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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줌마 Dec 21. 2020

영화 '컨테이젼'

10년 전 영화가 현실이 되어 코로나 19로 나타난 ‘컨테이젼’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


‘컨테이젼’ 영화는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경고부터 하고 있다.

무려 10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을 경험하고 그대로 그려 놓은 듯 장면마다 내가 경험했고, 현재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 소름을 돋게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사물이나 추리물을 좋아하기에 ‘컨테이젼’ 역시 영화 'ET'나 ‘에일리언’처럼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상상이 만들어낸 일이라 생각하며 진행되는 과정을 긴장하며 본 영화였는데 정작 ‘컨테이젼’ 제작진은 ‘영화의 내용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언제 발생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있었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예고해서일까 최근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며 재조명되어야 할 영화라는 생각에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보게 되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 전염병      

어디서부터 인지 모르게 소리 없이 바이러스가 전염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2일째부터 전 세계에서 바이러스로 인해 일어난 일들을 보여준다.

한 가정을 중심으로 남편 ‘미치 엠호프(맷 데이먼)’는 아내 ‘베스 엠호프(기네스 팰트로)’와 아들 ‘클라크’, 딸 ‘조리’와 살고 있다.

아내 베스가 홍콩에 출장을 다녀온 후 몸살 증상이 나타나고, 4일째 되는 날 심한 경련과 함께 입에 거품을 물자 급히 병원에 입원시키나 바로 사망한다. 함께 살고 있는 아들 클라크 역시 학교에서 돌아오면서부터 기침을 하기 시작하더니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역시 사망한다.

아내와 아들을 이유도 모른 체 갑자기 잃은 미치는 뒤늦게 돌아온 딸 조리와 함께 바이러스 감염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가 뼈대를 이루고, 거기에 전염병을 연구하는 박사들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이용하여 돈을 벌고자 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크럼 위드(주드로)’로 인해 사회에 불안과 가짜 뉴스들로 또 다른 바이러스 전염병을 퍼뜨린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영화 상영시간 100분 중에 30분가량을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있는 곳으로의 역추적을 하는 장면이 계속되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과 일치되는 부분들이 소름이 돋도록 똑같아서 미래 일을 예지 하는 능력이 있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홍콩에서는 한 사람이 카지노 칩으로 게임을 즐긴 후 칵테일 잔을 들고 옆 사람 어깨를 만졌고, 시카고에서는 한 사람이 공항의 바에 앉아 음료를 마신 후 웨이터에게 신용카드를 건넸고, 도쿄에서도 역시 한 사람이 사람들이 붐비는 버스에서 여러 번 기침을 한 후 벨을 누르고 내렸고, 런던에서도 한 사람이 피트니스 센터에서 필라테스를 한 후 공동 샤워장에서 샤워를 했고, 제네바에서도 한 사람이 비즈니스로 모인 사람들과 악수를 한 후 회의를 시작했고, 한 남자는 붐비는 버스 안에서 기침을 했다.


이 모든 상황은 나라와 장소만 다를 뿐 우리가 일상에서 늘 하는 행동들이고 단지 어느 한 사람의 행동일 뿐이다.     

가족이 모여 아침을 먹고, 학교로 혹은 회사로 출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친구들이나 일하는 곳에서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고,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나누고, 현금이나 카드로 계산을 하고, 버스나 전철을 타는 모든 일들이 매일매일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알게, 모르게 들어온 전염병은 소리 없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염되고 그것이 소리 없는 전파자가 되어 한 순간, 단 한 번의 접촉으로 한 명에서 두 명이 되고, 두 명에서 4명이 되고, 4명은 16명으로, 그렇게 한 명에서 10억 명에까지 전염돼 사망하기까지 30회의 경로를 거치고, 120여 일만에 전 세계가 위험해진다.

누구에게서 인지, 어디에서 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단 한 번의 접촉으로 전 세계 60억 인류가 대재난을 겪고 있는데 코로나 19 역시 동일하게 시작되어 현재 77억 전 세계 사람들이 팬데믹에 빠져있다.     






 

팬데믹

‘팬데믹’은 세계 보건기구(WHO)에서 전염병 경보단계 중에서 최고 위험단계인 6단계로 전 세계가 대유행인 상태를 말한다.

과거에도 14세기에는 페스트(흑사병)로 유럽 인구 30~40%가 사망했고,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5천만~1억 명 가까이 사망했고, 1957년 아시아 독감으로 100만 명 사망, 1968년 홍콩독감으로 100만 명 사망, 2002년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2003년 조류인플루엔자, 2009년 신종 플루,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2019년 코로나 19까지 끊임없이 전 세계적인 전염병의 공포에 직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질병에 맞서서 백신을 만들기 시작하고 어디서, 누가 만들고, 만들어진 백신은 누가 가장 먼저 갖게 되느냐에 대한 질문과 의혹, 선의든 악의든 그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거래들, 그리고 침묵은 현실의 코로나 19와 맞닿아 불편하고, 화가 나고, 좌절하게 한다.     


컨테이젼은 분명 픽션으로 시작된 영화다.

그런데 우리는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픽션이 아닌 논픽션으로 컨테이젼을 다시 보게 된다.

영화처럼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리게 되고, 친구도,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여자 친구도 의심하게 되고, 어려움에 처했어도 외면하게 한다.

10살이 된 아이가 10년 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상을 접하면서 ‘10살이 되면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되고, 30살이 되면서 30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일들로 사회생활을 접하게 되고, 60살이 되도록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지금의 모습에 한숨만 나오고, 앞으로 자신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살아갈 자녀들에 대한 걱정이 자신의 안전보다 더 앞서는데 자녀들도, 손주들도 맘 편히 볼 수 없고, 평생에 한 번 있는 결혼식을 미루고 미루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마스크로 온 가족의 얼굴을 가리고 찍어야 했던 가족사진, 평생의 마지막 길을 가는 장례식에서도 보고 싶은 가족, 친지, 친구, 지인들의 발걸음을 막아버렸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팬데믹’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스럽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막고, 진로를 막고,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관계, 공동체, 어울림이라는 단어보다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격리되고, 혼자서 밥을 먹고, 오로지 미디어를 통해서만 자유롭게 교감하는 새로운 방식을 익히고, 이제는 거기에 익숙해져 가는 중이다.

그렇게 관계는 허물어져가고, 무감각해져 가는데 수많은 외신에서 보았던 것처럼 마트와 쇼핑몰이 털리고, 백신이 나왔다는 말이 퍼지자 백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집에 쳐들어가 협박과 폭행을 하며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약탈을 일삼는 사람들의 모습을 똑같이 경험하게 된다.


그 와중에 백신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하는 제약회사들을 등에 업고 그 틈을 타서 증권으로 이익을 보려는 자들과 저널리스트 ‘앨런 크럼 위드’는 자신의 블로그로 개나리꽃이 전염병에 효과가 있다며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정부에 대해 비판을 하며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 센터의 ‘엘리스 치버(로렌스 피시번)’ 박사는 전염병을 추적하면서 밝혀진 것에 대해 공개함으로써 발생할 결과와 일단 지켜봄으로써 생길 결과를 가지고 고민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아직은 공개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관람객들 역시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 좋은지, 솔직하게 지금까지의 과정을 밝히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함께 대처해 나가기를 호소해야 할지 고민하게 한다.

‘에린 미어스(케이트 윈슬렛)’ 박사는 치버 박사의 지시에 따라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주요 직책을 맡고, 긴급 구조원들과 함께 현장에서 일하게 된다. 

제네바의 세계 보건기구에서 일하는 ‘레오노라 오란테스(마리옹 꼬띠아르)’ 박사가 첫 번째로 사망한 베스의 마지막 행적을 조사하면서 전염병의 발생 지점과 최초의 환자를 급히 찾아내는 과정이 영화의 후반부에 집중되고 있다. 

이후 백신을 만들게 되고 그것을 누가 처음으로 맞을지, 한꺼번에 모두 맞을 수 없기에 순차적으로 어떻게 순서를 정할지 결정을 하면서 의료관계자들은 자신과 자신들의 가족을 우선순위에 두고, 서로를 챙겨주면서 또 서로 간에 비밀을 갖게 된다.


그런 현실을 우리는 마스크 한 장을 구입하면서, 손소독제 하나를 구하면서 똑같이 경험해 보았다. 어느 사람은 마스크 한 장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어느 사람은 마스크로 큰돈을 벌고 이익을 위해서는 자국민도 외면해 버리는 현실 속에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들과의 갈등, 그리고 보이지 않는 거래를 암묵적으로 알게 된다.      






     

지금 우리의 모습     

어느덧 코로나 19가 1년이라는 시간을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통째로 삼켜버리고 처음 발병했을 당시에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보다 확진자가 더 많아지고, 더 심각한 지금의 상태에서는 의료진의 부족과 체력의 한계, 그리고 그동안 경험했던 일들로 조금은 관리하는데 질서도 잡혔지만 반면 서로에 대한 불신도 깊어졌고, 정부의 방침과 질병본부의 발표가 서로 어긋남에 따라 국민들의 불만은 쌓여가고, 흔들리는 정책과 함께 모두가 갈팡질팡하고 있다.

6.25를 겪은 세대는 전쟁처럼 눈앞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아니나 그만큼의 심적 괴로움을 겪는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체력도, 면역도 약하고 가지고 있는 지병도 있는데 매일 터져 나오는 뉴스는 어느 것 하나 희망적이지 않다. 

혼자서 혹은 부부가 함께 살고 있는 공간에 자녀들의 발길이 끊어진 것도 한참 되었고, 말벗이라도 나누러 다니던 노인정도 갈 수 없고, 산책조차 자유롭지 않다. 그러다 전염이라도 되면 자녀들에게도, 함께 살고 있는 배우자에게도 차마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에 한숨과 함께 하루 종일 집안에서만 생활을 한다.

그러다 보니 먹는 것도 시원찮고, 근육도, 체력도 점점 더 떨어지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코로나 블루’라는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또 다른 질병이 스멀스멀 파고들어 의욕도, 희망도 가지지 못하게 마음 한가운데부터 침식되어 간다.

더불어 매일 쏟아지는 뉴스들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조차 알 수 없는 정보들로 전염병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어 이리저리 퍼 나르고,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하면서 전염병보다 더 무섭게 우리의 마음을, 생각을 파고들고 있다.          


2010년만 해도 한국에는 라임병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감염자가 연간 수백 명씩 발생한다고 한다. 라임병은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 5∼7월에 쥐, 다람쥐 등 설치류의 몸에 붙어있던 참 진드기가 공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사람의 피부를 물어 전파되는 병인데 가끔 뉴스를 통해 진드기에 물렸다는 소식을 자주 들었다.

2002년에는 박쥐에 있던 바이러스가 사향고양이로 옮겨진 뒤 다시 사람에게 전파돼 발생한 전염병 사스가 있었고, 돼지독감으로 불렸던 신종 플루(2009년), 박쥐에서 전염된 에볼라 바이러스(2014년), 낙타가 매개체였던 메르스(2015년), 모기에서 발생한 지카 바이러스(2016) 등 최근 발생한 신종 전염병들은 다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산책길에서 만날 수 있는 진드기나 모기, 여행 중에 한 번은 봤거나 타봤을 낙타나 박쥐, 원숭이들이 모두 전염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된다는 사실은 모든 것과의 접촉을 두렵게 한다.     


더구나 컨테이젼의 마지막 장면은 홍콩 레스토랑의 요리장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기 위해 돼지를 잡다가 베스가 찾아왔다는 소식에 돼지에서 나온 피가 묻은 손을 두르고 있던 앞치마에 급히 닦고 주방 밖으로 나와 반갑게 베스와 악수를 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그 한 번의 악수로 베스에게 전염이 되고, 그것을 다시 아들에게 전염시켜 두 사람의 생명을 순식간에 잃게 한 것이다. 그리고 요리장이 잡던 돼지는 돼지우리 위 나무에 앉아있던 박쥐가 떨어트린 무언가를 먹었던 수많은 돼지 중의 한 마리였다.

이렇게 무심하게 던져진 마지막 장면이 컨테이젼의 시작이 되었는데 너무 허무하기도 하고, 좌절하게도 하고, 어이없게도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질문하게 한다.

'나는 안전한가!'

오늘 버스도 탔고, 엘리베이터도 탔고, 동료와 전화기도 같이 쓰고, 서류도 주고받고, 차도 같이 마시고, 식사도 함께 했는데......!     

'또 나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

이리저리 휩쓸리며 아무 말이나 지껄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지, 침묵하며 무관심하는지, 정부와 이런저런 정책에 불평만 쏟아내고 있는지, 서로를 격려하며 주의사항이나 도움을 줄만한 것들을 챙겨주는지, 나만의 안전을 추구하며 공유해야 할 내용들도 혼자만 알고 혼자만의 유익만을 위하고 있는지.......!     

시간의 문제이지만 곧 코로나 19에 대한 백신도 나오고, 어느 순간 확진자도 다 없어지는 시간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은 또 얼마나 될까, 또 다른 전염병이 어느 순간 영화처럼 우리 옆에 나타나고, 우리는 또 다른 이름을 그 바이러스에 붙이며 또 다른 백신을 만들고 또 그것에서 자유롭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다만 그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묵시적으로 우리는 환경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고, 자연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지금의 편리함보다는 미래를 위한 투자와 배려, 느림의 미학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느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전염병이 단 한 명에서 시작되어 퍼졌듯이 한 사람의 결단력과 영향력을 전염병에서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살기 위한 방법으로도 실천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컨테이젼의 시작은 픽션이었으나 끝은 논픽션이 되었고, 그것을 경험한 우리는 해결방법까지도 영화 컨테이젼에서 찾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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