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의 식사를 향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수영을 해야겠다. 그렇게 결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유는 정말 대단치 않았다. 수영이 좋단 소릴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고, 꾸준히 할 운동을 찾고 있었고, 채광 좋기로 소문난 근처 수영장이 마침 4월에 수강 인원을 증원한단다. 원체 운동신경이 없는 내게 기죽지 않고 재미를 붙일 운동을 찾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우연은 나를 수영장으로 인도했고, 내게 남은 일은 결정하는 것뿐. 그렇게 가벼운 계기에 비해 무거운 마음으로 결심했다. 수영을 해야겠다!
쭈뼛거리며 입장한 수영장에선 축축한 냄새가 났다. 처음 오신 분들 모이세요, 하는 소리를 따라 유아 풀에 들어갔고 발차기와 호흡법을 배웠다. 들이쉬고, 내쉬고, 음파 음파. 머리를 두 번이나 감은 아침, 수영장을 나서는 길에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레드벨벳의 ‘음파 음파’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첫 한 달 간은 발만 열심히 찼다. 이상하게 남들은 앞으로 잘만 가던데, 앞으로 나아가긴커녕 발을 계속 굴려도 떠 있기조차 힘들었다. 6시에 비몽사몽 방을 나서면서도 이어폰을 끼고 ‘자유형 발차기 안 되는 이유’. ‘수영 왕초보’ 뭐 이런 검색어들을 돌려가며 영상을 찾아봤다. 오늘은 더 잘될 거라고 믿으며, 또 나 같은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말했듯, 나는 원래도 운동신경이 없고 체력이 약하다. 강사님이 내게 무심한, 그러나 상냥한 목소리로 “천천히 하세요.” 하실 때면 남몰래 안도하면서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일본에서는 녹차를 마시다가 차 줄기가 서면 그날은 재수가 좋다고 여긴다고 한다. 다들 물고기처럼 팔다리를 펴고 열심히 헤엄치는 와중에, 초급반 레인에는 유독 일어서는 사람이 많다. 25미터를 한 번에 완주할 재주가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찻잎으로 치면 우리는, 특히 나는 행운의 찻잎일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다. 그러나 수영장에서 찻잎처럼 벌떡 서는 사람의 꽃말은 ‘초보자’일 테지. 마음처럼 되지 않는 몸뚱이에 괴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수영 가는 길엔 오늘도 교통 체증을 일으킬 내가 한심스럽고 부끄러웠고, 매번 가지 말까 고민했지만, 네 번에 한 번 정도를 빼면 그래도 수영장으로 향했다. 어쨌든 강습이 끝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나오면 전에 없이 배가 고프므로. 이쯤 되면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다. 아침으로... 뭐 먹지? 김밥, 빵, 삼각김밥... 뭐가 됐든 배를 채우고 나면 사고가 단순해지고 마음이 넉넉해진다. 말하자면, 머릿속에 6시에 일어나서 운동했고 아침밥까지 든든히 챙겨 먹은 보람찬 하루라는 사실만이 남는 거다. 아, 역시 수영 배우길 잘했어. 수영 최고! 아침 수영 후에 아침을 챙겨 먹는 건 어느새 습관이 됐고, 당연하게도 아침을 잘 챙기지 않는 평소보다 특별한 식사의 기억으로 남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나를 수영의 길로 이끈 장본인 와니와 만나 아침을 먹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뜨거운 볕 아래 바람이 쾌청하게 불었다. 아침 메뉴는 베이글과 크림치즈. 둘 다 에브리씽 베이글에 각각 블루베리 크림치즈, 베지터블 크림치즈를 골라 포장해 나왔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본 이들이라면 안다. 그 영화 이후로 우린 세상에 베이글이라곤 참깨, 양파가루, 양귀비씨가 올라간 에브리씽 베이글밖에 없는 사람들처럼 굴기 시작했다.) 야외계단에 앉은 우리는 서로의 수영 근황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25미터 레인을 쉬지 않고 왕복하는 데 성공한 와니, 처음으로 ‘킥판 놓고 가볼까요?’ 소리를 들은 나. 평영만큼은 자신 있어서 앞 사람과 거리를 조절하는 와니와 25미터를 왕복하진 못해도 킥판을 놓고도 물에 뜨는 나. 수영으로 시작한 하루면 평소보다 눈이 곱절은 뻑뻑하지만, 그것조차 상쾌하기만 했다. 그날 이후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나는 남들처럼 킥판을 한 번에 떼지 못했다. 그런 아침에도 베이글은 맛있었고, 나는 여전히 수영이 즐거웠다. 자유형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 우리는 베이글 교환식을 거행했고, 두 가지 크림치즈를 즐긴 아침 식사 후에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이날 이후로 나는 ‘잘하기’를 거부하노라 선언했다.
수영의 아침엔 실패가 없다. 발차기를 아무리 차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도, 킥판을 놓고 앞으로 나가기 두려워 자꾸 행운의 찻잎처럼 벌떡 일어서는 날에도. 벌건 볼로 걸어 나갈 때쯤이면 다음 강습까지 남은 시간을 셈하게 된다. 그리고 감히 ‘자기효능감’이라고 부를만한 단 하나의 식사가 있다면 그건 수영 후에 먹는 밥이겠지. 잘 된 동작과 그렇지 않은 동작의 연결 지점을 떠올리며 먹는 아침은 뭐가 됐든 속이 든든하다. 그게 단순히 평소보다 더 허기져서 많이 먹기 때문은 아니라고 믿는다.
안녕하세요, 준하입니다.
와니는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 수영을 시작했다고 썼던데, 저도 같은 이유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벌써 지난 4월이네요. 저는 이번 달도 수강신청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자유형만 할 줄 아는 초보 중의 초보인 저는 언제쯤 오리발 구경을 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수영은 두발자전거 같아서 한 번 배우면 잘 잊지 않는다’는 강사님의 말을 믿고 걱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음주에는 와니와 준하가 함께 다녀온 홍콩 여행과 식사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오, 홍콩. 홍콩 영화가 좋아 넷이 떠난 여행에서 저희는 어떤 식사를 했을까요? 다음 주를 기대해주세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