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사람들은 나를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말한다. "아기 받는 일은 힘드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항암주사를 맞는 동안 만이라도 좀 쉬셔야 하지 않을까요?"
두 번째 유방암 진단을 받고서 아주 잠깐 아기 받는 일을 내려놓을까 생각했다. 얼마 가지 않아 그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사람은 움직이며 사는 것일 테고 아무런 의미나 목적 없이 움직이는 것은 무의미하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활력을 얻는 성정 또한 그 이유가 될 터이다. 수만 가지 직업 중에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기 받는 조산사다. 아기를 받으며 단단해지기도 하고 더없이 부드러워지기도 한다. 호락호락한 출산만 만났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다. 머리카락이 쭈뼜거리고 심장이 튀어나올 듯 두근대는 경우도 있지만 너무나 감격스러워 눈물샘에 홍수가 나는 황홀한 순간들이 있다. 나처럼 수시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직업은 세상에 흔치 않다. 사십 년이 지나고서야 자연의 섭리를 관조하게 된다. 더 이상 내게 일이라는 무게는 없다. 아기를 받는다는 것은 축복이며 기쁨이다. 육체적 소모는 그 어떤 일을 해도 똑같다. 지나간 세월과 경험은 정신적 압박감을 떨구는 지혜를 선물한다. 유방암이 생겼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며 하루를 보낼 수 없다.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지금껏 해 온 아기 받는 일은 계속하기로 한다.
많지 않은 대기 산모 중에 1월 말에 넷째 아기를 낳을 산모가 있다. 대부분 한 명의 아기를 받게 되면 예정일을 기준으로 앞뒤 2주간은 대기를 한다. 여행도, 약속도, 늘 물음표 표식을 해 놓는다. 항암주사를 처음 맞기로 한 날, 의사에게 질문을 한다. " 제가 아기 받는 조산사인데요. 혹시 항암주사가 태어날 아기와 산모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까요?" 의사는 웃으며 대답한다. " 아기 받는 본인이 힘들어서 그렇지 아기와 산모에게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연이어 미소가 돌아왔다. "힘드실 텐데요." 따듯한 미소를 띤 그도 아기 받는 일이 힘든 일이라 생각하는 듯 보인다. 어쨌든 다행이다. 얼마나 힘이 들지는 맞닥뜨려 보면 알 것이다.
두 번의 항암주사를 맞고 나니 과정을 알게 된다. 주사를 맞은 처음 열흘은 육체적으로 고갈된다. 입맛은 출장 가고 여기저기 아프다. 못 먹으니 기운이 없는 건 당연하다. 자연의 소용돌이 안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너무나 미약하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면 되돌아 나오는 것이 정답이다. 돌아 나올 수 있는 지혜와 힘이 있으면 된다. 힘든 열흘 안에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두 손을 모은다.
이틀 후면 3차 항암주사를 맞는 날이다. 아직 산모에게서는 소식이 없다. 기도고 뭐고 소용이 없음을 깨닫는다. 맡겨야지.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기로 했나 보다. 한낮, 이슬이 비쳤다는 소식이 온다. 보통 이슬이 비치면 24시간 내에 진통이 시작된다. 과연 항암주사를 맞기 전에 아기가 태어날까. 기대를 하며 출산방을 다시 점검한다. 밤에 올지도 모르니 온풍기와 바닥 보일러도 켜 놓는다. 피곤을 줄이려고 과하게 일찍 잠자리에 든다. 동이 트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항암 주사 스케줄을 바꿔야 한다.
아기를 받아야 해서 항암 스케줄을 바꿔야 한다는 말에 전화기 너머의 사람들은 잠깐 호흡을 고르는듯하다. 여차저차 여러 번 전화를 바꾸고 또다시 통화를 해 가며 4일 후로 3차 항암 주사를 맞기로 변경한다.
설마 이슬이 비치고 삼사일 동안 태어나지 않는 건 아니겠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상황을 억지로 갖다 붙여 불안을 자초하는 심보에 헛웃음이 난다. '그래, 이슬이 비쳤는데 삼일 내에는 태어나겠지.'
00시 20분, 기대하던 전화벨이 울린다. 진통 소식이다. 역시 아기들은 고요한 밤을 좋아한다. 그럴 것에 대비해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었다. 네 시간의 힘으로 아기를 받을 것이다. 아쉽게도, 넷째임에도, 쉽지 않은 출산이었다. 꼬박 뜬눈을 하고 아침 일곱 시 구분에 아기는 태어났다. 오래 걸렸지만 산모는 출혈 없이 회음부 손상 없이 출산했다. 아기 낳고 털퍼덕 앉아도 회음이 아프지 않다며 고마워했다. 갓 태어나 녀석의 태변을 닦아주고 옷을 입힌다. 무럭무럭 건강히 잘 자라거라. 겉으로 또, 속으로 아기를 보듬으며 기도를 한다.
하루 종일 잠을 잔다. 저녁이 되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콩나물 김칫국을 먹었다. 뜨끈한 국물에서 엄마 향기가 난다. 콩나물 김칫국이, 딸기가, 우롱차가 씩씩하게 3차 항암주사를 맞으러 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