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로 자주 봉사를 가곤 하는 조산사 선배는우리나라에서는 아기를 잘 낳기 위해 출산교육을 한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단다. 아기가 나오는 과정은 어떻고, 그럴 때 남편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어떤 자세가 출산을 도와주는지, 우리나라 산부인과 병원시설은 어떻고 저떻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임산부가 말하길" 출산하는데 교육이 왜 필요해요? 그런 거 없이도 저는 첫아기를 아주 잘 낳았거든요." 잠시 말문이 막힌 선배는 출산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억지 아닌 억지를 부렸다고 했다.
어떤 자세가 아기를 내보내고 자신의 안위에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다. 몇%, 몇 cm, 몇 시, 몇 번의 힘주기, 등등의 질문은 애초부터 없다. 왜? 그들의 상식으로는 개성 있는 각각의 생명들은 달이 찼다가 기울듯이, 봄이 온 후 여름이 오듯이 아기들은 자연스럽게 태어날 것이라고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기위한 기다림의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서로 다르다.
출산이란 많이 들여다보고, 궁금해하고, 해답을 찾는것이 아님을 아기를 낳은 후에 알게된다.출산을 가르치는것은 아기를 가지려면 어떻게하나를 가르치는것과 다르지 않다.
초산보다 경산은 충분히 더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을 수 있다. 심지어 의학적 개입이 전혀 없어도 잘 낳을 수 있다. 문득, 내가 하고 있는 출산교육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는가를 반추해 본다. 배우지 않고서는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생각들이 출산을 더 어렵게 만들지 않았을까?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아이를 낳고 젖 먹여 키우는 아프리카 여인의 훈수가 자꾸만 생각난다. 자연스럽게 온 생명은 자연스럽게 태어난다는 아주 쉬운 이치를, 많이 배운 우리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하느님을 누구보다 철석같이 믿는 남자.목사.남편은 아내의 출산이 무섭다. 그래서 첫 아이, 둘째 아이 모두 병원의 의사에게 도움을 받았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아이를 낳아 본 장본인은 두 아이를 낳은 경험으로 나름 출산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고 스스로가 건강한 몸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첫 아이 부터 의료적이지 않은 자연스런 출산을 꿈꾸었는데 무서워하는 남자, 목사,남편을 위해 병원 출산을 했고 둘째는 엉겹결에 또 병원서 낳았다. 셋째가 생기자 이번엔 반드시 의료적이지 않은 곳에서 출산을 하고 싶었다. 자연스런 출산에 대해 공부도 했다. 지금껏의 출산처럼 건강하다면 똑같은, 덜 인간적인 출산방법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남자.목사.남편은 그래도 무섭다고 했다. 게다가 두 아이를 낳았던 병원에서는 뭐하러 아기를 힘들게 계속 품고 다니냐며 예정일 다 되어가니 유도 분만을 추천했다. 남자. 목사.남편은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두 아이를 받아낸 자의 최선은 그녀로 부터 아이를 최대한 빨리 꺼내주는 것이 인연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렇게 세 번째 아이는 두 아이보다 못한 선한 의도의 유도 분만으로 태어났다. 분명 성서에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 이야기는 없었을터 되풀이하여 성서를 읽었을 그가 왜 생명의 탄생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