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 유진, 넷째를 낳다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90년생 유진은 넷째 아기를 낳으려 한다. 새벽 일찍 바쁜 남편은 출근을 했고 그 후 진통이 시작되었다. 정말로 빠질 수 없는 일 때문에 남편이 올 수가 없었다. 둘째와 셋째는 오는 길에 운전해서 어린이집에 맡기고 7살, 맏이, 성보만 넷째출산에 함께한다. 요즘 특별히 바쁜 남편이라서 미리 경우의 수를 준비했기에 당혹스럽지는 않다. 세 아이를 병원에서 낳은 기억은 그리 나쁘지 않다. 사실 살면서 그때는 왜 그랬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긴 했지만 그녀의 삶은 너무 바빴다. 첫 아이부터 자연주의출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생각만 있었을 뿐 정신이 없어서 낳고, 또 낳고 그랬다.

참 덤덤하게 아기 낳은 이야기를 하는 그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용감해 보이기도 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넷째가 생긴 것에 대한 주저함이 없었다는 것 또한 놀라웠다. 한편으로 나도 임신이 되는대로 아기를 낳았어도 되었을 것이라는 후회 아닌 후회도 들었다. 산과를 잘 아는 나는 자만심에 혼자 씩씩하게 터울 조절을 했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고 강요보다 더 심한 세뇌를 시키는 시대였다. 그것은 참 성공적인 인구

축소정책이었다. 그리 생각하니 정책의 희생자인 셈이다. 유진을 보며 나의 잘못된 생명관을 알아챘다. 만약 셋째를 낳고, 또다시 넷째가 생겼더라면 유진처럼 덤덤히 아기를 낳을 수 있었을까! 남편이 자식을 키우는것이 부담되어 스스로 정관 수술을 하러 병원으로 갔을까! 지금도 인류는 계획된 아이의 수를 갖게 된 후에 생기는 생명은 반가워하지 않는다. 부부들은 아기가 생길까 봐 열렬히 사랑하기가 두렵다.


어쩜 저럴 수 있을까?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다. 진통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80%의 진행을 보이고 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조용히 아기 받을 준비를 마치고 긴장한 큰 아이와 작은 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삼 십분 지났을까? 아기가 골반으로 내려간 느낌이 든다고 했다. 네째 출산이니 이제 아기가 언제 내려오는지, 그 느낌이 어떤지, 어떤 자세가 아기 낳기에 편안한지, 알고 있다. 힘이 들어간 강한 수축에 아기는 쑥쑥 내려온다. 세 번의 진통으로 머리가 보이고 몸이 나왔다. 회음열상을 최소화 하려면 호흡 조절이 중요하다. 아주 잘 따라 했다.
3.7킬로 사내 아이는 깨끗이 엄마 몸에서 나왔다. 긴장한 모습이였지만 7살 형아는 그 광경을 낱낱이 보았다. 출혈은 없었고 작은 상처 세 바늘 꿰메 주었다. 이 역시도 잘도 참는다. 무엇이 그녀를 그리 담대하게 한걸까? 반대로 다른 이들은 왜 그렇게 아파하고 괴성을 지르며 아기를 낳는걸까? 안아팠냐고 물었다. 아프긴 하다며 참을 수 있다고 했다. 조용한 출산의 현장은 모두 내 카메라에 담겼다. 뭐 이런 출산이 다 있을까? 그녀의 출산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한 수를 던져주었다. 고요에 내가 다 힐링이 되었다. 유진이 출산을 황홀하게 느꼈을지는 모르겠으나 고요하게 낳은 것은 분명하다.


오전 열시가 넘어간다.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안쳤다. 아기에게 젖을 물려주고 정리를 마치니 아침밥도 못 먹고 엄마를 따라온 성보가 보였다.
"김밥 먹으러 갈까?"
몇 시간 함께 해서인지 흔쾌히 따라 나선다.
슬쩍 손을 내미니 내 손도 잡는다. 오빠 소리만 들었었는데 형아라고 부를 동생이 생겨서 좋단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재잘재잘 끝없이 이야기 한다. 김밥가게에 들어서서는 자기는 생선을 좋아한다며 생선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하다가 '갈치!'를 외쳤다. 그 아이는 비싼 갈치를 좋아한다고 했다.

김밥을 먹었던 성보는 집에 갈 때쯤 미역국이 더 먹고 싶다고 했다. 냉큼 차려 주니 어제 김밥을 먹었냐는듯 참 잘도 먹는다. 어미도 애썼지만 성보의 애씀도 못지 않았음이다. 남편은 출산 사진만 받아 본 채 결국 오지 못했다. 마지막 서비스로 내가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형이 된 성보는 차를 타자마자 코를 곤다. 아이가 고는 코골이 소리는 새삼 더 귀엽다. 어떤 소리보다 좋다. 깨지 않게 살살 운전을 했다.

아파트 옆엔 숲이 있다. 임신 내내 오르내리고 계절을 느끼며 걸었던 그 숲, 막 태어난 아기와 함께 자란 나무와 꽃과 풀들이 환영의 손짓을 한다. 잠에서 깨어 어리둥절한 성보가 낯익은 집을 보더니 정신을 차린다. 들꽃 향 섞인 바람이 지나간다. 세 식구는 함께 손을 흔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주 잠시, 아기를 안은 어미와 형이 된 아이의 딋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가 태어나서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조산수가 협상을 하러 가기 위해 이것저것 했던 준비가 진통 소식에 물거품이 되었다. 의료 단체들은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이런저런 회의와 협상을 한다. 모든 행위와, 시간과, 노력들이 돈과 연결된 수가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그래서 그 행위에 가치가 먹여지지만, 이런 출산을 하고 나면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체계를 잡고 수가가 정해지고, 많은 정책이 있는 것이 이런 출산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직접 끓여 낸 미역국과 밥의 가치는 그들이 정한 가치 이상이다. 쓰다듬는 손길과 갓 태어난 생명을 보듬는 마음은 돈이라는 경제 가치로 환산될 수 없다. 진화되지 않은 사람의 몸은 그래서 가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출산도 그 부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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