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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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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Aug 11. 2024

토요일의 브이백 시도는 100% 수술이다

산파일기

첫아기를 제왕절개로 낳고 둘째는 자연출산을 하길 원하는 산모를 소개받았다. 전화를 한 여자는 이십 년 전 나와 함께 아기를 낳은 산모이며 아기를 자연스럽게 낳고 싶어 하는 이는 사촌이라고 했다. 사촌 동생이 자신이 느꼈던 자연출산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느껴졌다. 벌써 15년이 흘러 남은 기억의 조각들은 희미하지만 그녀와 함께 한 순간들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저장되어 있다. 함께 걸었던 숲 속, 푹신한 그녀의 침대, 흘러내리던 양수, 늘어진 탯줄, 느긋한 아기... 그녀는 어른처럼 자란 청년이 된 아기를 자랑하고 싶어 했다. 평화로이 첫발을 디딘 아기는 따듯한 마음을 가진 청년으로 자랐다고, 지금도 그 아이를 너무도 사랑한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의 해바라기처럼 빛나는 웃는 그녀의 얼굴이 그려졌다. 아무런 개입 없이 아기를 낳은 경험이 있는 그녀는, 꼭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자연출산의 희열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고 했다. 자연스럽다는 것이 왜 중요한지는 자신과 아이를 보면 알 수 있다고도 했다.


사촌 여동생에게 자연출산이 왜 그토록 중요하냐고 말을 해야 하는데 막상 적절한 이유를 댈 수 없어서 연락을 했단다.

대뜸 나는 이렇게 답했다.

"자연출산으로 아기를 낳으면요. 여자의 자존감은 끝을 모르고 자라게 돼요. 사랑의 마음도 크기를 잴 수 없게 자라고요. 수치로 잴 수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아주 이상한 힘이 생겨나죠. 그것이 아기를 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고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죠.  아기를 낳으며 여자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 분명해요. 지금껏 살아온 삶이랑 전혀 딴판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몸과 마음이 무장된다고 표현하면 맞을까요? 엄마가 된 여자는 강해지고 똘똘해집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어요. "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할 말은 할 수 있어야 배짱 있는 조산사라 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출산 자체는 병이 아니니까, 조산사는 그러한 여러 상황에서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발굴해 내야 한다. 그러나 결국은 아기를 낳는 산모의 결정이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된다. 아기를 낳는 사람이 무서워서 앞뒤 분간을 못하는데 이걸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산모는 다니던 병원에서 자연출산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고 연락이 왔다.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모르니 집 가까운 병원에서 아기를 낳아보라고 조언도 했다.

오늘, 이슬이 비쳐서 병원으로 갔는데,

오늘은 토요일, 주말에 첫아기를 제왕절개로 낳은 산모를 붙잡고 있을 리가 없다. 산모가 아직 진통도 없는데 병원으로 간 것은 두려움이 원인이었을 것이라 생각되며 그 두려움을 잠재울 방법은 그저 한 시간만 눈 감고 있으면 아기가 태어나는 제왕절개 수술뿐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연 진통을 겪어보지도 않은 채 수술 실로 들어갔다.


너무나 많은 퍼센트의 첫아기가 제왕절개로 태어난다. 첫아기를 제왕절개수술로 낳은 후 자연출산을 시도하기엔 세상은 녹녹지 않다. 첫아기를 잘 낳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정말로 더 이상 여성의 몸은 아기를 낳기 힘든 몸으로 변해가고 있는 걸까? 자궁 수축은 여성을 아프게만 하는 쓸데없는 증상일까?

인간의 몸은 긴 시간에 걸쳐 진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출산은 여성만이 할 수 있다. 그것에 자부심을 부여하는 일은 그 누구도 아닌 여성 스스로가 이뤄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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