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엔 부스터가 들어있나 보다.
여섯 시 반,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항암제에 부스터가 들어있는 걸까. 1차 때도 이틀간 각성 상태로 지냈다. 이번 2차도 1차 때와 같다 그러나 그다음에 일어날 신세계를 알아버린 지금은 자꾸 조급해진다.
해야 할 일을 찾는다. 발병 전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이 들어온다. 부엌의 좌청룡 우백호에 널브러져 있는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우선 세탁기부터 돌린다. 깨끗하려면 버려야 한다. 알고 있던 것을 지금껏 실천하지 않았을 뿐이다. 비운다는 것은 미련을 지우는 일이다. 언젠가 쓸 것만 같았던 물건들이 왜 이리 많은지. 마음을 먹고 나니 재활용 바구니는 진즉에 가득하다.
냉장고 속의 음식들 정리, 인덕션 후드 청소, 더하여 한동안 손대지 않았던 매실청을 정리했다. 일본 말로 우메보시라 이름 지어진 매실 장아찌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반찬이다. 매실장아찌를 만들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저 많은 것을 언제나 벗길까 생각하다가 딱 한 접시만 먹을 양만 하기로 결정했다. 나머지는 두 눈 딱 감고 버렸다. 장아찌에 대한 마음도, 어머니 생각도 함께.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라 조금 무쳐 놓으니 그동안 먹어보았던 매실 장아찌 중 제일 맛있다.
왜 이리 힘이 날까. 어제 맞은 것은 항암주사가 아니고 순수한 생리 식염수였던 건 아닐까?
가족들은 아직 조용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밝아오는 밖을 본다. 길 위엔 라이트가 꼬리를 문다. 그 꼬리물기처럼 생각도 꼬리를 문다. 그동안 아무 일이 없었던 평상시에는 무슨 일을 했었나. 지금부터 며칠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이 온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그저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임으로서 증명된다. 살아있음을 보여주려는 본능이 깨어난 걸까. 이상하리만치 나는 지금 과하게 힘차있다.
책도 필사하고, 세무서 수입신고도 하고, 바지 지퍼 고치러 수선센터에도 다녀온다. 오늘 한 일을 다 적는다면 다들 놀라 하품을 할것이다. 그래서 이만 총총.
오는 길이 슬슬 어지럽다. 다리에 힘이 없다. 약간 숨도 차고 춥다.
이제 또다시 시작인 걸까.
저녁 여덟 시에 셀프 피하주사를 놓았다. 부작용도 용맹한 백혈구 부스터 주사! 아프기만 해 봐라 즉시 일어나 진통제를 먹으리라.
이를 깨끗이 닦고 구강 유산균 바이오 가이아를 입에 문다. 하루 종일 죽염을 탄 물을 500cc 물통에 넣고 4통이나 마셨다. 모두 2리터. 그 밖에도 열심히 차도 마신다. 덕분에 1차 함맘 때 본 뿌연 소변은 보지 못했다. 몸과 몸 놀이를 한다. 움직임, 통증, 들어가는 것과 나가는 것의 조화로움을 본다. 다 알아채고 있던 몸을 이제야 서서히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