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유다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선비 Jul 26. 2018

세련된 사회 시스템


     

 모든 사람은 각자에 맞는 길을 타고난다. 지금 말하는 것은 인간 자체의 보편적인 본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성과 각자의 적합성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태어날 때부터 각자 자신의 그릇을 안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 그릇의 크기가 크고, 작음을 떠나 중요한 것은 '각자의 그릇'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큰 문제가 한 가지 있으니(이것이 한국 사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는 각자의 그릇을 채울 시간을 주지 않는다. 바로 세련된 시스템 속에 인간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텐데, 시스템의 이름은 바로 경제라는 것이다. 경제 시스템은 정형화된 그릇마저 생산해 낸다. 이 정형화된 그릇은 그 속을 채우는 매뉴얼까지 제공을 하고 있어서 매우 효율적이다. 그래서 자칫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자신의 그릇을 채우는 것은 마치 시간을 죽이는 꼴로 만들어 버린다. 자신의 그릇을 채울 시간을 버틸(이건 확실히 기다린다기보다는 버티는 것이다) 재간이 없어서, 혹은 타인이나 사회의 강요에 의해서 자신의 그릇을 뒤로한 채 사회가 제공하는 정형화된 그릇을 취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자신의 그릇을 채우는 매뉴얼은 없으나, 제공된 그릇은 애초에 생산물이기에 그릇을 채우기 위한 매뉴얼이 제공되고, 또 관리되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다 보면 자신의 그릇을 망각하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꿈을 가져라"라는 상투적인 말들로 자신의 그릇에 대한 향수는 공허하게 떠돌 뿐이다.    

  

 제공된 그릇을 채우는 내용물은 나름 달콤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매뉴얼에 따라서, 마치 코알라가 잎사귀를 씹고 취하듯이 그 단물에 몸이 아닌 정신이 썩어간다. 그 달콤함의 대가는 매우 치명적인데, 허무함 조차 망각시키는 극도의 허무함이다. 그것은 달콤한, 하지만 마약과도 같은 독이다. 경제 시스템은 시간마저 경제화, 객관화시켜버려 돈(숫자)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흘러가는 시간을 내 손 안의 돈으로 즉각 변화시키지 못하면 시간은 버려진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버린다. 시간의 소중함을 말해주던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은 정말로 그 표면적인 의미에 집중되어 버렸다. 허무함마저 상실시켜버리는 이 시대에 도대체 남은 것은 무엇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형이상학의 탄생과 죽음,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