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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파일기

소풍대신 카페서 차를 마시는 토요일 아침

산파 일기

by 김옥진

북한산 부암동 백사실 계곡으로 소풍이 예정되어 있다. 닷새 전 노동의 여파로 며칠간 움직일 때마다 신음 소리가 나온다. 소풍을 갈 수 있을까?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오가는 일을 견딜 수 있을까? 친구들을 만나 즐거울 소풍이지만 몸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갈 수 없다.

하루 전날, 근육통과 요통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여차하면 몸살이 날 것 같다. 소풍날 아침 눈을 뜨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살폈다. 일어나는데 낑낑 소리가 나지 않았다. 소풍 가야지!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렸다. 썬크림도 두텁게 바르고 반달 눈썹도 그렸다. 눈썹이 한 번에 잘 그려져 기분도 좋았다. 밥도 든든히 먹었다. 차려입고 거실에서 현관으로 나갔다.


마음과는 다르게 다리가 천근이다. 멈칫했다. 백사실계곡까지 가는 것에 자신이 없어졌다. 하지만 일단 집을 나왔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은 도서관 카페로 향한다. 신기하게도 소풍을 마음에서 내려놓으니 다리가 가벼워졌다. 따듯한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두 살배기 남자 아기가 들어온다. 엄마 아빠는 필경 주말 아침에 늦잠을 자고 싶었을 것이다. 내 아기가 저만했을 때, 나도 주말 아침 아기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언제쯤이면 주말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있을까. 더도 덜도 말고 늦잠만 자면 좋겠다며 소원을 빌었더랬다. 아기가 아빠의 손을 잡고 뒤뚱거리며 넓은 카페를 뛰어다닌다. 일거수일투족이 아빠를 향한다. 엄마보다 아빠를 좋아하는 걸 보면 저 가족은 잘 살고 있는 거다. 아기를 보니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몸이 훨씬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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