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일상
작은딸은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은 후 내게 꼭 읽어보라고 말했다.
책을 읽어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간 지 어언 육 개월이 흘렀다. 돌이키니 지나고 나면 별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줘버린 채 시간이 갔다. 심신이 한가해진 어느 날 카페에서 그 책을 읽었다. 첫 장부터 작가의 말이 차졌다. 푹푹 빠져들었다.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책은 며칠간 내 언저리에서 굴러다녔다. 일주일 걸려 마지막 페이지의 작가의 말을 읽고 책을 덮었다.
딸은 곳곳에 인덱스를 붙여놓았다. 인덱스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조심스레 책장을 넘겨야 했다. 새 책 처럼 페이지도 눌려 있지 않았다. 얼마나 이 책을 아끼고 있는지 표시를 해 놓은거다. 인덱스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다. 다른 책 보다 유난히 많은 인덱스가 붙어있는 걸 보면 심금을 울리는 문장들이 많았나 보다. 인덱스가 붙여진 글귀를 잘 이해가지 않아 여러번 읽은 전라도 사투리 다음으로 많이 읽었다. 슬그머니 딸의 마음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나와 공감되는 부분이 맞아떨어진 곳을 읽을 땐 딸을 안고 있는 것 같은 따스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홍천 시골집으로 큰딸과 둘이 들어왔다. 밀려나 있던 진초록의 책도 챙겼다. 티브이를 켜지 않으니 모든 시간이 내 것인 시골의 겨울, 꿈틀거리는 봄기운에 조바심 내지 말라는 듯 흰 눈이 덮였다. 하얀 눈에 반사되어 들어온 햇살 덕에 집안이 더 환하다. 책을 읽다 눈이 아파지면 고드름 끝의 낙숫물과 반송 위의 눈꽃을 본다. 언제 눈을 뿌렸냐는 듯 하늘은 파란 물이 뚝 떨어질 듯 청명하다. 책 속의 장소를 눈 감고 그려보기도 하고 그녀의 아버지 마음도 따라가 본다.
책을 다 읽기까지 이틀이 걸렸다. 다른 나라말 같은 전라도사투리에 읽은 곳을 여러 번 되읽었다. 그러고는 한 번씩 따라 해보았다. '그래 제~, 그렇고만 잉~' 잠자리에서 읽다 책을 덮으면서 나도 모르게 사투리 말로 밤인사를 했다.
책 뒷장표지에 쓰여있는 문구,
"내가 알던 아버지는 진짜일까?"에 마음이 닿았다.
어찌 보면 스스로도 알지 못하며 사는 내가 누군가에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
저승길을 앞에 두고 있는 아버지가 떠오른다. 질곡의 세월을 보냈을 아버지의 마음을 ,과거를 나는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살면서 아버지는 말하려 하지 않았고 나 또한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그냥 아버지였고 딸이라 불려졌을 뿐. 그래도 불쑥 내가 알던 아버지도 진짜였을까 라는 생각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