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아기, 달이 차 오르면 태어난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자연출산 이야기

by 김옥진

달이 추석답게 밝다. 달이 차면 태어나는 아기들은 추석 전 서둘러 세상으로 나왔다. 삼일 내내 그렇게 태어났다. 똑같이 새벽 한 두시에 불려 나갔다. 연속으로 삼일 내내 밤에 눈을 뜨고 있자니 다리가 휘청거린다. 그래서 이번 추석은 조용히 지나가려나 기대도 되었다. 코로나로 고향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방송들 덕에 한가한 연휴를 보내는 사람들처럼 나도 가족과 함께 쉬고 싶다. 그렇게 해 달라고 기도도 했었다. 기도가 먹히질 않는 걸 보면 달의 기운이 기도보다 센가? 내 기도가 약했나? 추석 만월엔 여지가 없음을 이번에도 깨닫는다. 보름달은 모든 영근 생명들을 내어 놓느라 계속해서 조용히 바쁘다.
내 팔자에 추석은 무슨...

돌아보니 추석마다 아기들이 태어났다. 꾸러미 싸들고 친정에 갔다가 선물만 내려놓고 오기도 하고 연휴 내내 한 산모를 붙잡고 있었던 때도 있었다. 조산사는 사람 노릇하고 살기 어렵다. " 만월 추석에 조산사는 쉴 생각을 하지 마라!"라는 명언을 남긴다. 출산은 인간이 만든 특별한 날을 가릴 만큼 진화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결국 추석 전 날 이슬과 양수가 조금씩 나오는 것 같다는 화성댁에게서 진통 소식이 온다. 보내온 젖은 패드 사진은 양수가 분명해 보인다. 확실히 하기 위해 병원에 가서 확인하고 오라 했다. 밤 열 시, 걱정이 된 그들은 내 의견에 따라 병원으로 갔다. 양수가 맞다고 하며 입원을 하라고 했단다. 진통이 세지면 오겠다고 하니 위험한 상황이니 가려면 서약서를 쓰라고 했단다. 떨리는 맘으로 부부는 병원 문을 나섰다. 위험한 상황이라고 한 말에 그동안 자연출산을 위해 노력한 것이 수포로 돌아갈까 봐 걱정이 태산이다. 불안해서 연신 전화벨이 울린다. 정말 미주알고주알, 시시콜콜 보고를 한다. 새벽 한 시, 이미 잠은 저 멀리 달아났다. 아침까지 두고 보아도 될 성싶은데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는 곧 아기가 나올 것 만 같다. 결국 참다못해 새벽 두 시에 오라 했다. 아직은 아니다 싶은데 그냥 불안을 잠재워야 할 듯싶었다. 불안이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면 안 된다. 추석 날 새벽 두 시 반, 어제처럼 같은 시간에 또다시 집을 나섰다. 평소와 다르게 길 위는 더 썰렁하다. 그들은 새벽 세시에 조산원으로 왔다. 어제 이 시간엔 일곱 번째 아이가 태어났었다.

보내온 진통 간격으로는 진진통이 맞다. 삼사 분간 격인데 만난 그녀는 참으로 명랑하다. 속았다 싶다.
진찰은 그것을 반증했다. 15% 진행, 진통은 자주 오는 듯 보이지만 강하지 않다. 그저 막달에 자주 뭉치는 수축 정도다. 불안은 내게도 전이되었다. 화성댁을 진찰 하기도 전에 2~3분 간격으로 오는 진통 어플을 보고 둘라도 불러버렸다. 아직 멀었는데 미안해서 어쩌나! 혹여 떠난 지 얼마 안 되었다면 다시 돌아가시라 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거의 도착했다고 한다. 그이들은 일단 진통을 촉진하는 세러피를 하고 아기가 골반에 진입을 하게 하는 운동도 시켰다. 약하게 오는 진통을 도와주기 위해 부부는 밖에 나가 걷기도 했다. 진통은 더 세어지지 않은 채 추석 날 새벽이 밝았다. 아침 열 시, 우리들의 몰골은 가관이다. 서로 추레해진 얼굴을 보고 웃었다. 자궁 문의 변화는 미비하지만 좀 더 얇아져 있긴 하다. 집에 다녀와도 될 성싶다. 편안한 집은 몸의 근육을 이완시키고 이완은 출산 진행에 도움을 준다. 아기 심박수를 체크하고 집으로 보냈다. 오후 세시까지 아무 연락 말고 쉬라고 했다. 둘라들도 집으로 갔다. 추석 날 점심이 다 되어 조산원은 다시 조용해졌다.


모두를 점심이 다 되어 보내고 잠시 멍하니 조산원 안락의자에 앉았다. 잠을 못 자니 뇌가 멈춘 듯할 일이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다. 간신히 몸을 추슬러 집으로 간다. 송편 집 두 군데를 들렀으나 모두 문이 닫혀 있다. 올 추석엔 송편도 못 사 먹는구나! 떡집은 닫혔어도 커피집은 열려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과 크로플 두 개를 샀다. 매장엔 주인인 듯 한 중년의 남자와 아르바이트생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린다. 그이들도 나처럼 추석에 일을 한다. 남편은 동태전을 부쳐 놓았다. 남편의 동태전은 때깔이 검다. 한 판씩 전을 부친 후 기름을 닦아내고 부쳐야 노릇한 예쁜 색이 나오는 것을 모르는 거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2020년 추석 밥상엔 동태전 가득, 크로플 두 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데우다 타버린 재탕 된장찌개, 열무김치와 김으로 대신했다. 열심히 살고 있는 나! 추석에 일해도 괜찮다.
정말, 그. 래. 도. 괜. 찮. 다.


눈 질끈 감고 오후 세시까지 쉬기로 했다. 소박한 한 끼와 짧은 대화가 지금으로선 적당하다. 침대에 몸을 누이니 오후 한 시, 시원한 바람이 남으로 난 창문으로 들어온다. 몸살 기운처럼 잠깐씩 오싹하다. 컨디션을 조절해야 해! 오늘 밤도 새야 할지 모르니까! 창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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