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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파일기

외로움을 들켜버렸다.

산파일기

by 김옥진


"선생님에게서 외로움이 보여요. 그 긴 시간 동안 아기를 받으며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문득문득 전해지는 차가운 시선을 어떻게 견디셨을까요? 그런데요. 조금 전 선생님께서 따듯하게 허리를 문질러주며 북돋아주신 힘으로 제가 아기를 낳았네요.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올까요? 제 인생에서 선생님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분이에요. 고맙습니다"

이제 막 아기를 낳고 한숨을 돌린 산모가 말한다. 고독을 들켜버린 나는 흠칫 놀랐다.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 인생은 그저 이렇다고 생각하며 견뎠다. 골반이 좁아서, 아기가 커서, 기타 다른 여타의 이유로 나는 산모들과 긴 시간을 함께했다. 지나온 고된 시간들은 아기를 받는 조산사가 겪는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아기를 받다가 병원으로 후송을 하는 것조차 나의 부족함이 원인일 것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최선을 다해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만 최선은 최선에서 마감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돌아보면 내가 짊어진 상당 부분은 남의 짐이었다. 남의 짐을 들어주면서까지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특별히 나의 마음을 생각해 주는 산모를 만나 코끝이 찡해졌다. 꼭 아기를 받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살면서 쓸쓸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나의 도리이니 알아차려 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하는 아기 받는 일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서다.


만물이 태어나는 순간들은 자연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이제는 진통하는 산모 옆에서 아기와 잘못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설령 그런 경우가 오더라도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느긋한 나의 모습을 보고 편안해할 산모는 이미 보너스를 받은 셈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속속들이 산모의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있을까. 혹간 거짓을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신이 아닌 이상 이들의 비밀을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산모를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정보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믿는 것은 짧은 시간만으로도 느낄 수 있다.

인생 중에서 아주 특별한 일인 출산이 멋지게 완성될지의 여부는 아기를 받는 사람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낳을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아기를 잘 낳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여자는 반드시 아기를 낳는다. 43년간 아기를 받으며 알게 된 조산사의 지혜라고 해 두 자.


고독을 들켜버리긴 했으나 애써 아니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이니까. 긴 세월 동안 아기를 받은 내게 사람들은 언제까지 아기를 받을 예정이냐는 질문을 한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아기를 잘 낳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 한, 나는 아기를 받을 것이다. 아기나 산모가 잘못될 확률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은 이미 충분히 저장해 놓았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은, 아기를 잘 낳을 수 있도록 내가 조언은 하겠지만 본인이 실행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낳을 수 없는 이유가 확연하다면 받을 수 없다. 더하여 세상엔 100%로 만들어진 것이 없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중요한 점은 열에 아홉은 할 수 있음에도 못할 거라는 잘못된 확언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외로움을 간파했던 산모는 4년 전에 첫아기를 낳았다. 먼 곳에서 내게로 아기를 낳겠다며 남편을 대동하고 왔더랬다. 사십이 가까운 노산에다가 몸집도 가녀렸던지라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연출산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고 조언에 따라 운동을 하고 음식을 조절했다. 양수가 먼저 보였으나 다행히도 자연스레 진통이 왔다. 바깥 골반이 많이 비좁아 아기의 머리가 길쭉하게 변형되기까지 긴 시간 동안 애를 썼다. 아기가 잘 버틸 것이라는 확신으로 기다렸다. 겉으로 보이는 산모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좁은 산도에서 견디고 있는 아기를 생각했다. 외줄을 타는 기분이지만 두 생명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야만 했다. 아기는 칭찬의 소리를 들으며 세상을 향했다. 서로에게는 깊은 신뢰가 만들어졌다. 산모는 자신의 몸에 대한 신뢰, 아기를 향한 사랑의 신뢰가 있다. 아기를 받을 조산사에 대한 신뢰도 가득했다. 첫아기는 길쭉한 머리를 하고 태어나 고른 숨을 쉬었다.


4살이 된 작은 소녀는 별 인형을 가지고 새벽 두 시 반에 조산원에 들어왔다. 동생이 태어나는 것을 꼭 보고 싶다 고도했다. 졸릴 만도 하겠지만 보아하니 잘 것 같지는 않다. 외려 어른들보다 각성되어 있었다. "네 덕분에 조금은 수월하게 동생이 태어날 거야 고마워"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린 나이지만 눈빛은 달라 보였다.


재잘거리는 아이의 소리가 출산 막바지에 방해가 되었다. 산모는 남편에게 자리를 비워달라 말했고 부녀는 밤마실을 나갔다. "아기가 태어나면 전화드릴게요". 출산방이 고요해졌다. 내 가슴에, 어깨와 두 손에 그녀의 무게가 얹어졌다.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자연은 아기를 낳는 산모와 조산사에게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아낌없이 내보인다.

두 여자가 한 목표를 위해 용을 쓴다. 산모가 기진해질 때쯤 하얀 태지를 뒤집어쓴 아기가 태어났다. 첫 호흡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며 밤마실을 나간 부녀를 불러들였다. 후끈 달아올라 있는 출산방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부녀가 서로 먼저 아기 얼굴을 보려 경쟁을 한다. 두려움과 신비함이 교차되는 듯 큰아이는 조심스럽게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남편의 고른 치아가 모두 보였다.

서로에게 솟아났던 믿음이 현실이 되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아기 잘 낳아주셔서요" 세상에서 가장 진한 말을 주고받는 이 순간 미사여구는 필요 없다. 이보다 더 진실한 문장은 없으니까. 순간 외로움은 백기를 든다. 그래서 외로운 길이지만 걸어갈 테다. 계속해서 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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