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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파일기

벚꽃길 따라 태어난 네 명의 아기들

산파일기

by 김옥진

올봄, 다행히 벚꽃이 만개한 날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지난해 강가의 벚꽃은 다섯 개의 잎이 벌어지자마자 비가 왔다. 사계절을 기다렸던 벚꽃은 제 할 일을 채 하지 못한 채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나와는 별 상관없는 자연이 벌이는 일이지만 내심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었다. 그 해 봄을 보낸 후, 멍하니 하는 수많은 생각 중엔 벚꽃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내년 봄, 벚꽃이 만개할 때는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 소망대로 올 벚꽃은 제 할 일을 하고 스러졌다. 내 눈은 자주 동그래졌고, 지속된 함박웃음 때문에 광대가 마비되기도 했다.

네 명의 아기들이 겹치지 않고 벚꽃길을 따라 태어났다.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할 때 태어난 우동 이는 팝콘 터지듯 기세 오른 삶을 살지 않을까. 연분홍 꽃잎이 막 벌어지려 할 때 태어난 자연이는 호기심 가득 찬 삶을 살기를. 골목골목이 꽃잔치를 벌이고 달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절정의 때, 두 아기가 연이어 태어났다. 그저 동시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는 소인배는 이제야 기억에서 꺼내 글로 쓴다. 내가 만약 신이라면 두 녀석들에게 환하고 완성된 삶을 선물하고 싶다. 벚꽃이 지고 수만 개의 영산홍들이 울긋불긋 고개를 내밀 때 네 번째 하늘이가 태어났다. 태양을 향한 꽃봉오리들의 의지와 자연을 향한 경외심을 닮기를, 순수한 마음이 속 깊이 자리 잡고 있기를 기대한다.


모두가 태어나는 순간의 부드러운 손길을 잊지 말기를. 따듯했던 환영의 마음들을 마음속에 저장해 두기를. 숨이 차올라 힘겨울 때 부드럽고 따듯했던 태초의 보물을 꺼내 위로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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