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유다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선비 Apr 16. 2018

망아지 그리고 인간

계몽과 고삐

 

 여기. 바로 지금 여기에 자연에서 뛰놀고, 자연에서 나는 풀을 뜯고,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자라난 아주 건강한 자연 상태의 망아지가 한 마리 있다. 이 망아지가 보는 세계란, 끝이 보이지 않는 영원한 언덕이었고, 그렇기에 망아지의 눈 속에 비치는 언덕 역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는 망아지의 눈 역시 끝없는 세계였다. 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망아지를 통해 망아지의 앞으로 부는 것이었다.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 역시 망아지를 통해 망아지의 뒤로 부는 것이었다. 시원한 바람은 망아지의 털 한 올 한 올을 적신다. 망아지가 맞는 바람은 얼마나 시원했던가! 망아지의 발아래에는 땅이 있었고, 망아지의 머리 위에는 하늘이 있었다. 끝없는 생명의 기운이 망아지를 감돈다. 그리고, 망아지는 참 많은 꿈을 꾸었다.     


 여기. 바로 지금 여기에 건물 사이에서 뛰놀고, 도시에서 생산된 음식을 포크와 나이프로 먹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계몽 상태의 총명한 한 인간이 있다. 이 인간이 보는 세계란, 인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끝없이 풍부한 자원의 세계였고, 그렇기에 인간의 손에 쥐어져야 할 것 역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욕망 역시 끝이 없었다. 뒤에서 불어오는 자유의 바람은 인간을 통해 물질로 환원되는 것이었다.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 역시 인간을 통해 물질로 환원되는 것이었다. 변화된 자유는, 물질로써 인간의 손에 쥐어지게 되었고 그것은 인간을 더욱 자유롭게 해주었다. 물질로 변화된 자연은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편의를 주었던가! 인간은 땅을 밟고 있었고, 인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끝없는 욕망의 기운이 인간을 감돈다. 그리고, 인간은 참 많은 계획을 세웠다.     


 망아지와 인간의 최초의 조우. 그리고 총명한 인간이 말했다.      


 "여기 자연 상태의 망아지가 있다! 자연에서 뛰어놀고, 풀을 뜯어서 그런지 매우 건강하고 생생한 자연 상태의 망아지가 있다! 하지만 솔질이 되어있지 않고, 말안장이 없고, 말편자가 없는 자연 상태의 고삐 풀린 망아지가 한 마리 있다!"     


 자연 상태의 망아지는, 인간의 손에 들어가면 도대체 왜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는가? 도대체 이성이란 무엇이고, 신화란 무엇인가? 인간이 그토록 바라던 위대한 이성은, 신비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신화의 세계를 왜 정돈해야만 했는가?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나, 오만 때문이었나. 계몽이란 그런 것이었는가?     


 계몽이란, 고삐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