 중 하나이다.
그녀에게 늦둥이 셋째가 찾아왔다. 기뻐하는 그녀의 들뜬 목소리와는 반대로 임신성 고혈압이었던 일이 생각났다. 병원으로 가라고 해도 안 갈 것이 뻔하고 또다시 애간장을 녹이며 아기를 받아야 했다.
물론 과정은 비슷했지만 세 아이 중 이번이 혈압이 만만치 않게 오르락내리락했다. 병원 출산하라고 쉽게 생각하면 된다. 눈을 딱 감고 뒤돌아버리면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음 졸이며 세영의 아기를 받았다. 위의 두 아이처럼 또다시 아기 낳고 혈압이 제 자리로 돌아왔다.나보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둥, 운이 좋았다는 둥 들었다 놓았다 말들이 많다.
만약 세영이 넷째를 낳는다면.... 그만하고 싶다.
*브이백 성공한 이슬이 이야기
수술로 맞았던 첫 아이의 경험은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그 이유로 둘째 녀석을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나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이슬이와 남편을 보고, 차마 강력하게 다시 수술을 하라고 하기 미안하다. 첫 아이 때 나와 함께 열심히 자연출산을 준비했는데 양수가 새고 진통이 오질 않아 수술을 했었다. 나 같으면 둘째도 그냥 수술을 할 것 같은데 이슬이는 왜 또다시 자연출산을 하고 싶은 걸까! 게다가 팔다리도 가늘가늘, 바람 불면 날아갈 법한 그녀를 어찌할까! 또다시 최선을 다하고 차선을 준비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병원이던, 여성전문병원이던, 출산의 장소로 여러 군데를 섭외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기마지를 할 수 있도록. 108배도 시키고, 먹는 것도 제한시키고, 마지막, 브이백을 해도 될지를 대학병원 교수께 몸 상태를 확인받았다. 브이백을 조산원에서 출산하는 것은 위험하다. 드물게 일어날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생겨 조산원 출산으로 급 선회를 했고 예정일이 4일이나 지나가던 지난 토요일, 밤 일곱 시부터 시작된 진통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쪼그라든 마음으로 밤새 그녀 곁을 지켜서 다행히도 아기는 잘 태어났다. 오래된 숙제같이 느껴졌던 것을 완성한 느낌이었다. 양수로 축축한 아기를 가슴에 안겨 주었고 꼬물거리며 젖을 빨게 해 주었다. 그녀가 본능적 사랑을 만났다.
돌이켜보니 첫아기가 양수가 먼저 열린 이유는 비좁은 골반이었다. 브이백이 순 리데로 잘 되는 경우는 경산의 과정처럼 속도를 내는 것이다. 이슬이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긴 시간 그녀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은 임신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은 운동, 108배였다. 그것은 그녀와 아기를 지켜내었다. 두려움이 몰려오면 세 달 동안 그녀와 주고받았던 운동 흔적을 꺼내보았다. 잘 낳아서 다행이다.
*첫 출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정말이지 첫애 낳은 기억은 하고 싶지도 않아요. 왜 선배를 기억하지 못했을까요. 둘째가 생기고 먼 곳서 찾아온 간호사 후배가 말한다. 병원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던 형숙에겐 첫아기 출산은 끔찍한 것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래 잘 낳아보자!
몸은 건강하니 체중조절과 먹는 것들만 조심하면 되었다. 간간히 망가지는 식습관에 잔소리 꽤나 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진 못했다. 마음 준비도 연습이 필요한데 직장을 다니며 마음 준비하기란 쉽지 않았다. 뭐 그래도 첫아기를 잘 낳았으니 제왕절개 따위는 잊어버려도 되는 것도 다행이면 다행이다.
우와!! 진통이 걸려 왔는데 진통이 올 때마다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한다. 바닥에 누워 떼를 쓰는 막무가내 세 살 아이가 되었다. 떼써서 될 일이 아님에도 소리를 지르며 몸을 비비 꼬꼬 난리를 부린다. 따듯한 수중 출산을 준비하고 들어갔건만 세어진 진통에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 새 아기는 훅 내려오고 머리가 보이고 몸이 나왔다. 지켜보던 남편은 큰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한다. 그 모습을 본 어린 큰 딸도 놀랐는지 아빠 목만 꼭 붙잡고 있다.
행복하게 아이 낳자고 했던 내가 무색해진다. 소리를 치고 몸부림하며 아기를 낳았다. 정신을 차린 후배는 땀범벅이 되어 3.7킬로의 아들을 엉거주춤 안았다.
그녀는 웃었다. 난 아쉽지만 그녀는 신이 났다. 첫아기보다 환상이라고 했다. 회음 열상도 거의 없다. 그게 너무 좋다고 했다. 아드레날린으로 무장된 그녀는 아들에게 젖을 물리고도 갈 때까지 내내 떠들어댔다. 나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그녀는 반대다. 그녀가 만족해하니 그러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