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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r 21. 2024

보홀여행 6. 바다가 나를 안았다

스노클링 스폿

발라카삭 섬을 떠난다. 거북이들의 초록 섬이 점점 작아져 점이 되고 급기야 사라졌다. 눈을 바다로 돌리면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고독한 표류자가 된다. 발밑 바다색은 짙은 초록, 얼마나 깊을까? 예쁜 물고기들이 모여있는 바다의 핫플레이스가 어딘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유명한 물고기도 있을 테고 화려한 멋쟁이도, 우리처럼 수수한 물고기들도 살고 있겠지. 바다를 들여다보는 우리들은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 질까. 사지를 허우적대는 우리를 보고 얼마나 배꼽을 뺄까.

어느 지점부터인가 배의 속도가 느려졌다. 초록의 깊은 바다에서 벗어나 에메랄드로 덮인 듯한 바닷속이 보인다. 엔진이 꺼졌다. 눈치를 챈 사람들이 수경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바닷속 구경을 하는 나 같은 사람들, 물 만난 고기 같은 사람도 있다.

어설프게 수경을 썼다 벗었다 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필리핀 가이드는 일일이 쓰는 것을 도와준다. 안경이 닿는 부분에 끼어있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린 후 피부와 수경만 밀착되게 쓰는 것이 포인트다.

머리카락 한올이 수경 안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또다시 수경을 고쳐 쓰느라 물 위에서 버둥거릴 거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물 위에서 버둥거렸을까. 나도 별수 없을 거란 상상을 하니 또다시 웃음이 나왔다. 코로 입으로 짠물이 들어오는 것 또한 너무 싫다. 조심해야지. 필리핀 가이드의 손길이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듯하게 보인다. 처음으로 학교를 갔을 때 문 앞에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선생님이 생각났다. 안경을 쓰고 나도 필리핀 가이드에게 점검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드디어 두 번째 버킷리스트에 도전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바다에서 작은 배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다.

배와 연결된 사다리에 발을 디뎠다. 세 칸 만 내려가면 바닷물과 만난다. 발목, 종아리, 아랫배에 찬 기운이 올라왔다. 바닷물 온도보다 나의 체온이 더 높지! 알고 있는 당연한 것들을 바닷물이 삼켜버렸다. 구명조끼 끈을 다시 단단히 조였다.

뱃살들이 울부짖었다

빛나는 바다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저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나, 두울, 셋.....

부웅~~~

구명조끼 덕에 몸이 바닷물 위로 떴다. 팔을 휘저어 배에서 조금 떨어지려 하는데 순식간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구명조끼만 믿는 것도, 배 위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도 그놈의 두려움은 내 몸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요놈을 떨쳐내는 일이다.

일단 바닷속 구경은 제쳐두고 가만히 있어보기로 했다. 균형이 깨지는지 몸이 자꾸만 뒤집어진다. 거북이를 발라당 뒤집으면 버둥대는 것처럼 버둥버둥. 다시 목을 빼고 코로 심호흡을 했다. 코로 숨을 쉬는 것이 이렇게 편안한 건지 처음 깨닫는다. 물 위로 올라서 입으로 숨을 쉬는 연습을 세 번 했다. 코로 숨을 쉴 때는 느끼지 못한 폐가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것을 떨치고 나에게 집중한다. 마음이 조용해지자 몸이 착해졌다. 안경과 귀를 바다에 집어넣었다. 귀에 물이 닿으니 덜컹 또 겁이 났다. 또다시 집중! '귀도 물에 넣어야 된단다.' 내게 타일렀다.

똑같은 몸짓을 한 다섯 번 정도 했을까!


드디어 입으로 숨을 쉬며  안경과 귀를 바닷속으로 넣었다. 온전히 내 몸을 바다에 맡겼다. 그런 기분이었다. 온전하지 않으면 삐거덕 거린다는 것을, 모두 내주어야 모든 것을 만난다는 것을.

"바다가 나를 안아주었다."

이제야 바닷속이 보인다. 작은 야산도 있고 골짜기도 있다. 아기 손가락 같은 산호초 무더기 사이로 작은 물고기들이 잽싸게 회전하며 유영한다.

"에고 물속으로 들어오기가 그렇게나 무섭던? 들어오니까 어때? 멋지지? 괜찮은 곳이니 많이 놀다 가렴" 니모가 내 앞에서 조언을 건네고 친구 도리와 함께 저 멀리로 가버린다. 엔젤피쉬도, 줄무늬 돔도 떼를 지어 다니고 이름 모를 분홍빛 물고기 떼가 이리저리 플래시몹을 하듯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렇게나 많은 물고기들이 바닷속에 사는구나! 물고기에 관심이 없던 나는 고기들의 이름을 알 리가 없다. 동심으로 돌아가 물고기들과 친해지려면 이름부터 공부해야겠다.


둥둥... 물결이 흔들리는 데로 몸을 내버려 두었다. 물 위에 있는 등은 따끈따끈하고 배와 팔다리는 기분 좋게 선선하다. 가끔씩 참방거리며 물장구를 쳐 방향도 바꾼다. 이런 신세계를 이제야 만나다니...

"여보!!!"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공중으로 들었더니 손짓 발짓을 하며 다른 쪽으로 가라고 법석을 떤다.

배 옆에서 떠다니던 내가 배의 뒤꽁무니 쪽으로 와 있다.

바닷속 지형은 그대로인데 배가 움직인 거다.

슬슬 체력이 바닥을 보인다. 그리고 코로 숨을 쉬고 싶어졌다. 꼭 조여져 있는 구명조끼도 풀고 싶다. 부력으로 조끼가 자꾸 벗겨지려 해서 허튼 곳에 힘을 쓴 탓도 있다. 나중에야 알고 보니 구명조끼 뒤쪽에  또 다른 끈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줄은 다리 사이를 지나 앞으로 고정하는, 나처럼 조끼가 벗겨지는 것을 방지해 주는 끈이었다. 그것까지 조이고 물을 만났더라면 덜 힘이 들었을 것이다.

대부분 등 쪽에 달려있는 끈의 용도를 모르는듯했다. 바다에 떠 있으려면 구명조끼가 머리 쪽으로 벗겨지지 않도록 다리 사이에 끈을 고정하여야 구명조끼의 역할이 완성된다.


하나둘 다른 관광객들이 지쳐 올라오는데도

물 만난 고기가 된 딸들은 여전히 바닷속을 탐험하고 있다. 가자는 소리를 안 한다면 종일 물속에 있을 듯하다. 올라와서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엄지 척을 했다. 한 시간 동안 해님을 영접한 뒷다리 피부가 소시지처럼 붉다. 햇빛에 반만 탔다. 웃음바다다.

스노클링을 하는 지점에서 10미터 정도 밖은 아주 깜깜한 바다색을 띠고 있다. 바다의 절벽이라고 했다. 가이드들은 검은 바다로 나가지 못하도록 배 위에서 관광객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평평한 모래톱(Reef  flat)이 끝나는 지점이라고 했다. 보홀 바다는 근처에 깊은 심해가 있어서 고래나 상어 같은 큰 물고기들을 볼 수 있다. 보홀은 우리가 돌고래들과 고래상어를 만날 수 있는 천혜의 자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안전하게 모래톱 위에서만 바닷속을 구경했다.


배가 고파진다. 점심으로 한국식당서 삼겹살 구이를 먹는다고 한다. 아주 많이 먹을 수 있을거다.


오늘 바다는 나를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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