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다.
임신이 병이 된 세상에서 임산부의 운동은 위험한 것이라고 말한다. 편안한 생활은 계속되고 먹을 것들은 지천에 널려있는데 그 누구도 임산부에게 움직이라고 하거나 조금 먹으라고 하지 않는다. 임신을 한 대부분의 여자들의 일상은 그래서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감생심 자기들은 당연히 자연출산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버린다. 게다가 임신을 한 여성에게 주위 사람들은 뭔가 자꾸만 먹이려 든다. "이인분이잖아~ 잘 먹어야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어~'
먹을거리가 풍요롭지 못했던 과거의 덕담이 먹을거리가 지천인 현재에도 유효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임신한 딸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친정엔 되도록 가지 말라는 억지를 부린다. 돌잔치 결혼식 뷔페로 인한 과식을 방지하기 위해 잔칫집도 가지 말라고 한다. 엎으려서 물걸레질을 하라고 시킨다. 방방이 돌아다니며 하루에 한 번씩 꼭 닦으라고 한다. 출산교육에 단골로 등장하는 나만의 자연출산 메뉴판이다.
고교 동창 친구는 임신 내내 열감이 심해 아이스크림을 입에 달고 살다가 결국 4킬로 넘는 아기를 제왕 절개했다. 그 친구 남편은 날마다 아내를 위해 냉동실에 큰 *** 아이스크림 통을 가득 쌓아 놓았다고 했다. 그것은 나름 아내를 위한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안다. 결국 그 남자의 사랑은 아내와 아기를 사육하는 아이스크림이었음을 알기나 할까. 긴 시간 학교를 다녔음에도 대부분의 교과 과목엔 임신과 출산이 어떤가에 대해 알려주지도 않을 뿐더러 사람들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먹은 만큼 움직이지 않으면 자연출산은 점점 멀어진다. 다시는 아기를 낳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출산을 경험하기도 한다.
크게 자란 아기를 내보내려면 보통의 출산 시간+알파의 시간이 필요하다. 알파의 시간은 출산을 하는 현장에서 정상 취급하지 않는다. 그로 인한 비정상은 더더욱 용납되지 않는다. 바로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제 할 일을 한 것이라 여긴다. 돌려놓는다는 것의 대부분은 제왕절개 수술이다. 알파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도록 임신한 여자들은 먹는 것을 조절하고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한다.
아기를 키워가지고 온 셋째를 낳을 산모는 아기를 힘들게 낳고서야 고백을 했다. 막달까지는 체중조절도, 먹는 것 조절도, 아주 잘했다. 결정적으로 막달에 생긴 가정사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가 원흉이 되었다. 스트레스를 풀기위한 온갖 위로를 먹는 것으로 해결했다. 게다가 수박, 아이스크림, 달달한 것들이 왜 그리도 맛있던지, 정신 줄을 놓은 것, 인정한다고 말했다.
수월 할 것 같았던 셋째 마지는 생각보다 지지부진했다. 더불에 오랫동안 겪은 진통으로 태아가 힘들어하자 모두들 극도로 예민해졌다. 제일 예민해진 것은 보나마나 아기 받는 나. 가슴이 둥당거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더! 더! 좀 더! 너무 커버린 태아는 골반에 끼어서 사경을 헤맸다. 내기 대신 아기를 낳아줄 수도 없고,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기의 머리가 보이는데도 산모는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결국 남편의 도움을 요청했다. 산모가 힘을 줄 때 남편이 배를 누르는 것이다. 항간에는 배를 눌러 아기를 낳아서 힘이 들었다는 좋지 않은 출산 후일담이 떠다닌다. 가끔은. 진정으로 배를 눌러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일단 남편에게 배를 누르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다음 진통이 오자 남편이 최선을 다해 아내의 배를 눌러서 밀어냈다. 세 번의 도움으로 아기는 길쭉한 머리를 하고 간신히 태어났다. 이렇게 센 힘으로 눌러도 되냐고 눈이 휘등그레 남편이 물었다. 조금 더! 더요! 나의 구령에 남편은 당황한 빛이 역력했지만 지금의 지휘관은 나다. 나의 구령에 남편은 최선을 다했다. 아기를 만난 후 남편은 그제서야 고개를 가로 저으며 얼마나 센 힘이 아기낳는 여자들에게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태어나서 고요히 숨을 쉬는 일반 아기들과는 달리 녀석은 목 터져라 운다. 마구 울어도 좋다. 힘이 들었으니 마구마구 울어라! 나는 한 발자국 뒤로 주져 앉아 안도의 숨을 쉬며 피식 웃었다. 가장 중요한 나의 일은 산모와 아기가 건강한 것이다. 산모도 아기도 살았으니 되었다. 애쓴 어미는 숨을 헐떡이며 진심으로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산모는 이미 많이 커버린 아기 때문에 진행이 느려지고 탈진 될 무렵,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뼈저리게 반성하며 이를 악물었다고 했다.
손이 벌벌 떨리던 내 손이 가라앉고 심장이 제 자리를 찾아가자 나는 후회가 몰려왔다. 지난번 산모가 겪은 경이로운 둘째 출산은 그저 지난번 출산이었음을 상기시켰어야 했다. 그렇게 둘째아기처럼 셋째 아이도 챙겼어야 했다. 산모가 사는 곳이 멀더라도 한 번쯤은 만났어야 했다. 먹는 것들을 지적하고 몸을 움직이도록 격려하고 재촉했어야 했다. 어리석게도 전화로 들려오는 산모의 상쾌한 목소리에 나마저 정신 줄을 놓아 버렸던 거다. 환상적이고 만족스러웠던 둘째 낳았던 기억만 생각했었다. 정말 이토록 어렵게 아기를 낳을 거라고는 1%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불찰이다. 밀고 당기고, 밀당을 치룬 다섯 식구는 피곤과 환희가 섞인 출산을 마치고 밤 열시에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