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의 식사를 향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광둥어와 북경어를 구분하게 된 게 언제였더라. 개강을 나흘쯤 앞두고 홍콩 익스프레스의 좁은 좌석에 몸을 실은 나는 생각했다. 아이패드엔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을 먹고 목소리를 잃은 금성무와 기억상실증 킬러 여명이 나온다는 <타락천사>를 틀어두었고, 우리 줄엔 와니를 비롯해 친구 셋이 좀이 쑤신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뒤늦게 합류해 혼자 떨어져 앉은 친구까지 넷. 이 여행은 더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5월 즉석 떡볶이집에서 시작되었다.
아주 첫 계기는 그냥 홍콩 영화였다. 같이 홍콩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짜증이 잔뜩 오른 양조위의 “여보세요?”를 수준급으로 따라하기 시작했고, 침사추이고 센트럴, 구룡반도 같은 지명을 익숙한 듯 불러대기 시작했을 때 홍콩은 더 이상 모르는 곳만은 아니었다. 도시 곳곳을 아는 것도 분명 아니었지만, 익숙하게 골목을 산책하고 장소를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시달렸다. 거꾸로 매달려 키스하는 장만옥, 손가락 인형을 끼고 연극을 하는 원영의와 얼굴만 내놓고 땅에 파묻힌 양조위를 우리는 보았다. 그리고 도시의 흘러간 풍광은 실재하지 않았던 시대를 통해, 현대 홍콩인들이 아는 것 너머의 시간 혹은 실제와도 아주 다르지 않았을 일상을 통해 화면 위에 그려졌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홍콩에 빠졌다.
그러니까 ‘홍콩에 갑시다!’하는 소리는 아주 터무니없게 들리지 않았던 거겠지. 처음 이야기가 나오고 한 시간 뒤에 우리는 티켓을 알아보고 있었고, 자정이 되기 전에 비행기표를 왕복으로 끊고 헤어졌다.
여행을 떠나는 날까지도 한국식 한자음과 광둥어 발음은 뒤섞인 채였다. 아니, 많은 가게들의 영문명까지 가세해서 여행이 다가올수록 혼란에 빠졌다. 주성치는 주성치고, 왕가위는 왕가위였지만 구룡 반도는 구룡이기도 카우룽이기도 했다. 침사추이는 한국식으로 어떻게 읽는지 알지도 못했고 어떤 때는 아니타 무이, 매염방 어느 쪽이든 주워 썼던 것 같다. 가게, 사람, 지역, 아주 많은 이름…. 여행 준비에 열정적이었던 친구들을 따라 열심히 조사하는 척을 했지만, 난 수많은 핀이 꽂힌 공유 지도를 면밀히 살피기만 했을 뿐이었다. 숙소 옆에 양조위의 목격담이 뜬 죽집이 있고, 그 옆엔 유명한 차찬탱이…. 내가 아는 장소들은 쉽게 연결되지 못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숙소로 가려면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하는지를 헷갈려 하며 나는 인정했다. 스스로가 여행이나 계획에 맞지 않는 사람이란 사실을. 특히 머릿속 뒤섞인 이름들, 부분부분 어설픈 지도와 함께라면 말이다.
23년 5월에 한국에서 정식 개봉한 <칠중주: 홍콩 이야기>는 홍콩의 유명 영화감독들이 만든 7개의 단편을 엮은 영화다. 그중 두기봉의 <노다지>에는 식당에서 주문할 음식의 번호와 투자처 번호를 헷갈려 엉뚱한 데 금융 투자를 하는 세 청년이 나온다. 따지자면 나를 깔깔 웃긴 것은 다른 단편이었지만 “카레 국수가 오르고 있어!” 하는 대사는 영화관을 나서서도 몇 번 따라했다. 음식명 대신 붙은 번호와 영화 속 한산하거나 북적이던 식당을 떠올리며.
우연인지, 홍콩에서의 첫 식사는 카레 국수 네 접시였다. 모르는 언어를 쓰는 모르는 얼굴들 속에서 우리는 아는 이름을 찾아 헤맸다. 광둥어 메뉴를 받아 들고 난처해하다가 새로 받은 영어, 가타카나, 한국어가 줄지어 있는 외국어 메뉴판. (번역이 엉망이었다.) 여전히 광둥어 메뉴명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숫자로 된, 가장 간단한 이름을 기억하기로 했다. 어렵사리 소 힘줄 카레 국수 네 개, 밀크티 한 잔과 레몬 아이스티 석 잔을 주문했다. 먼저 나온 레몬 아이스티 혹은 똥랭차凍檸茶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에 나는 안도했다. 똥랭차의 원래 발음을 모르는 우리,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종업원, 그 사이를 오간 숫자 8. 설거지의 잔해가 남은 식기나 끈적한 테이블이 더 이상 아무렇지 않았다.
고작 나흘 떠돌았지만 홍콩은 우리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는 밀크티와 아이스티가 있다면 서로가 무엇을 택하는지, 각자 미술관에서 오래 머무르는 작품이 무엇인지를 지켜보았다. 그건 단순하지만은 않은 깨달음이었다. 가령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방식의 차이나(그중 나는 그냥 지도를 못 보는 사람이었다) 넷이 추구하는 여행이 얼마나 다른지 또는 그사이에 어떤 겹치는 지점이 있어 함께 여행을 떠난 건지 같은 것들을 포함했으니까. 교차하는 길과 언어 틈에서 나는 아주 혼란했고, 미완성의 지도는 어느 때보다도 길을 헷갈리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목적지 없이 지도를 보지 않고도 당당히 걷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 편안하지 않더라도, 친구들은 군말 없이 함께 걸어줬다. 불완전한 이름을 제대로 부르려는 시도는 한 번도 성공한 적 없지만 홍콩은 그런 여행자들에게 친절한 나라였다. 길을 잃어도, 어떤 이름도 읽지 못해도 그런 건 때때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똥랭차 덕에 시원해진 몸을 이끌고 구석구석을 걸었고, 함께 몇 번 헤매고 나면 그곳만큼은 아는 길이 되니까.
안녕하세요, 준하입니다. 오늘은 어쩐지 식사 이야기가 적네요. 와니의 글을 읽으셨다면 알 수 있듯이, 함께 떠난 홍콩에서의 식사는 어쩐지 부실하고 서툴렀어요. 대부분의 것이 삐걱거리던 덥고 습한 나라의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역시 불평 대신 입을 닫고 말았던 친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지친 채 웃고, 길바닥에서 단 음식을 까먹었지만 그만큼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고 빠짐없이 즐거웠답니다….
다음 주에는 ‘식사와 배경음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노점에서 흘러나오는 트렌디한 팝송, 혹은 분위기 있는 바의 산통을 깨는 요란한 댄스곡의 재미있는 부조화를 느낀 적이 있다면 웃으며 읽으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다음 주에도 인사를 건넬 수 있다면 기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