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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Jul 23. 2018

형이상학의 탄생과 죽음, 탄생

칸트


 philosophy, 지식에 대한 사랑과 추구는 인간의 어찌 보면 극히 당연한 재질이다. 인간은 항상 표면의 배후에 있는 보편과 진리를 알고자 한다. 인간의 관심은 단순한 사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단어 게임인데 단어의 뒤에 숨어있는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가령 연필의 정의에서부터 연필이라면 가져야 하는 보편적인 본질을 알고자 한다.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만 보아도, "좋은 것이 선이다" 이것은 그저 단어의 풀이에 그치는 것이다. 이러한 물음은 사람 각자의 사상과 경험에 관계되므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그것을 정의하려는 것 자체가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철학이란 본디 형이상학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추구하게 되기 마련이다(철학을 떠나 이것은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칸트는 형이상학을 철학의 여왕이라 하였다. 하지만 칸트의 시대에 있어 형이상학이라는 철학의 여왕은 과학주의와 실증주의라는 것에 위협을 받고, 형이상학이 저질러왔던 일종의 폭정과 그 끝이 보이게 되었다. 지난 형이상학의 폭정이란, 형이상학적 사유가 형이상학의 사태 영역을 넘어 다른 사태에 까지 월권함이고, 그 끝이란 형이상학의 완성과 함께 따라오는 허무주의라는 그림자일 것이다. 


 그 폭정과 허무주의의 그늘 아래에서 철학자들은(인간들은!) 그토록 싸워왔는가? 하지만 여왕의 전통과 위신만큼은 지켜내야만 했다. 여왕은 이제 너무 늙고 힘이 없어져서 세련된 사유들의 총부리에 겨누어져 있었고, 위신은 살해당하기 직전이며, 살해당하지 않더라도 곧 늙어 죽게 되려 했다. 


 이 순간, 칸트의 업적이 있다. 칸트는 과학주의, 실증주의를 인정하고, 형이상학 역시 소중히 하였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죽기직전, 살해당하기 직전의 여왕을 '폐위'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그것도 아주 어린 여왕을 재위시킴이었다. 어린 여왕이기에, 그것은 또 다른 시대를 의미하기에 새로운 재정을 공포해야만 했다. 이제 철학의 왕국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간 쌓아온 전통을 무조건적으로 옳다 하지 않고, 재정비하는 것이다. 그것 가운데 가장 큰 개혁은, 권위의 분배였다. 여왕은 여왕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왕권과 신권의 분리와 같으며, 여왕은 이제 신권을, 기타의 권위는 왕권으로 독립시키고, 서로를 월권하지 않기로 한다. 그것은 철학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다만 시간이 흘러 그 여왕도 나이를 먹었는지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 현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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