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다섯 번째 식사 -유령의 마음으로 이 세계 방랑밥

아가씨의 식사를 향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by 와니와 준하

꿈에 유령이 찾아오는 밤에 나는 상상한다. 죽어서 어디로 가게 될까?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나를 찾을까. 봉분은 싫고, 납골당은 무섭고 답답하고, 결정적으로 죽어서까지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싶지는 않다. -와니는 내게 ‘퇴비화’라는 아주 획기적인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사후세계는? 사후세계는 있을까? 나는 죽어서 <꼬마 유령 캐스퍼>처럼 친근한 유령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고스트 스토리>처럼 오랜 기간 공간에 눌어붙어 있다가 풀썩 사라질까. 혹은 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처럼, 조금 더 평온한 생물-혹은 무생물-로 환생하려고 말 그대로 ‘브러쉬 업 라이프’ 할지도 모른다. 아니, 진심을 고백하자면 오랫동안 꿈꿔왔다. 죽음 뒤에 눈꺼풀이 강력본드보다 끈끈하게 달라붙기를. 육신과 채 분리되지 못한 영혼이 축축한 흙에 섞여들어 깊고 무거운 잠을 자기를 바랐다. 장례식은 어찌 되든 좋다. 그런 생각을 얼핏 하면서.


내게 죽음을 상상한다는 건 그런 문제였다. 눈꺼풀 위에 6피트 높이의 흙이 쌓인다면 느껴질 무게, 썩어가는 것과 지렁이... 단단히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은 건 가깝지만 먼 친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였다. 장례식장 사무실 앞에 걸린 B1 사이즈의 장례 물품 가격표 아래 서서 나는 이 말을 떠올렸다. ‘결혼은 뭐 혼자 하나?’ 동시에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는, 죽는 건 뭐, 혼자 죽나? 나는 여태 죽음이 아주 조용하거나 슬프거나 평온할 줄로만 알았다. 슬퍼하는 사람들끼리 술잔을 나누고, 죽은 사람이 대접하는 식사를 묵묵히 먹으며 그게 누구든 떠나보내는 행사라고. 죽음 뒤에 남아있는 것들이 애도와 추모인 줄 알았다. 적어도 머리핀 하나, 빌린 넥타이에 손님상에 나른 국과 밥공기와 그걸 떠먹은 일회용 숟가락의 개수까지 낱낱이 적은 영수증일 거라고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Dv6hZdIUwAE_5cu.jpeg 파이를 씹어 삼키는 <고스트 스토리>의 루니 마라. 파이가 정말 맛 없었다는 후일담이 들려온다.

결국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 장례식장 로비, 차가운 소파에 오래 파묻혀 있고 난 후로는 고민했다. 내가 어떤 유해하지 않은 방식으로 분해되어 흩어지더라도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은 장례식장에 있을 것이다. 바닥에 발을 딛고 서서 별로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을 구경하는 건 괴로운 일이다. 3일 동안 육개장을 먹고 편육 접시를 나르는 것, 그것만큼은 원치 않는다. 어쩌면 누워있는 날 두고 행정적인 문제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좀 끔찍한 일이 아닌가. 마지막만큼은 주목받아도 좋을 텐데, 아니 주목받고 싶은데! 장례는 산 사람들을 위한 행사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 그랬지, ‘스티커를 붙이는 센스는 인생의 센스이기도 한 법’이라고.* 어떤 장례식을 꾸미느냐는, 앞으로도 오래 살아있을-그러기를 바라는-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생의 센스를 뽐낼 기회가 아니겠는가.


메뉴는 뭐로 할까. 육개장을 거부하는 이상 대안이 있어야만 한다. 이왕이면 채식주의자 친화적인 메뉴가 좋겠다. 소화에도 좋고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도 않는 파스타는 어떨까? 소스의 배리에이션도 다양하고. <나이브스 아웃>처럼 대저택에서 와인을 마시며 벌어지는 장례, 그것도 급식에 나오는 것처럼 유치하게 생긴 토마토 파스타와 함께라면 재미있을 것 같다. 미스터리 사건이 벌어지는 부분만 빼고. 그런 대저택을 가진 건 아니니까 멋들어진 숙소라도 빌리라고 해야겠다. 어떤 당위나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그런 터무니없는 장례식을 바란다. 단지 내가 원했다는 이유로 이상한 결정을 하고, 장례란 게 그 정도로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


그렇다고 죽음에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다. 여자에게 치마를, 남자에게 정장을 대여해주는 장례식장에 삶을 통틀어 가장 비싼 대관료를 내주기 싫을 뿐이다. 사람들이 도망치듯 잘 모르는 친척의 진로를 묻지 않길 바란다. 복잡한 계산들에 묻혀서 죽은 내가 아주 사소한 문제처럼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적당히 슬퍼하고, 한 접시를 든든히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마지막으로 친구들에게 남길 말이 있다면 이게 될 거다. 돌아가는 길에 날 잊어도 좋아. 어차피 나는 퇴비가 되어 무언가의 성장을 촉진하고 있을 테니까.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의 대사 중.



안녕하세요. 준하입니다. 오늘 글은 어떠셨나요? 이 주제는 SNS에서 읽은 ‘나 죽으면 마라탕 가게를 차려놓고 친구들을 대접해야지….’하는 장난스러운 글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는 날 무얼 대접할지가 이렇게 진지하고 어려운 문제가 될 거라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어요. 제가 정말로 꿈꾸던 그대로의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땐 브런치에 슬쩍 공지 띄울테니 밥 먹고 가세요.


벌써 제가 이 시리즈로 인사드리는 마지막 날이네요. 다음 주에는 와니의 인사가 업로드됩니다. 여기까지 열 다섯 번의 식사를, 다음 인사까지 합하면 열 여섯 번의 식사를 함께 해주셨습니다. 마주 앉아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다음에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안녕!

매거진의 이전글열네 번째 식사 - 당근을 씹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