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경의 지인들 중에는 조산원 출산을 한 사람이 많다. 한편 부럽고 슬쩍 질투도 생긴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정답이 없지만 나름 인생의 시작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것이 최소한 그들 부류에서 만큼은 옳은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엔 둘째 출산이니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되었다.
안돼! 안돼! 왜 이런 곳에서 아기를 낳아! 큰 일 나면 어쩌려고! 남편의 반대가 절정인 오늘, 무릅쓰고 가보고 싶었다. 조산사의 설명을 듣고는 혹시 남편이 찬성해 줄지 모를 일이니까. 결국 상담 내내 남편은 민망할 정도로 딴 곳을 보거나 딴짓을 했다. 괜히 왔나 싶었다.
결국 병원에서 출산을 했다. 출혈이 심해서 수혈도 받았다. 남편은 그것 보라며 병원에서 낳기를 잘한 거라고 의기양양했다.
산과적으로 '건강한 몸'인지는 사실 아기 낳을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녀가 왜 출혈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사실은 출혈!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를 위해 참 다행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기가 크거나>3.8킬로 이상
유도분만을 하거나>
섹스파트너가 많았거나>
인공유산을 많이 해서 자궁 내 상처가 많거나>
두 시간 내에 급속으로 출산을 하거나>
무리하게 아기를 꺼내서 질 벽이나 주위 근육이 많이 파열되었거나>
몸이 많이 부었거나>
혈압이 높거나>
5cm 이상의 자궁근종이 있거나>
전치태반이거나>
이럴 경우 산후 출혈을 할 수 있다.
"건강하십니까? 그렇다면 조산원 출산을 하셔도 됩니다" 이 말에서 건강하다는 것은 , 그래서 좀 더 큰 의미이다. 출산에서의 '건강하다'는 몸과 마음 모두의 건강을 의미한다. 살아낸 삶이 산과적으로 건강한지 아닌지는 의료인은 알 수 없다. 내가 스스로 나에게 묻고 결정할 일이다. 약물의 개입과 침습적 의료를 동반하지 않는 자연출산은 그래서 모든 여성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힐금거리고 들어온다. 마땅치 않다는 듯, 까칠한 인사를 한다. 남편이라고 했다. 그것도 연하의 남편이란다. 기세 등등한 연상의 아내들과는 달리 기죽은 그녀가 궁금하다.
남편은 눈 마주침을 피한다. 쳐다보고 싶지 않다는 것은 거부라는 무언의 표시이다. 사랑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힐금거리다 못해 이제는 노려본다. 보다 못해 왜 노려보냐고 했더니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연상의 아내가 중간에서 바늘방석이다. 불끈 올라온 흔들리는 맘을 가라 앉히고 아내를 보았다. 가여운 마음이 든다. 꼰대 같고 가부장적인 남편을 이곳 조산원까지 데리고 온 연희는 어찌 보면 승자다. 첫아기 출산 이야기를 하며 눈가가 붉어진다. '시댁 식구들에 둘러싸여서 아기를 낳았어요. 너무 싫었는데 싫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그냥 참아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돌이켜보니 화가 났어요. 그래서 이번 둘째 출산엔 아무도 내 몸을 보지 못하게 하고 싶어요. 온전히 아기와 저 만을 위한 출산을 할 거예요. 그렇게 해 주실 수 있나요? 꼭 그러고 싶어요.'
남편이 뜬금없이, 그럼 부모님은 언제 아기를 볼 수 있냐고 볼맨 소리를 한다.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해 보라고 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연희만을 위한 출산을 준비할 거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고 출산 호르몬에 취해서 자연에 몸을 맡긴 그녀를 보고 싶다. 남자는 느낄 수 없는, 여자만의 황홀감을 느끼게 할 거다. 자연 출산을 통해 남편의 거스리는 말들과 행동도 가벼이 무시할 수 있는 저력을 선물하고 싶다. 그 저력은 당당히 세월에 맞서는 연희의 삶에 영양분이 될 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마땅치 않아했던 남자는 마땅해하는 여자가 낳은 아기를 보고 웃었다. 들어보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아내의 셋째 출산은 그가 상상할 수 없는 편안한 것이었다. 꼭 내가, 최선을 다해, 행복한 출산을 경험하게 해 주리라 다짐했었다. 빠른 진행에 혹시 모를 놓쳐짐이 있을까 봐 안달이 났던 시간들, 다행히도 척척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아기는 빠르게 세상으로 향했다. 따듯한 물에 들어간 그녀가 환호하는 모습에 내가 위로되었고 흐르는 땀을 닦아 줄 때 그녀는 용기를 냈다. 물에서 건져 올려진 아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희를 쳐다보았다. 아기는 고르게 숨 쉬었다.
연희가 원하던 대로,
내가 원하던 대로.
수중 출산은 끝났다.
연희가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