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Hello?"
"@@@@@@@@@"
영어로 말한다. 앞이 캄캄해지면서 머리와 입이 따로 논다. 예정일은 11월 말, 거주지는 용산 미군기지 안의 주택, 넷째 아이, 가정 출산을 하고 싶다며 자신의 출산 이야기를 줄줄 이야기한다. 나의 짧은 영어가 답답하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까지 영어회화책을 끼고 다녔다. 집에서는 안 들리는 CNN을 계속 틀어 놓았다. 영어로 말하는 산모를 만나는 것은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첫 만남이 있던 날, 전화로 주고받았던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대답을 연습하고, 한숨 한 번 쉬고 출발했다.
그곳까지는 우리 집에서 40킬로 떨어져 있다. 시간 안배을 잘해야 약속시간을 맞출 수 있다. 그녀와 만날 용산 미군기지 7번 gate는 이촌역 건너편에 있다. 다행히 길 막힘없이 예상시간에 도착했다. 부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은 검문을 하지 않았지만 30m 떨어진 안쪽 검문소에서는 군복 입은 군인이 총을 메고 서서 검문을 하고 있다. 서울 한 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캠프 방문은 거주자가 면회실까지 와서 나를 에스코트해야 들어갈 수 있다. 면회소 안은 나와 같은 이유로 들고 나는 미국인들과 한국인들로 분주해 보였다. 약속한 사람이 어디서 나타날까 하고 둘러본다. 처음 엄마 손 잡고 유치원에 도착한 두리번거리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십 여 분이 지났을까! 배가 부른 여성이 씩씩하게 걸어서 면회소 쪽으로 온다. 느낌이 온다. 저 산모다! 손을 흔들며 나도 그녀 쪽으로 간다. 눈을 맞추며 이름을 말했더니 활짝 웃는다.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이 방문증으로 교체되고 그녀의 차에 올라 검문소에서 다시 신원 확인을 했다. 도착한 집의 풍경은 마치 외국 같았다. 뜸뜸히 이층 집들이 늘어서 있고 잔디마당과 주차공간이 있다. 간간히 동네 아이들이 공차기를 하거나 소꿉놀이를 하며 놀고 있다. 신발을 신고 집안에 들어간다. 둘러보니 가족모두가 신발을 신고 있다. 낯설다. 마침 그녀의 남편이 짬을 내어 나를 만나러 와 있다.매우 적극적으로 아내의 출산 계획을 말하는 그가 또다시 낯설다. 우리네 남편들은 언제나 저렇게 바뀔까! 부럽다.
출산 때마다 아기의 어깨가 걸려서 고생을 했단다. 자신의 출산비디오를 보여준다며 비디오가 있는 안방, 이층으로 안내한다. 정말로 세 아이 모두가 견갑 난산 (shoulder dystocia)이었다. 셋째 낳는 비디오엔 수녀 조산사가 어깨가 걸린 아기를 꺼내느라 침대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애쓰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아기를 받아내는 수녀 조산사의 마음이 절절히 전해진다. 전투보다 더한, 심장이 두근대고, 온몸 근육이 경직되는 저 상황! 오직 아기를 나오도록 온 정신을 집중하는 저 순간! 아기가 태어나고 숨을 쉬지 않는지 인공호흡을 한다. 잠시 늘어져 있던 아기가 첫울음을 터뜨리자 가족과 조산사들의 박수와 환호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똑같구나! 세상 어디에서나 아기를 만나는 모두의 마음은 똑같아!
낯선 이의 방문에 막내인 듯 보이는 노랑머리 여자아이가 아빠 무릎 위에 앉아 손가락을 빤다. 가정 출산에 대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어깨가 걸릴 만큼 작은 바깥 골반을 가진 그녀의 출산을 도와야만 한다. 조금 두렵지만 자신 있어 보이는 부부를 보니 나도 용기가 생긴다.
한국에서의 가정 출산을 결정한 그녀의 남편은 불쑥 책 한 권을 내밀었다. Bredly way, husband coached childbirth 다. 출산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놓은 책이라고 했다. 세 아이를 받으며 늘 곁에 두고 읽었던 출산 지침서인 책은 너덜너덜 낡아 있었다. 출산은 이런 것이고, 그래서 자신들의 출산을 이런 방식으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연출산에 대해 짧은 강의를 듣고 온 듯했다. 맞다! 그 날, 그들과의 만남으로 병원 출산만 보아왔던 내가 진정으로 여성의 출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날이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아마존 서점에서 브래들리 웨이 책을 구입했다. 출산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기가 언제 태어날지는 과학이 발달한 지금에도 알 수 없다. 출산 시간을 알 수 있는 경우는 고작 약물을 사용하거나 수술을 택하는 것뿐이다. 자연스러운 출산을 하는 나는 늘 대기를 하는 고충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경산의 진행은 더더욱 초를 다툰다. 가정 출산은 출산 장소까지 가는 경우의 수가 더해진다. 더군다나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미군부대 출입은 그래서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도 미국인 남편은 출산 예정일 전 후로 한 달간 출입이 가능한 24시간 출입증을 만들어 주었다. 출입증을 만들기 위해 미군부대 오피스에 들어갔다. 그곳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들은 도대체 저 사람들이 한국 조산사를 어떻게 찾아냈으며 가당치도 않게 집에서 아기를 낳으려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사실 나도 그들이 나를 어떻게 찾아냈는지 신기했다. 그리고는 슬쩍 그녀의 남편이 제법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수군댔다. 출입증까지 만들어주는 걸 보면 그 말이 맞는 듯하다. 다른 미군들의 가정 출산 때는 경험하지 못했었다. 슬쩍 어깨가 으쓱했다.
뜻이 있는 곳엔 길이 있다! 옳다고 생각하면 행하면 된다. 모국이 아닌 곳에서의 출산은 불안했을 거다. 그래도 자연스럽게 아기를 맞이할 수 있는 장소로 집을 택하고 한국의 조산사를 찾아낸 그녀의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기의 어깨가 걸릴 것을 각오하고 있는 그녀의 선택이 무모한 것일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꼭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신념이 있다면 행하는 거다. 그런 면에서 그녀와 나는 같다.
대부분의 어미들 처럼 출산 시작은 밤 11시가 넘어서 시작되었다. 자유롭게 들어가는 출입증을 사용했다. 겨울 초입의 날씨는 목을 움츠리게 한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한 밤에, 복도 끝의 그녀 방도 썰렁하게 느껴졌다. 자꾸 견갑 난산으로 태어난 세 아이의 출산 장면이 떠오른다. 아기의 어깨가 걸리면? 태어난 아기가 숨을 쉬지 못하면? 이럴 때 가장 좋은 효과적인 것은 민첩함과 기도다. 그녀의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기도 했다. 너무나 뻔한 한계점에 나약해진 내가 보이지만 용을 써 봤자 소용없다. 그녀와 남편도 그럴 것이다. 막바지 진통에 그녀는 방 구석구석을 기다가, 섰다가, 엎드렸다가, 침대로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내가 보았던 세 아이의 출산 모습과 다르지 않다. 드디어 아기의 머리가 나오고 역시나 어깨가 걸렸다. 침대 위에서 내려와 비대칭 스쿠왓 자세를 했다가 다시 침대 위를 올라가기를 서너 번, 나는 아기의 머리를 젖 먹던 힘을 다해 당겼다. 힘이 부족하다. 이럴 땐 천하장사가 부럽다. 간신히, 간신히, 아기의 어깨가 나오고 몸이 바로 따라 나왔다. 쳐져있는 아기에게 CPR을 했다. 갑자기 그녀가 남편에게 아기를 주라고 소리쳤다. 너무나 강력한 그녀의 요구에 남편에게 늘어진 아기를 건넸다. 남편 팔에 아기가 걸쳐지자 진정된 그녀는 세 아이 모두 태어나 아빠 팔 위에서 첫 숨을 쉬었다고 했다. 정말로 아기는 아빠 팔에 엎드려 첫울음을 터뜨렸다. 등을 쓰다듬는 아빠의 손이 정성스럽다. 몇 초 사이 일어난 일이었지만 몇십 분처럼 느껴졌다. 잠깐의 CPR로, 아빠와 엄마의 간절한 바람으로, 아기는 금세 정상을 되찾았다.
팔에 갓 태어난 생명을 걸쳐놓고 등을 쓰다듬으며 남편은 기도를 했을 거다. 그 기도는 세상의 어느 기도보다 절실하고 진실했을 거다. '진실'과 '절실'이 아기를 정신들게 한거다.
닷새 후 다시만난 그녀는 아기 낳은 사람이 아닌 듯 피곤한 기색 없이 나를 맞았다. 젖도 잘 나오고 약간의 황달기가 있지만 아기는 활기차다. 여전히 큰 아이들은 이곳저곳서 놀고 있다. 어깨가 걸려 쫄깃거렸던 시간은 언제였는지 모르게 잊혔다. 헤어짐은 마음을 촉촉하게 한다. 그동안 사용했던 출입증을 반납했다.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 발걸음 가볍게 낯선 부대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