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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Mar 26. 2018

오선비의 쓰레기 철학 강의 05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


 많은 이과생들은 라이프니츠를 미분적분학과 관련된 수학자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기본적으로는 철학자이다. 라이프니츠는 종교적인 사람이었는데, 과학을 대표하는 수학을 공부했다. 얼핏 보면, 과학과 종교를 양립할 수 없는 모순적인 관계로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 이는 라이프니츠에게는 옳은 일이었다. 왜냐면 신이 만든 이 세계, 절대적인 섭리로 움직이는 이 세계 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원리들을 수학적으로 따져보는 것. 이는 신이 만든 신성한 세계를 과학적인 도구로 분해하여 물질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 담겨 있는 신의 섭리를 따져보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는, 곧 신께 다가가는 일이라 여겨졌다. 그리고 실제로 이 시대의 많은 독실한 과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신에게 한 걸음 다가가려 노력했다.

 

 라이프니츠의 유명한 철학적 개념에는 모나드 이론이 있다. 라이프니츠는 모든 존재 하나하나를 모나드라고 말한다. 이 모나드는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는 게 빠르다. 건축가는 설계도를 그린 후에, 건축물을 짓는다. 여기서 건축가는 신이며, 건축물은 바로 이 세계, 그리고 설계도, 청사진이 바로 모나드다.


 우리의 운명은 이미 신이 정해놓은 것이다. 사사로운 이벤트들 하나하나까지도. 가령 너와 내가 만난다라고 한다면, 이미 정해진 일이다. 내 모나드에는 너를 지금 이 시간에 만나는 이벤트가 써져있던 것, 너의 모나드에도 오늘 나를 이 시간에 만나는 이벤트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그것들을 알 수 없다. 절대자인 신이 설계한 이 세계를 필멸자인 인간은 절대로 알 수가 없다. 이 모든 존재의 모나드들은 서로에게 정해진 각본대로 사건을 수행해나간다.


 비디오테이프에 비유해도 좋을 것 같다. 비디오테이프를 틀면 시작부터 끝까지 그대로 영사된다. 이 영사되는 장면들이 그 비디오테이프의 내용, 인간으로 치면 그 인간의 삶이며, 비디오테이프는 모나드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모나드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고, 숙명론적인 것인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정해져 있는 청사진대로 흘러갈 뿐이라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생에 대한 희망적인 개척 따위는 없는 것인가? 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신은 위대하다. 정교한 시계 속에 들어있는 아무리 작은 톱니여도 자신의 역할이 있는 것이며, 무의미한 것은 없다. 가령 우리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고 하자. 물론 그 영화는 이미 완결되어 있는 스토리이고, 우리는 그것을 볼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결과를 보러 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영화를 보러 간다. 어떤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중요하기보다는, 우리가 아직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이론을 접할 때, 인간의 자유의지까지 생각하면서 너무 심각하게 들어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물론 자유의지에 입각해서 비판해보거나 개선점을 찾아가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우리는 한 철학자의 사상을 배울 때는 우선 순수하게 받아들여보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우리의 삶이 정해져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우리가 확인하기 전에는 모른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묘한 용기를 우리에게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많은 모나드들이 과연 충돌 없이 잘 맞물려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라이프니츠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무수한 모나드들이 뒤엉켜진 거대한 설계도지만, 신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오류란 없다. 모나드들이 조화롭게 된다. 라이프니츠는 이를 예정 조화설이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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