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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 수 Sep 18. 2021

대화의 기록 1

2021년 6월부터 매주 시작된 어떤 대화

1. 올해 1월 나는 조금 버거운 일을 겪고 괴로움과 분노, 불면이 지속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큰 사건을 겪은 후 찾아 올 수 있는 일시적인 스트레스성 불안이나 가벼운 ptsd 정도로 생각했지만 편하게 잠을 못 자는 날이 점점 길어지면서 2월에 정신과를 방문했다. 여자 선생님은 내 얘기를 잘 들어주셨지만 알게 모르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조언들을 하셨다. 처방받은 알약 중 하나엔 ‘신경안정제’가 적혀있었는데 그 단어가 왠지 무서웠다. 정신적으로 힘들어진 것은 더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내면 된다라는 생각을 아이러니하게도 정신과를 나오면서 했다. 스스로 이겨내야겠다고 느낀 것이다. 나는 받아 온 약을 하나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몇 달간 여전히 잠을 편히 잘 수 없었고 나는 6월에 다른 정신과를 다시 찾았다)


2. 우울이나 불안이라는 것은 결국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 생각하고 살았다. 우울에서 우울하지 않음의 문턱을 넘어가는 것은 내 정신력의 문제이고 또한 어떤 큰 일을 겪고 난 뒤 찾아오는 마음의 병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니 절대 남 앞에서 울거나 앓는 소리 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타인 앞에서 운다는 것은 나의 약함을 보여주는 일이고 그게 보인다는 것은 나의 치부가 들춰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슬플 땐 항상 혼자일 때 울었다. (심지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나는 습관적으로 눈물을 억지로 참느라 굳이 애를 썼다.)


2-2. 그래서 가끔 지나치게 우울한 감정의 사람이나 끊임없이 위로가 필요해 보이는 상황, 내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을 보면 나는 너무 당혹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타인이 우는 것을 보는 것 만으로도 버겁고 불편하다. 난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타인 앞에선 울지 않으려 꾹 참고 또 참는데 이 사람은 왜 내 앞에서 이렇게 오열을 하는 걸까, 내가 뭐라고 말을 해주면 좋을까,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너무 난처해진다. 삼십 대의 어른이 되어도 우는 사람을 따뜻하고 여유 있게 위로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3. 나의 부정적인 감정이나 어떤 좋지 않은 사건을 주변 사람들한테 털어놓는다는 건 나의 얘기를 함으로써 일시적인 어떤 해소를 위한 것일 때가 많다. (나는 솔직하게 내 얘기를 말로 표현할 때 스트레스가 풀리곤 한다.) 가끔 다운되고 부정적인 주제의 얘기를 할 때는 상대방한테 너무 깊게 나의 감정이 전이가 되는 게 신경 쓰여 마지막엔 꼭 우스갯소리를 하며 쿨한 척을 해버린다. 지금 이러한 고민을 하고 어떤 슬픈 감정을 얘기하고 있더라도 사실 ‘원래는 항상 밝고 유쾌한 정지은’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것이다.


3-2. 예를 들면 이렇다.

“나 어제 우울증 진단을 받았어. 심지어 중증이라서 최소 6개월에서 1년이나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는 거야. 내 발로 다시 찾아 간 병원이긴 하지만 믿을 수가 없어서 재차 물었지. 제가요? 선생님, 그럴 리가 없어요. 겪은 일이 좀 버겁긴 해도 저는 일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운동도 매일 하고요. 낯을 조금 가리긴 하지만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해요. 그리고 말도 많고 개그욕심도 있고 말하는 것도 좋아해요. 최근 불면증에 감정 기복이 신경 쓰여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우울증 일리는 없어요. 라고. 근데 밝은 사람도 우울증이 올 수 있다는 거야. 우울증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대. 치료하지 않으면 처해진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코 완벽하게 나아질 수는 없다는 거야. 생각해보면 우울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연예인들이 어제까지만 해도 밝은 모습의 셀카를 인스타에 올렸는데 다음날 그런 선택을 하는 것처럼 종잡을 수 없는 건가 봐. 그러니까  혹시 며칠 카톡  읽으면 한강  온도 확인하러   알아라! 캬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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