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ne face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크리스탈은 남편의 직장을 따라 한국에 온 지 일 년이 되었다. 미국에 살 때 세 아이를 가정 출산을 했으므로 이번에도 당연히 이번에도 그렇게 아기를 맞을 예정이다. 두 번 그녀와 가족들을 만났고 어느덧 임신 9 개월에 접어들어 가정방문을 갔다. 자그마한 체구에 막달에 들어선 그녀는 몸이 많이 무겁다고 했다. 나로서는 아기가 너무 커져서 다른 세 명의 아기를 낳을 때보다 힘겹지 않을까 하고 슬금 걱정도 된다. 그녀는 출산에 자신감을 보이며 스스로를 birth master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경산 외국인들처럼 출산 때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을 듯하다.

출산 예정일이 삼일 지나간 날, 아기맞이가 시작되었다. 아직은 괜찮다며 진통이 심해지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넷째를 낳는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출산 장비를 점검하고 스타트 라인에 선 선수처럼 숨을 고르고 아기 받는 애씀에 각오도 다졌다. 어떠한 출산이던 긴장감은 같다. 몇 시간이 흘렀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어떠냐고 문자를 보냈다. 대답이 없다. 불안하다. 20분 후에 다시 문자를 보냈다. 또 대답이 없다. 아까보다 더 불안하다. 이번엔 전화했다. 안 받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아기를 낳고 있는 것이 상상되었다. 갔다가 헛걸음을 할지언정 가는 것이 맞다. 그녀의 집으로 출발했다.

운전 중에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진통이 세어졌다고 했다. 아파서 샤워를 했다고도 했다. 미리 출발한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집을 한번 방문했던 터라 길은 눈에 선하다. 아뿔싸! 어린이날 연휴로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되어 있다. 급하거나 사람의 힘이 미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드리면 꺼내는 것이 기도다. 길이 빨리 뚫리기를, 아기가 내가 도착한 후 태어나기를, 만약 시간을 놓쳐 태어나더라도 건강히 엄마품에 있기를... 이런 상황을 한 두 번 겪은 것이 아님에도 심장은 또다시 쿵쾅거린다.


다행히도 길이 뚫려서 예상시간보다 늦지 않게 도착했다. 깊은숨을 쉰다. 문이 열려있었다. 가정 출산의 센스! 미리 문 열어놓기! 역시 그들은 달랐다. 아이 셋은 옆집 친구가 돌봐주기로 해서 집안은 고요하다. 초 여름 햇살이 거실에 가득하다. 꽃을 좋아한다는 큰 아이가 꽂아둔 영산홍이 식탁에 빛을 받아 더 이쁘다. 다행히도 그녀는 아직 진통 중이다. 늦지 않았다. 수중 출산을 위해 풀에 물이 받아지는 동안 우린 잠시 평안해졌다. 아기 받을 조산사와 아름다운 만삭의 그녀, 남편뿐이다.


진통 중인 그녀는 표정은 편안하다. 아기를 낳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그녀는 안다. 불필요한 여러 가지 의문들도 역시 없다. 출산에 어떠한 외부의 힘이나 약물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옆에서 함께하는 남편은 그런 아내의 출산에 자신감을 내보였었다. 엄지손을 들어 아내를 응원한다. "stone face!" 남편도 출산하는 아내의 얼굴이 어때야 하는지 잘 안다.


아기를 직접 받아보지 않겠냐는 나의 제안에 그는 샤워를 하고 풀로 들어갔다. 남편에게 기대다가, 혹은 엎드렸다가, 여러 자세를 바꾸어가며 그들은 넷째 아들을 맞고 있다. 진통하는 stone face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이 부럽다. 마주하고 엎드려 아기를 낳았다. 물속에 두둥 떠있는 아기를 부부가 함께 건져 올렸다. 당연히 건강하다. 아내를 위해 그가 한 모든 것이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예상과 달리 아기는 태지가 많다. 아직 예정일이 안되었다는 증거다. 예정일에서 3일이 지났음에도 그들은 아기에게 재촉하지는 않았다.


솔직이 내 맘은 그렇지 않았었다. 불안했었다. 난 언제쯤 예정일에 연연해하지 않고 아기를 믿고 기다려줄 수 있을까?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예정일이 지나가면 갈수록 여전히 초조하다.

5일 후 다시 방문한 그 집은 부산스럽지 않다. 아기는 엄마에게 밀착되어 젖을 먹고 있고 세 아이들은 각자의 놀이에 빠져있다. 막내만 엄마의 눈길을 끌려고 이리저리 넘어지다가 울다가를 반복한다. 짠하다. 소변 기저귀가 충분히 젖는 걸 보니 젖양도 충분하다. 건강한 출산을 한 그녀는 잘 회복되고 있다. 남편은 잠깐 일을 나갔단다. 아기 낳은 지 닷새 된 집안 풍경은 평화롭다.

일 년 후면 한국에서의 근무가 끝나 다시 알래스카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녀의 일생 중 한국에 머문 2년이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특히 넷째 아들을 낳은 기억이 최고 좋은 기억이기를 욕심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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