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안의 블루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자연출산 이야기

by 김옥진

아무런 조건 없이 임신을 한 세상의 모든 여성은 편안하게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세계가 동맹을 맺어야 하지 않을까? 국경과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산파이고 싶다.


다음 달이면 한국 비자가 만료되는 만삭의 필리핀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기를 낳아본 경험이 있는데 출산비용이 얼마냐고만 묻는다. 의료보험이 있는지, 남편이 있는지, 예정일이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답을 줄 수가 없었다. 카카오톡 사진의 그녀는 짙은 화장을 하고 가슴을 반쯤 드러 낸 사이로 문신이 여기저기 보인다. 건강하지 않을 거란 걱정이 앞선다. 타국에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그녀의 아기는 무슨 생각을 할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출산을 돕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한 일이다. 그런데 뒤에 일어날 일을 상상하면 마음이 무겁다.

성병에 양성 판정을 받은 결과지를 보내온 산모는 그것이 심각한 것인지 인지하지 못한다. 가끔은 임신으로 인해 매독 같은 성병들이 가양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 성병은 그런 종류가 아니다. 초기 결과가 나왔을 때 부부가 함께 치료를 해야 했다. 증상이 없었는지 남편은 치료를 하지 않았단다. 물론 잘 낳아 별 탈없이 지나갈 확률은 많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에게서 오는 불안의 원인과 말하지 않아도 껄끄러워하던 남자의 묘한 태도도 이제야 이해 가 간다. 편견일 수 있지만 저 병은 필시 남편으로부터 옮겨졌을 것이다. 부끄럽게 생각하고 아내에게 용서를 구해도 시원찮을 것인데 도대체 저 뻔뻔함은 무엇일까?
태어나면서 엄마로부터 균이 옮겨져서 아기에게 다른 합병증도 올 수 있으므로 그녀는 병원 출산을 해야 한다.

미국인 목사부부는 한국에 산 지 오 년이 되어간다. 지금까지 그녀의 아기를 세 명이나 받았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네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상담을 왔는데 셋째 아이가 동양 아이였다. 중국 선교를 하던 중 탈북한 만삭의 여인이 그들의 집으로 피신을 왔고 다음날 아기를 낳았고, 아기를 낳자마자 사라진 엄마를 대신해 아기를 키웠다고 했다. 지혜라고 이름 지었다. 마침 둘째 아기가 돌이 되어 젖을 떼려던 시기여서 계속해서 젖을 줄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만날 때마다 괜스레 빚을 진 것 같은 느낌과 고마운 마음이 교차한다. 이 년마다 아기를 낳을 거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더니 정말 그로부터 이년마다 아기를 낳았다. 커가는 아이들 속에서 함께 자라는 지혜도 이제 열 살이 되었다. 그들은 지혜에게 한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만방으로 애를 썼다. 혹여 탈북에 성공한 엄마가 지혜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셈이다. 영어를 쓰는 가족들 사이에서 지혜는 아직 한국말을 배우지 못했다. 요사이 일주일에 한 번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고 하면서 뜨문뜨문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한다. 리디아는 올 10월에 일곱 번째 아이를 낳게 된다. 그때도 성큼 자라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 봐야겠다. 지혜의 한국어 실력도 그때쯤이면 더 좋아지길 기대해본다.


원치 않는 넷째, 인공유산을 인간적으로 하는 병원을 소개해 달란다. 인공유산이 인간적인 것인가? 사랑하는 아내가 겪을 유산의 과정이 평화롭기를 바라는 남편의 생각은 얼마나 모순인가! 병원을 소개해 주는 것이 옳은 결정인가? 소개받은 의사가 느낄 윤리적 갈등에 대해 나는 책임이 없는가?


메리는 산전 진찰 중 균 검사에서 나온 결과로 많이 슬픈 듯 보였다. 내게 쭈뼛거리며 내민 검사결과지엔 성병 양성 반응이 나와 있었다. 애써 눈을 돌리며 남편과 치료를 함께 했다고 했다. 함께 온 남편도 딴 곳을 보고 있다. 똑같이 딴 곳을 보고 있는 두 사람의 마음은 미안함과 섭섭함일까?
두 사람은 치료를 마친 후 아기를 낳았다. 진통하는 메리를 보며, 태어난 딸을 보며, 남편은 살아갈 다른 길을 보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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