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홍천에 왔다. 낮동안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집구석구석을 살피고 , 치우고, 바꾸고 했다. 계속 말썽을 부리던 부엌 수전이 결국 수명을 다했다. 수전만 바꾸려 싱크 아래를 손보던 동생과 남편이 더 크게 일을 벌여 놓았다. 결국 읍내의 싱크 공장에서 부엌을 모두 바꾸기로 계약을 했다. 살지도 않는 집에 돈을 쓰려니 씁쓸하긴 하지만 결국 무엇이던 해야 하는 시기는 오게 마련이다. 진통이 시작되면 아기를 낳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단풍구경 좀 가려던 날, 오늘! 진통 오는 산모 소식에 여행은 찬물이 끼얹어졌다. 새벽에 일어나서 김밥도 싸고 반찬과 맨밥도 가져가서 길거리표 라면에 말아먹기로 한 계획은 그저 계획으로 끝났다. 준비했던 재료들은 올케 몫이다. 세수는 가서 하기로 하고 우선 시동을 걸었다. 홍천의 오늘 아침은 영하 3°, 앞 유리창엔 성애가 빼곡해서 앞이 보이질 않는다. 단풍을 보러 가는 강원도 방향 도로는 이른 새벽부터 주차장이다.
초산이건 경산이건 내게는 출산이 우선순위다. 이 일을 접기 전까지 그럴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것이 일 순위다. 누누이 어미들에게 '진통 시작'에 올인하지 말라고 해 놓고선 정작 자신은 올인을 한다. 출산의 장소까지 가는 시간, 준비하는 시간 등등은 산모가 도착하는 시간과 적절히 맞아야 한다. 허둥대는 모습은 보이기 싫다. 날이 추워졌으니 따듯이 해놓는 일도 더해졌다.
새벽 다섯 시 반, 부재중 전화, 여섯 시 17분, 부재중 전화. 통화가 안되어 불안해진 그들은 비상전화로 3'30"간격의 진통 상황을 알려왔다. 삼분 삼십 초 간격의 진통은 진진통이 맞다. 시작시간이 새벽 4시경이면 간격만 짧지 아직은 진진통이라고 할 정도의 강한 진통은 아닐 것이다. 이제 시작한 지 겨우 세 시간이 되어간다. 한 시간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진통이 강하다거나 자주 온다는 그들만의 이야기로 실체를 예측하기 힘들다. 그래서 통계를 이야기하고 산과 책에 근거를 둔다. 오래된 경험도 한몫을 하지만 두려운 산모에게 초산이라서 아직 멀었다는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더 무섭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먼 것은 맞다. 초산의 출산에 걸리는 시간은 15시간! 처음 예닐곱 시간은 충분히 진통을 즐기면 된다. 대부분의 산모들은 진통이 시작됨과 동시에 대부분 리셑 되는 듯 보인다. 그동안 알았던 것들을 몽땅 잊는다. 일일이 다시 알려주고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슬 사진도 보내오고 진통 간격 어플도 엄청 많이 보내온다.
아침 열 시 반, 그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서둘러, 마음 졸이며 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천천히 샤워도 하고 예쁘게 화장을 해도 되었을 것을!
왜 나는 지금껏 "진통"에 끌려다니고 있을까?
내가 아는 어느 아기 받는 사람은 그렇게 느긋할 수가 없다. 정말 급하게 되는 진행 앞에서도 지극히 초연하다. 설사 아기가 태어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상황을 받아들인다. 난 죽어도 못 그런다.
열 시 사십 분~그들이 도착했다.
"까꿍?" 나의 재롱에 웃지를 않는다. 제대로 진통 오는 것 맞다. 50% 진행되었다. 7시간 만에 50% 진행된 것은 대단히 희망적이다.
야홋! 신난다! 순산이다! 정말로 진통은 2.3.4분 간격으로 온다. 둘라들을 불렀다. 좋은 날인지 꽉 찬 스케줄 조정하느라 난리다. 11시, 젊은 그녀는 진통을 잘 견디고 있지만 죽을 맛이란다. 진행이 잘 되니 당연하다. 진통을 줄이기 위해 풀을 준비하고 따듯한 물에 들어갔다. 하지만 간격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도 따듯한 물은 진통을 줄여준다. 물 덕택에 후루룩 풀려버린 자궁문, 그 길 따라 쑥쑥 잘도 내려오는 아기. 도착한 지 두 시간 만에 자궁문이 다 열렸다. 삼 십분 후 양막이 보인다. 뽀얀 것이 깔끔하다. 아기를 담고 있는 막은 아기의 건강을 알려준다. 막 안의 아기 머리가 단단하다. 좀 더 애를 써야 한다. 둘라들과 나, 세 여자는 그녀의 힘주기를 돕고 남편은 밖, 소파에 있다. 어미가 맘 편하게 힘을 줄 수 있도록 아기가 태어나거든 들어오시라 했다. 세 걸음 밖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후 한 시 이십사 분, 도착한 지 세 시간 후 아기를 만났다. 뛰어들어온 그는 아기를 보고 한참을 훌쩍인다. "우는 거야? 왜 울어? 진짜 울어?"
거꾸로 있어서 걱정!
하늘을 보고 있어서 또 걱정!
예정일에 태어나지 않아서 걱정!
지금! 온갖 걱정은 다 도망가 버렸다.
스믈여덟의 초산, 3.1킬로의 적당히 큰 아기, 비좁지 않은 골반, 남편의 외조, 자연출산에 대한 의지 등이 그녀의 출산 시간을 앞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