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유다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선비 Apr 06. 2018

줄광대는 줄에 올랐다


 줄광대는 줄에 올랐다.

 

 여기까지는 구경꾼들의 여러 염려 덕택으로 순탄히 올라오긴 했다만, 여기서 저기까지 건너가기가 장히 어려운 것이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듯이, 바람에도 숨구멍이 있다. 그 숨구멍을 피해 건너가야 한다. 깃털과 손에 든 부채로, 바람의 결을 읽어내야 한다.

 

 처음 내딛는 발과 마지막에 내딛는 발은, 꼭 한 걸음 같아야만 한다. 줄 끝이 멀리 보여서는 더욱 안 되겠지만, 가깝고 넓어 보여도 안 되는 것이다.

 

 줄 위에 올라서면, 줄이라는 것이 눈에서 아주 사라져 버리고, 그곳만의 자유로운 세상이 있어야 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눈과 귀가 열리는 것이다. 줄 위에서는 눈이 없어야 하고, 귀가 열리지 않아야 하고, 생각이 땅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줄이 바로 알아채고서는, 나를 호되게 꾸짖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줄을 잘 타면, 빨리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어린 나이에 줄에 올라, 삼십여 년째 줄을 탄다. 구경꾼들의 간담이 덜컹 내려앉을 정도로 재주도 부렸다. 하지만 줄 위의 두 발이 자유로워질수록, 땅 위의 두 발은 위태로워져만 갔다.

 

 세상엔 줄광대가 밟을만한 땅이 흔찮을 것이 당연하지.

 

 "근데 말여! 내가 줄을 타면 하나 좋은 것이 있는디, 여기 있는 분들이 나를 올려다본다는 거여!"

 

 언젠간, 줄 위에서 내려와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어린 줄광대들이여, 나를 믿고 따라들 오시게. 줄 위의 고독과 고단함도, 줄 위를 걷다 보면 잊혀질 걸세. 죽을 판이, 살 판 되었네.

 

 "얼씨구."



* 예전 줄광대 관련 영상을 보고 너무 감동해서 남겨둔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