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갖게 되면 무조건 제왕절개를 해야겠다고 맘먹었던 혜미는 자연출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예정일이 비슷한 친구를 알게 되었다. 친구부부가 출산에 대해 교육을 받으러 간다 하기에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무작정 남편과 따라나섰다. 진통을 하며 아기를 낳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렿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태아는 천재이니 좋은 마음으로 임신기간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난생처음 듣는 많은 이야기에 머리가 복잡했지만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였다. 교육을 받고는 스스로 자연출산을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걱정이 많던 남편도 혜미의 바람을 들어주었다. 그 후 자연출산을 위해 먹고 싶은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저녁마다 남편과 집 근처를 열심히 걷는다. 늘 바쁜 남편도 혜미의 바람에 동참하기 위해 일찍 집으로 온다. 상담을 하면서 남편에게 섭섭함을 눈물로 보였던 혜미는 관심을 가져주는 남편 때문에 행복해졌다. 너무 늦게 혜미를 만난 내가 할 일은 운동을 시키고 먹는 것들을 관리하는 거다.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임신한 아내를 더 살뜰히 챙기겨야 한다고 남편을 격려하는 일이다. 아내를 행복하게 하는 남편은 뱃속아기를 효자로 만든다 '아버지를 좋아하는 아들 만들기 프로젝트'의 시작점이다.
예정일 한 달을 남기고 출산 리허설을 하면서 혜미의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혜미는 결혼 전에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는 여자였단다. 춤은 흥겹기도 하거니와 온몸을 움직이는 전신운동이고, 노래는 진통 호흡 조절에 도움이 된다. 출산 중에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아기마지에 여러 모로 좋다. 탄탄해 보이는 그녀의 기초체력은 춤으로, 건강한 호흡은 노래로 다져져 있으니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출산을 하면 되겠다 싶다. 갑자기 아기 받을 나의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 여러 가지 출산 자세를 알려주니 금방 몸에 익혔다. 아기를 낳는 다양한 자세들 때문에 얼굴이 붉어졌다가도 금세 키득거리며 민망함을 던져 버렸다. 염려스러운 얼굴로 나를 불편하게 했던 남편도 이제는 내편이 되었다. 불가항력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자연스레 아기 낳을 또 한 사람이 생겼다.
혜미의 글
예정일을 열흘 남기고 새벽 세 시경 양수가 열렸다. 출산 리허설 때 양수가 새면 어찌할지 배웠건만 지금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조산사와 전화를 하고 나니 마음은 좀 편해졌지만 움직일 때마다 줄줄 나오는 양수가 너무 무섭다. 자연 관장이 되는지 자꾸 똥꼬에 힘도 들어간다. 다행인지 아기는 꼬물꼬물 움직인다. 저도 놀랐을 거다. 새벽 네시가 되자 진통이 6~7분 간격으로 온다. 진통이 오니 다행이다. 별 큰일은 아니지만 미주알고주알 밤새 조산사와 톡을 했다. 아침 아홉 시, 배가 고프고 졸리다. 날이 밝아지자 진통은 오는 둥 마는 둥 늘어져서 참을 만하다. 조산사는 잘 먹는 사람이 아기도 잘 낳는다고 하면서 진통이 오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먹으라고 했다. 그동안 꾹꾹 참고 먹지 않았던 라면을 먹어 뵈야겠다. 그나저나 라면이 있나? 밀가루를 끊어야 아기를 받아주겠다는 조산사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우리 집엔 라면이 자취를 감췄었다. 진통이 잘 올 수 있도록 걷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이 참에 라면 사러 나 갔다 와야겠다.
조산사의 글
알게 모르게 느껴졌던 그녀의 마음 밑바닥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다. 진통이 없이 새벽 세시 양수가 흐른 거다. 아침이 되고 오후가 되어도 진통은 지지 부지하고 양수만 계속 나온단다. 진통 간격이 6분대였다가 다시 10분대로 늘어나기도 한다. 낮이 지나고 노을이 물든다. 저녁 일곱 시가 되어서야 4~5가 분 간격으로 진통이 온다고 했다. 제대로 진통간격이 짧아 쳐서 정말 다행이다. 진통하던 낮 동안 맛있는 것도 먹고 남편과 늘 걸었던 길도 열심히 걸었다고 했다. 조산원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아홉 시, 자궁문은 3cm 열리고 아기는 조금 골반 안으로 들어왔다. 함께 춤과 노래를 부르기로 한 둘라선생님들도 연이어 도착했다. 진통이 더 잘 오도록 척추 및 골반, 대퇴근육을 풀어준 뒤 아기의 하강을 돕는 여러 가지 움직임을 함께했다. 밤은 깊어가고 혜미의 진통도 잘 오고 있다. 잠시 꾸벅 잠이 들다가도 다시 진통으로 정신이 든다.
남지들은 군대 갔다 온 이야기로 며칠밤낮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기 낳는 아내도 일생 중에 잊지 못하는 순간이 지금이다. 밤샘하는 우리들은 남편의 애씀을 사진으로 남겨 놓기도 하고 슬쩍 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자리를 비워 주워주기도 하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아내의 출산과정을 보고 그는 변하고 있다. 군대에서의 훈련이 이것과 맞먹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긴긴밤이 간다. 아기마지가 가까워지자 혜미가 이젠 더 이상 못하겠다고 털썩 주저앉았다. 일으켜 세우고 열매의 심장박동소리를 들려주어 용기를 보탰다. " 자! 열매도 힘내자! 잘한다 혜미! 멋지다 혜미! 그러나 폭풍 같은 막바지 진통에 또다시 대성통곡을 하며 한바탕 운다. 사실 누구에게나 이런 것들은 모두 아기를 낳는 과정에 있다. 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남편은 토닥이며 말을 잊는다. 동시에 찐한 '출산 전우애'가, '찐한 부부애'가 생기게 된다. 혜미는 십여 분간 아이처럼 떼를 쓴 후 힘주기를 시작했다.
드디어 열매의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상보다 작은 아기는 골반의 3/2 지점을 지나자 쑥쑥 잘도 내려온다. 38주에 3킬로로 만나자고 한 태담이 철석같이 맞아떨어졌다. 간간히 열매의 천재성?을 이야기하며 헤미를 위로했다. 예정일에서 보름 앞선 열매는 새벽 세시 사십육 분, 2.99kg로 건강히 태어났다.
뚱해 보이던 남편에서,
함께 걸었던 남편으로 바뀌고 ,
다시 울보 남편에서 아내를 존경하는 남편으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되었다.
떼쟁이 혜미가 웃는다. 본능이 아기를 안게 한다. 흥분된 그녀의 목소리가 뚜렷하다.
" 엄마, 엄마 여기 있어, 그래 그래 수고했다. 열매야 ~ 고마워~ 우리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 혜미의 가쁜 숨소리는 꼬무락거리는 열매의 작은 움직임으로 점점 진정되었다.
며칠 후 혜미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대뜸 남편을 자랑한다. 태어나는 아들을 직접 본 남편은 자기 아내가 무통 주사도 안 맞고, 자연스러운 진정한 출산을 했다고 자랑하며 다니고 있단다. 행복한 팔불출이다. 양가 어른들도 순산해서 기특하다고 혜미를 칭찬한단다. 뭐니 뭐니 해도 혜미는 열매가 너무 이쁘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는 나도 참 기쁘다. 애착형성 잘 된 아기 열매! 건강할 거다 ~
혜미의 글
결혼 전부터 임신하면 무조건 제왕절개를 할 거라고 생각했던 저는 임신 후 자연출산을 하고자 노력하는 친구를 만났어요. 어울려 다니면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지만 내가 자연주의 출산을 할 거라곤 상상을 못 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출산날이 다가왔고 38주 3일에 내게 너무도 고마운 그리고 사랑스러운 열매를 만나게 되었죠. 또한 교육받았을 때 태담의 중요성을 일게 된 후 열매에게 38주에 나와주렴~, 3kg에 엄마에게 와주렴~등등 태담을 해줬는데 정말 38주 3일, 2.99kg로 태어났지 뭐예요!
열매에게 너무 고마웠고, 정말 힘들었지만 출산 후의 감동과 자신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 같아요.
같이 옆에서 날 도와준 신랑도 나와 열매에게 감동을 받고 26시간의 진통이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란 걸.. 오히려 그런 시간이 있어 더욱더 우리 가족의 만남에 더욱 값진 시간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요. 너무도 값진 시간이었고 이것을 뭐라 말로 정말 표현할 수 없는 거 같아요 ^^밤새 함께해 주신 조산사 선생님과 두 분 둘라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