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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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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un 07. 2024

귀 기울여 주는 사람

산파일기

언제부터인가 이 여자가 아기를 잘 낳을지 못 낳을지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생겼다.

여기서 잘 낳는다는 것은 자연출산을 말한다. 내가 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궁금해하거나 혹자는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지만 그 재주는 40년 넘도록 많은 산모들이 내게 남긴 값진 선물이다.

아주 쉽고 간단하다.


[  ] 날마다 웃기.

[  ] 밀가루 음식과 과일 끊기.

[  ] 하루 만보 걷기.

간단해 보이지만 이 세 문단 가지고 산모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두세 시간이 지나간다.


오랜만에 20주가 막 지난 초산산모를 만났다. 자연출산이 왜 중요한지 조금은 알고 있는 듯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몰라서 성급한 마음이 들었다. 요점 정리라도 알려주고 싶었다.

아기는 그저 제 힘으로 태어나는 것이니 걱정은 일단 접어두라고, 자연스러운 탄생은 세상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라 했다. 내가 속해 있는 곳에서 함께 사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자연스러움이 갖는 엄청난 위력에 대해서도. 일상적인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해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힘주어 말했다. 상담이 길어져 사십 분이나 지났다.

또다시 오늘도 오지랖이 발동했다. 어색한 표정으로 첫인사를 나누었던 남녀와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여기까지 와 준 그들이 고마웠다. 내가 줄 수 있는 다정함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드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 문자가 왔다.

커리큘럼에 있는 출산교육 세 번을 듣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게다가 요점 정리로 들었던 이야기 중 한 가지도 실천했다고 했다. 아침으로 주로 먹었던 빵을 먹지 않고 밥을 먹었다고. 그래서 그런지 가벼워진 듯한 출근길을 즐겼다며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는 미소가 지어졌다. 이 묘한 설렘을 어떻게 표현할까. 기분 좋아진 엄마 덕분에 뱃속 아기도 신이 났을 거다.

시작이 좋다. 내 말을 잘 들어주다니! 어디서, 누구와 함께 아기를 낳던지 간에 앞으로 꾸준히 실천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계속 응원을 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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