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야속하게도 잘 내려오지 않는다. 에이미가 준비한 최면 출산은 물 건너 간 듯이 보이는 상황이지만 정작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보인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그녀는 그렇게 외치며 24시간째 몸을 마구 흔들어 대고 있다. 자궁문은 이미 다 열린 지 12시간 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밤 새 지친 우리는 밖에 나가 정신을 차리고 밥을 먹었다.
둘째 출산인데도 이렇게 느긋할 수 있는 건 에이미의 특별한 각오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미국서 임신을 했고 두려운 진통은 아기를 잘 내 보낼 수 없었다. 제왕절개로 아기를 만났고 그 후 둘째가 생기자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만날 계획을 세웠다. 미군인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지 이제 여섯달이 지나간다. 브이백(VBAC:제왕절개 후 자연출산의 약자)을 시도하기위해 한국의 의료진들을 섭외하고, 대형병원과 가까운 친구의 집을 출산 장소로 정했다. 수중 출산 장비도 완벽히 준비했다.
이틀전부터 에이미는 오랜 진통을 하고 있다. 밤새 자궁문은 벌써 다 열렸다. 그런데 아기가 안내려온다. 지금껏 자궁문이 모두 열려 12시간을 기다린 경험이 없는 의료진들은 슬슬 불안하다. 병원이었다면 수술을 해도 벌써 했다.
그곳의 의사도 조산사도 말은 안했지만 서로에게 위안을 받고 있었다. 에이미를 위해 우리들도 모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양막을 터뜨리기로 결정했다. 의사는 멀찍이 서서 지켜만 보았고 내게 그 일을 하는것이 좋겠다며 뒤로 물러났다. 12시 방향에 양막에 작은 구멍을 냈다. 골반에 아기머리가 진입이 제대로 안 된 경우 인공파막(artificial rupture of mambrane)은 조심스럽다. 너무 한꺼번에 양수가 나오면 탯줄이 함께 나오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된다.
오랫동안 진통을 겪은 아기도 힘들었는 지 양수에 태변이 진득하게 섞여 나왔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아기의 안위를 걱정하였다. 다행히도 아기 심박수는 고르게 들렸다. 에이미는 양수를 터트리자 아기의 하강을 돕기 위해 더 격렬하게 움직였다. 진통하지 않는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일억 만리 타국서 브이백(VBAC vaginal birth after cesarean section)을 결정하고, 몸과 마음을 준비한 에이미가 전사 같았다. 진통은 더 강해졌고 그로부터 30분 후, 에이미는 기적처럼 물속에서 아기를 낳았다. 기운이 하늘을 찌른다. 물에서 아기를 안고 나와 침대에 누운 에이미는 '해냈다 해냈어 ~내가 해 냈어'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최고의 찬사를 에이미에게 보냈다.
엄마와 아기 사이에 애착(bonding)이 형성되는 시기는 출산 후 세 네시간 내에 일어난다.
엄마는 아기가 이쁘고 아기는 엄마를 알게 되는 첫 경험을 하는 것이다. 아기가 젖을 빠는동안에 분비되는 옥시토신(oxitocin)호르몬은 자궁수축을 도와 엄마의 후산과 산후 출혈을 막아준다.
"모두 살게 마련이지~" 어른들의 말 처럼 대부분 집에서 출산을 한 오십 년 전 쯤엔 아기랑 엄마는 분리되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기는 첫사랑을 경험하고 따듯한 엄마의 손길과 함께 했었다.
출산 막바지에 최고조로 분비된 아드레날린 호르몬은 애착형성을 위해 아기와 엄마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이틀밤을 새운 에이미와 아기도 그랬다.
걱정했던 아기가 건강했으니 다행이다. 에이미는 아직 후산을 못한 채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쓰러질 것 같았다. 얼른 쉬고 싶었다. 출산 후 삼십 분이 지나가도록 태반이 나오지 않는다. 또다시 삼십 분이 지나간다. 또 고비를 맞았다. 지금부터는 조산사의 영역이 아니다. 미안했지만 남은 숙제를 남기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가 태어난 지 두 시간째, 그시간 까지 태반이 만출되지 않자 에이미는 대학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하지만 태반을 꺼내려는 의료진의 제의를 무시하고 에이미는 의정부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왔다.
'차 후 일어나는 일에 대해 병원의 의료진은 일절 책임을 지지 않는다' 라는자퇴서를 썼다고 했다. 이 또한 어디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중차대한 사건이다. 일반적으로 늦게 나오는 태반은 조각조각 떼어내는 또다른 과정을 겪는다.에이미는 그것조차도 알고 있었던 거다.
내 몸에 손대지 말라며 탯줄을 매달고 집으로 간 에이미!!! 집으로 돌아간 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째 아침!
태반이 나왔단다! 태반이!!! 출혈 하나 없이 세상 예쁘게 태반만 똑 떨어졌단다.
사실 진통하는 그녀 곁을 지키는 내내 온갖 상상들이 나를 괴롭혔다. 첫아기때 수술자국이 벌어져서 자궁이 터지거나 그로 인해 아기와 산모가 죽는 상상은 아기가 건강히 태어날 때까지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하지만 아기를 건강하게 태어나게 한 일등 공신은 그 누구도 아닌 에이미 자신이었다. 아기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몸을 믿은 정신력은 출산의 원동력임을 몸소 보여준 에이미. 책에서만 보았던 믿음의 결과를 난 에이미를 통해 보았다.
그녀는 내게 큰 스승 중 한명이다.
그 후로도 에이미는 미국서 두 명의 아기를 자연출산으로 낳았다. 페이스 북의 그녀는 여전히 건강하고 씩씩한 엄마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