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훌 다 떨쳐내고 홀로 나를 만나고 싶었다. 어떤 시선이건 개의치 않는 곳이길 기대했다. 24시간, 365일, 늘 출산을 위해 대기했던 나를 돌봐야 했다. 나를 잘 아는 지인이 인도의 명상센터에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눈이 번쩍 띄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했다. 그곳까지의 여정에서 만난 복잡한 공항과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은 '홀로'라는 마음으로 들리지 않았다. 이상했다. 신기했다. 시끄러움 속의 고요였다. 내 마음이 그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고요해졌다. 걱정스럽게 나를 보낸 남편의 시선이 가끔은 생각났지만 시선이 사라지자 난 자유로와졌다. 오토바이 매연과 함께 콧 속으로 들어오는 후끈한 바람은 내 나라를 벗어났음을 알게 했다.
밤늦게 도착한 숙소는 해변을 끼고 있다. 땀으로 젖은 듯한 짙은 오크색 숙소 문을 열자 더욱 고요는 내 곁으로 와 있었다. 창문을 열었다. 매연냄새 없는 똑같은 온도의 공기가 고요한 방으로 들어왔다. 뜰 앞의 열대 꽃향이 나의 고요함을 빛나게 해 주었다. 혼자다. 혼자 바다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밤바다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까만 바다에 하얀 이만 들어낸 파도는 금방이라도 나를 검은 물속으로 끌어당길 것 같았다. 갑자기 혼자의 행복한 고요는 어딘가 멀리 사라지고 대자연 앞의 두려움에 쿵쾅거리는 심장만 느껴졌다. 물가에 발도 못 담그고 뒷걸음질하는 하잘것없는 내가 보였다. 내 몸은 고요가 낯선 지 밤새 자꾸 뒤척여졌다. 창이 환하다. 아침의 새소리가 고요를 깨웠다. 길게 나 있는 꽃길을 따라 다시 느리게 바다로 갔다. 어젯밤 마주 했던 두려운 바다가 거기 있었다. 무섭다고 느꼈던 바다는 하얀 구름과 맞닿아 또 다른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내가 아직 더 고요해져야 바다도 고요해 보일까? 하루 종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음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마음도 들여다보았다. 고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한 번도 나를 보지 않았던 것이 고요를 잃어버린 이유인 듯했다. 나를 보려 애쓰면 고요가 친구 해줬을 것이다. 이리 멀리 오지 않았어도 나를 만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내 마음이 고요하면 밤바다의 두려움도 이내 고요해질 거 같았다. 며칠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새벽 꼭두의 바다도 만나고, 고요한 낮 바다, 해지는 붉은 바다, 여전히 두근거리는 밤바다도 만났다. 어느 날 드디어 파도가 내 몸에 닿았다. 바다를 만지며 나를 만나고 있었던 거다. 바다가 내 맘이었나 보다. 두근거리고 무서운 바다가 내 맘이었나 보다. 난 그 날 나를 마주 했다.
대부분의 어미들이 그렇듯이 그녀 역시 홀로 당당했다. 한밤중 시작된 진통은 그녀를 더욱 그렇게 만들었다. 깊이 잠든 딸을 데리고 찬 겨울밤을 달려온다는 것은 엄마의 사랑에 반하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덩그머니 딸만 두고 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남편을 보호자로 딸 곁에 있으라고 했다. 아니, 그냥 잊고 피곤하니 함께 자라고 했다. 혼자 아기 낳을 테니 아침에 복잡한 출퇴근 시간 지나면 오라고 말했다.
새벽 한 시, 그녀는 지인의 차를 얻어 타고 홀로 조산원으로 왔다. 무엇을 믿고 그녀는 홀로 아기를 낳으려 한 걸까? 지인을 보낸 조산원엔 나와 그녀뿐이다. 산실엔 라벤더 향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신을 한 곳으로 모아주기를 도왔다. 점점 강해지는 진통이 오자 따듯한 물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물에 들어간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고 간간히 밀려오는 파도 같은 진통은 따듯한 물에 평정되는 듯 보였다. 그렇게 사방은 고요와 어둠으로 몇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작은 소리도 내지 않을 만큼 진통에 당당했다. 당당함과 만난 물과 향기는 스스로의 내면으로 들어가 어미만이 할 수 있는 본능을 쉽게 만나게 했다. 내가 나를 마주하러 홀로 떠났던 여행처럼, 고요가 나를 마주하는 한 방법인 것을 깨달았던 것처럼, 그녀도 스스로를 홀로 마주할 수 있는 고요가 필요했던 거였다.
고요함은 출산에 이롭다. 드디어 아기가 태어날 것을 직감한 그녀는 힘을 주기 시작했다. 진통에 걸맞은 그녀의 몸은 아기가 쉽게 태어나도록 춤췄다. 난 단지 그녀가 아기를 잘 낳고 있는 지를 지켜보는 최소한의 친구로 존재했다. 아기가 물속으로 나왔다. 물속에서 눈을 마주친다. 어미는 얼른 아기를 꺼내 가슴에 안았다. 엄마 품에서 새 생명은 고요하다. 사랑을 확인하는 신비한 짧은 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아침에 느지막이 큰 딸을 데리고 남편이 찾아왔다. 미안한 얼굴과 행복한 얼굴이 교차된다. 아내의 손을 잡고 이마에 뽀뽀도 했다. 어린 큰 딸이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울음으로 마음을 알리는 것이 쉬웠나 보다. 잠시 남편의 가슴에 갓난것을 얹고 큰 딸에게 어미품을 내어 주었다.'네 동생이란다' 당당하고 고요했던 그녀의 출산은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