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空間)
공간(空間)
영 space 독 Raum
오늘은 공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공간은 아주 익숙한 개념이죠? 한자 뜻 그대로 어떤 사이(間)가 텅 비어있는(空)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사용될 때는, "공간이 부족하다.", "공간 넓어?" 이런 식으로 사용되죠? 그런데 철학적으로는 어떨까요? 물론 일상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좀 더 함의하는 바가 큽니다. 아주요. 보통 공간은 시간과 함께 세트로 논의됩니다. 둘 다 만만하지 않은 개념이죠. 그래서 막막해집니다. 공간을 어떤 식으로 설명을 드려야 좋을지요. 가나다 순으로 연재하고 있는 이 용어 사전의 특성상 드디어 올 것이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설명을 해드려야겠죠? 공간이라는 개념 하나만으로도 평생을 철학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도 없거니와 제가 그 정도의 철학적 역량이 솔직히 없기도 합니다. 너무나도 무거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를 한 뒤에, 왜 공간이라는 개념이 철학적으로 논쟁이 되는지에 대해서 맛만 보고 가는 느낌으로 글을 써보겠습니다.
우선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해보죠. 사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공간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말만 전문적으로 할 뿐입니다.
공간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에서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가변적입니다. 쉬운 예를 바로 들 수 있는데요. 같은 공간일지라도, 친구가 내 왼쪽에 있으면, 친구의 입장에서는 제가 오른쪽에 있는 것이겠죠? 이처럼 인식 주체에 따라서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또 공간을 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운동이 일어나는 하나의 장(場)입니다. 공간이 있어야 어떤 운동이 일어날 수가 있죠. 도로(공간)가 없으면, 자동차가 움직일(운동)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현대 물리학으로 온다면, 공간을 4차원으로 이해합니다. 흔히 말하죠? 3차원 공간에 '시간'이라는 변수가 추가되면 4차원 공간이 됩니다. 그래서 현대 물리학에서 하나의 현상을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공간 이외에 시간을 추가해야 합니다. 즉 시공간은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틀로 이해됩니다.
기하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공간은 모든 물질을 덜어낸 빈 틀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이 세상을 창조하는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신이 "빛이 있어라!"하면 빛이 생기고, 강을 놓고, 산도 놓고 그런 겁니다. 어떤 것들이 위치할 수 있는 빈 백지 같은 것이죠. 우리의 학생 시절, 특히 수학 시간에 좌표평면을 십자 모양으로 그려놓고, 도형도 그리고, 그래프도 그리고 하죠? 그 좌표평면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말이 길어서 그렇지 제가 위에 써놓은 말들은 어려운 말은 아니었을 겁니다. 여기서 끝나면 참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않겠죠? 본격적으로 시작을 해보겠습니다. 이제야? 철학적 개념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 공간이라는 개념에도 철학자들 사이에 분쟁이 심합니다. 과연 공간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실재(實在)하는가? 아니면, 단순히 우리가 쉽게 대화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추상적인 개념일 뿐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실 수 있으니, 제가 예를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골목' 아시죠? 우리가 '골목길'이라고 말할 때의 그 골목 말입니다. 이 골목이 원래 있던 개념입니까? 그러니까 선사시대에는 골목이 있었을까요? 아니겠죠? 그냥 평원이 펼쳐져 있었으니까요.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적인 건축물이 들어선 후에야 골목의 개념이 생겨났을 겁니다. 건물들이 생겨야 그 사이에 골목길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논점은 이겁니다. 어떤 물질(물체, 여기서는 건물들)들이 있어서 그 사이에 공간이라는 개념이 들어서는 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 물질이 들어서는 것인가? 아니면 공간이라는 것 자체는 아예 있지를 않고, 인간들이 생각해낸 개념인가? 또 아니면, 공간이라는 것은 애초에 실제로 실재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들입니다. 공간이 왜 철학적으로 논쟁이 가능한지 약간은 이해가 가실 겁니다.
정리를 해드리면, 공간의 개념이 논쟁이 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공간은 어떤 본질을 가진 실체인가? 아니면, 어떤 물질들이 있기에 우리가 생각하거나, 추상해낼 수 있는 물질의 부대적인(부수적인) 성질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여러분들도 한 번 공간을 생각해보세요. 과연 절대적인 공간이란 있을까요? 한 가지 재미있는 과제를 드리고, 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자, 여러분 눈을 감아보세요. 감으셨나요? 눈을 감으면 이 글을 어떻게 읽어. 감으셨다면 아무 장면이나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그 장면 속에 있는 사람이든 풍경이든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가보세요. 제거하고 계신가요? 네 다 제거하셨다면 뭐가 남았죠? 흰색 배경?(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럴 겁니다) 아니면 검은색 배경? 이게 절대적인 공간일까요? 아닐지도 모릅니다.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 흰색이나 검은색이 칠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흰색과 검은색도 제거해보세요. 할 수 있으신가요? 혹시 절대적인 공간 정말 무(無)의 공간이 실재한다면, 그 흰색과 검은색도 제거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여러분은 상상 속에서 물질들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으셨나요?
각자 한 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무책임하게 느껴지실지 모르겠지만,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철학자들은 하나의 개념을 만들거나, 하나의 개념을 가지고 평생을 철학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개념이든,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사실은 불가능합니다. 이 철학 용어 사전에서는, 철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읽을 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뜻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로 책을 읽으실 때, 문맥이나 철학자, 특정 사조에 따라서 그 의미가 약간은 다를 수 있다는 점 기억해주세요. 어떤 상황이든 그 문맥이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