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년 차 부부의 제주도 조식 테이블

제주여행

by 김옥진

매일 제주 바다를 만난다. 창을 열기만 하면 갖가지 색과 모양을 한 바다가 들어온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처럼 느껴져서일까. 멀리 보는 바다는 두렵다. 소름이 돋는다. 흑청의 수평선의 끝은 어디일까. 땅까지 닿으려면 평생을 가야 할 것만 같이 아득하다. 육지와 닿아 있는 언저리의 초록바다는 다정하다. 머뭇거리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준다. 용기를 한가득 마음에 담으니 무서웠던 바다가 만만하다. 쪼그리고 앉아 모래알들의 춤추는 모습에 빠져든다. 깊고 넓은 두려움은 온데간데없고 천상 개구쟁이 어린 아이다. 천의 얼굴을 한 바다를 만난다. 생각들이 파도에 휩쓸려 간다. 머리가 가볍다.


바다를 보며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만나야 할 약속들을 손꼽았다. 일하러 나가는 어부의 굵어진 손이 애처로워 가슴이 둥둥 댔다. 난전 바닥에 생선 몇 마리 놓고 소리치는 주름패인 할머니의 한숨이 바다였다. 나의 바다는 지금껏 그랬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처음으로 내가 바다가 된다.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어도 표시 나지 않는 바다. 참방되는 손가락도 금세 바다가 된다. 바다도 내가 된다. 나도 바다가 된다. 변하지 않고 늘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바다를 이제야 만난다. 바다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제주도 숙소에서 아침 뷔페를 먹는다. 음식의 맛에 푸른 바다맛이 더해진다. 바다맛이 더해진 이런 성찬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남편은 커피와 빵을 담아 벙글거리며 내게로 온다. 여행이 그를 웃게 한다. 나도 웃는다. 옆 테이블 신혼부부의 식탁이 보인다. 서로의 눈길은 한 곳으로만 향해 있다. 깨소금향기가 난다. 어쩜, 그들 식탁의 메뉴가 똑같다. 서로 닮아가려 애쓴다는 무언의 징표다. 서로 참고 견디고 있다는 걸 40년 부부생활을 한 나는 안다. 문득 우리의 젊었던 청춘이 떠올라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우리 식탁은 각자 좋아하는 음식들로 채워진다. 돌고 돌아서 수많은 갈등과 다툼을 한 후 서로를 인정하는 시기가 도래한다. 네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왜 이 맛있는걸, 건강에 좋은걸 안 먹냐고 수많은 언어와 몸짓으로 어르기도 하고 다투기를 밥 먹듯 했다. 다 소용이 없었다. 사십 년을 함께하고서야 각자 제 자리로 온다. 아우르는 바다, 받아들이는 제주 바다를 만나며 젊은 신혼부부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한시바삐 깨닫기를 바라본다.


"야채를 먹어야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며 남편의 접시에 배추찜과 브로콜리, 토마토를 덜어준다.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한 결심은 잠깐 출장을 간 걸까. 다름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불쑥 올라오는 말, 말, 말들. '그저 눈을 질끈 감아라. 입도 꾹 닫고, 저 사람은 안 바뀌니.' 정신을 차리고 다시 주문을 왼다. 예전보다 잔소리 횟수가 줄어든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저 그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파도가 철썩 소리를 내며 갖가지 검은 모양의 바위에 부딪힌다. 내가 저 바다였음을, 그리고 여전히 그 바다임을 다시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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