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편견이 낳은 '뉴욕 필하모닉 최초 여성 지휘자'의 감동실화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많은 꿈과 계획들을 세운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일들을 다짐하지만 대부분 성공하기보다 실패하거나, 아니면 포기하는 경우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새해에 들어 하고 싶었던 것을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시작을 해 보지도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중 가장 앞서는 생각은 늘 ‘나이’다.
이 나이에 해서 뭘 할 건데, 받아주기나 할까, 다들 젊은 사람들일 텐데 등등
그럼에도 가끔 보이지 않는 곳에는 슬며시 도전해 보지만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 스스로를 늘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더 컨덕터’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작품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많은 의견들을 내지만 내겐 모든 것이 도전이었고, 감동이었다.
특히 여성 감독과 여성 주인공으로 만들어진 영화라서 그런지 여성의 심리를 잘 묘사하려 애썼다는 느낌과 보통 남성들의 주장이나 횡포가 이 영화에는 없는 듯하다. 도리어 모든 것을 가진 프랭크의 어머니(시안 토마스)가 자신 역시 노래를 하던 사람인데 결혼을 하면서 포기했던 것처럼 윌리도 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훼방을 놓는 모습이나 윌리의 어머니(아넷 말헤르버)이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에 돈을 벌지 않고, 자신의 꿈을 키우려는 것에 반대하던 모습은 서로의 위치와 환경에서 여성들의 미묘한 갈등을 잘 보여준 것 같다.
‘더 컨덕터’는 1930년대의 미국과 네덜란드의 모습을 시대상과 복장, 거리의 분위기까지 제대로 재현해 낸 장면들과 클래식이라는 음악을 좀 더 흥미롭고, 친숙하게 세상에 내놓은 영화이면서 뉴욕 필하모닉 창단 96년 만에 첫 여성 지휘자인 마에스트라가 나왔던 것처럼 클래식 음악계에서 여성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던 편견이 심했던 시대에 10g의 지휘봉 하나에 열정을 담아 그 편견의 벽을 허문 ‘안토니아 브리코’의 실화를 담은 영화다.
‘안토니아 브리코’의 역을 맡았던 ‘윌리 윌터스(크리스탄 드 브루인)’는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 아버지와 윌리를 구박하는 듯한 모습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 있는 외동딸이다.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한 듯하나 늘 어머니의 눈치를 보고 있는 모습도 영화 초반에 느껴진다.
그리고 밝혀진 사실은 네덜란드에서 친모가 잠시 위탁가정에 맡겼던 윌리를 자신들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데리고 미국으로 도망해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과 부모가 알려준 사실과는 다르게 친모가 죽기 직전까지 윌리를 찾았고, 친모의 형제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친모의 행방을 찾아 네덜란드로 왔다가 그곳에서 음악학교에 들어가 지휘를 하게 되기까지의 갈등과 성공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윌리의 가정사나 지휘자가 되기까지의 과정보다도 그 가운데서 이루어진 사람들과의 만남과 관계에 더 집중되었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음악학교에 가고 싶어 일을 찾아 나설 때 만났던 로빈(스캇 터너 스코필드) 역시 여성이었지만 음악을 하고 싶어 남장으로 변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영화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나는 반전이 있었는데 로빈과의 만남은 윌리에게 깜깜한 한밤중에 한줄기 빛이 되어 가는 길을 밝혀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로빈과의 만남은 윌리가 힘들 때마다 가족 이상으로 윌리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힘을 주었던 사람인데 평생을 살면서 이런 사람과의 만남이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축복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윌리를 사랑하지만 윌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아무 가치도, 또 여성이기에 할 수도 없는 일이라 여겨 다른 여성과 결혼했던 프랭크(베냐민 바인브라이트)는 비록 다른 여성과 결혼은 했지만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힘과 능력이 있었기에 드러내지 않고 후원자라는 이름으로 학비를 대주고, 피아노를 사주는 등의 물질적으로 아낌없이 후원을 해주었다.
비록 자신과 뜻은 달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후원했던 진짜 프랭크의 마음은 알 수 없었지만 ‘마음이 가는 곳에 물질이 간다’는 말처럼 비록 다른 여성과 결혼은 했지만 윌리에게 가는 마음까지는 어쩌지 못한 듯하다.
프랭크와 윌리의 애틋한 마음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엘가의 ‘사랑의 인사’ 곡이 흘러나올 때 모두가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늘 들어도 제목이 떠오르지 않고, 좋기는 하나 쉽게 접근해지지 않는 클래식이 이 영화에서는 마치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처럼 쉽게 다가온다.
영화의 초반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지는 대사들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다.
처음에 윌리의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고 레슨을 허락한 다음 윌리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다 다른 맘을 품고 겁탈하려 했던 선생은 윌 리가 저항하자 “여자는 늘 아래에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불끈 주먹이 쥐어졌다. 아마도 앞에 있었다면 윌리를 대신하여 한 대 쳤을 것 같다.
그리고 윌리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표는 하나다”
“음악에는 성별이 없다.”
“예술의 가장 큰 도전은 실망을 이겨내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안토니아 브리코’는 1902년에 태어나 1989년까지 살면서 그의 이름 앞에 수많은 수식어를 달아놓았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음대에서 지휘를 전공한 최초의 여성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 지휘 마스터 클래스에서 최초로 졸업한 미국인
1930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지휘자로 데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함부르크 필하모닉, 헬싱키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1938년, 창립 96년 만에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한 최초의 여성 지휘자
1939년, 안토니아 브리코의 이름을 딴 ‘브리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창단
클래식 음악사 최초로 뉴욕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지휘한 첫 여성 지휘자 등이다.
이런 위치에 오기까지 그녀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오직 하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지만 그녀가 가졌던 꿈과 열정, 그리고 끝없는 도전이 비록 수석지휘자라는 타이틀까지는 잡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최고의 자리까지 안내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로 1년 가까이 그 자리에 멈춘 듯이 지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 어느 한 곳에도 희망이라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또 도전하고, 달려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자리가 아닌 달려가서 만날 그곳에 우리의 목표와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윌리에게 로빈과 프랭크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아낌없이 후원할 가족, 친구,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고 싶다.
아직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여성 감독이라서 그럴까 처음으로 여성들로만 만들어진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시청의 공연장에서 열릴 때 공연을 보러 가지 않겠다던 프랭크가 뒤늦게 도착하여 자리가 없자 의자 하나를 들고 맨 앞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볼 때 윌리의 지휘하는 모습이 공연장의 바닥에 프랭크의 모습과 어울려 함께 움직이는 영상은 정말 아름다웠다.
더구나 ‘사랑의 인사’라는 엘가의 곡은 대부분 아는 곡인 데다가 감미롭게 퍼지는 음악의 선율과 거기에 맞물리는 윌리와 프랭크의 모습은 또 한 편의 곡을 만들어내는 듯하다.
그리고 이미 영화는 끝났지만 영화에서 흘러나왔던 ‘랩소디 인 블루’ ‘미완성 교향곡 8번’ ‘아메리칸드림’ 등의 곡들을 찾아 다시 들으며 현재 진행형으로 올해의 꿈과 계획들을 다시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