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비줌마 Jan 10. 2021

신앙

'평강약국'에서 받은 6,400원


거리를 걷다 보면 수많은 간판에 상호들이 즐비하다.

그 상호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어주고, 거리의 풍경을 만들기에 각 지자체들은 도시환경을 위해 동일한 글씨체에 같은 디자인으로 바꾸어 일관성을 주고, 거리 풍경도 깔끔해지도록 노력을 하는 것 같다. 물론 간판이 떨어지는 위험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간판들이 있는 곳은 당연히 상호를 찾기도 수월하여 서로에게 유익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상호들을 읽다 보면 실로암, 에벤에셀, 은혜, 가나안, 가브리엘, 겟세마네, 헵시바, 사랑, 모리아, 베드로, 온누리, 벧엘, 샬롬, 평강 등 잠깐만 훑어봐도 기독교적인 용어들이 적힌 상호들을 쉽게 볼 수가 있다.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그 상점의 주인일 거라 생각한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굳이 그런 기독교적인 상호를 사용할 이유가 없을 테니.


반면 고객들이 그런 상호를 방문할 때는 어떤 마을일까 궁금하다.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나 스스로 먼저 최선의 예의를 갖추게 되고, 친절하게 다가가게 된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같은 편이라는 생각이 아마도 잠재해 있기 때문인데 간혹 그런 기독교적인 상호를 걸고 영업을 하면서도 평균 이하의 무례한 태도로 고객을 맞거나 대하면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니어도 화가 나고 부끄럽다.

가끔 뉴스에서 어느 교회가, 어느 목사가, 어느 장로가 어땠다는 뉴스만 나오면 예민해지는 게 나만 그런지 가끔은 궁금하기도 하다.

그만큼 내 몸에 십자가를 걸고 있던지, 아님 차에 달고 있던지, 간판에 상호로 넣었다면 그만큼의 부담과 책임도 함께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점점 기독교인에 대한 기대도 없고, 도리어 책망을 받는 경우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유난히 작년 한 해는 특히 종교인들이 많이 힘든 한 해였다고 생각하면서 그중에 기독교인들의 마음에는 조금 더 시련의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일부 기독교인들의 잘못이 전체로 비추게 되고, 또 탄압이라던 지, 신앙의 자유를 달라던 지 하면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으로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는 기대조차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 전 외국에 있던 아이가 일이 있어 한국에 들어왔다. 

늘 긴 시간을 머무는 것이 아니기에 입국하게 되면 일도 봐야 하지만 종합검진을 비롯하여 치과, 안과 등에서 안경도 새로 조정하고, 충치도 치료하고, 외국에서 할 수 없는 일들도 늘 함께 하게 된다.

그러다 치과에서 이 치료를 마쳤는데 곧 다시 출국해야 하는 처지라 혹시 모를 후유증을 대비하여 염증에 대한 약 처방을 해 주었다.

그리고 치과병원 바로 위에 약국이 있으니 가서 약 받아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수십 년 가족이 다 같이 진료를 하는 치과인지라 가족 같기도 하고, 혹시 모를 일을 위해 안전하게 처방을 해 준 것이다.

그래서 약을 처방받으러 갔는데 입국하고 거의 한 달이 되어 가기에 자연스럽게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입국한 것이 자동으로 처리가 된 줄 알았는데 입국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걸 알려주어 다시 치과에 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거긴 되어 있는 줄 알고, 의료보험 적용을 하여 계산을 한 상태라 월요일에 확인하여 알려주기로 하였다.

아이는 이미 출국을 하였고 대신하여 월요일 아침에 부랴부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확인을 하여 치과에 연락을 하고, 약국에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별도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주 이상 지난 뒤 내가 치과에 갔는데 그 사실을 물어 확인하더니 약국에서도 환급받으라고 하여 치료를 마치고 3층으로 올라갔다.

이런 곳에 약국이 있는 줄 처음 알았는데 여기에 있은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치과에서야 별도의 약을 처방받는 일이 흔하지 않고, 같은 층에 내과도 있다는데 내과 역시 있는 줄 몰랐기에 상가 안을 꼬불꼬불 돌아 약국을 찾아가니 가장 구석에 ‘평강약국’이라는 상호가 보여 들어갔다.

그리고 쭈뼛거리다 상황을 설명하니 바로 기억해 내고는 카드로 결제가 되었는데 카드 있냐고 물어서 생각해 보니 아이가 자신의 카드로 계산을 했을 거라는 것을 그제야 기억해 내고 없으니 당연히 환급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여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나오려고 하였다.

그런데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카드가 없으니 현금으로 환불해 주겠다며 6,400원을 내 손에 건네주었다.

너무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일이라 건네는 손에 무심코 손을 내밀어 받아 들고는 멍하니 잠시 서있었다. 사실 얼마 안 되는데 여기까지 올라온 나도 뒤늦게 왜 올라왔지 하는 생각과 이렇게 해 주어도 되나 싶은 여러 생각과 마음들이 동시에 밀려와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약국을 나왔다.

사실 치과에서 가라고 하지 않았으면 생각도 못할 일인데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간호사와 치과 선생님 둘이서 전에 누구도 바로 환급해 주었으니 꼭 올라가서 환급받아가라고 하여 올라갔는데 이런 경우가 정말 흔한 것인지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환급이야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해 주는 것이 당연하지만 카드로 결제를 했는데 현금으로 환불을 해 주는 일은 단호하게 없을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상호에 걸린 ‘평강약국’이라는 단어로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누리고 싶은 뿌듯함이 더 진하게 전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빵을 들고 다시 치과와 약국엘 찾아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빵을 전했더니 약국에서는 안 그러셔도 되는데 당연히 환급받아야 하고, 자신도 정당하게 계산을 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어느 곳에서나 경험하거나 심지어 들어본 적도 없다.

너무도 당연한 것을 고객은 늘 ‘을’의 입장에서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해야 하고, 상점의 주인들은 원칙을 내세우며 주장하기에 아예 시도조차 안 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마도 대부분일 것이다. 나 역시 아이가 자신의 카드로 계산을 했을 거라는 것을 생각했더라면 금액을 떠나서 아예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처음으로 6,400원의 돈이 엄청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의 금액보다 그 돈에 담긴 ‘평강약국’의 양심과 종교인으로서의 자세가 나 자신을 겸손케 하였기 때문이다.

늘 종교인들의 그릇된 태도로 불만이 많은 내게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앙인으로서의 마음과 자세로 조용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였다.

당당하게 ‘나는 기독교인이다.’라는 마음과 자세로 자신의 몸에 장식을 하던지, 차량에 표시를 하던지, 상호에 내건다면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고 자신의 영업장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평안으로, 축복이라는 의미로 전달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책임감 있는 자세와 마음을 가지고 기독교인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은 갖추어 ‘평강약국’처럼 이름에서부터 삶까지 그 상호가 가지고 있는 주님의 사랑과 마음을 전하며 이름이 가지고 있는 신뢰를 저버리지 않은 채 2021년을 살아가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되길 기대하고, 소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더 컨덕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