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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 수 Feb 24. 2023

신비주의 개구리

우물 안 개구리의 열등감

20대 중반, USO라는 미국 NGO 단체에서 인턴을 했었다. 군부대 안에 있는 특수한 위치의 센터여서 내 또래의 카투사들이 많았다. 그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을 때면 나는 말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들의 다수는 부유한 유학생이었고 이따금씩 늦게 군대를 온 고학벌의 전문직인 사람도 있었다. 나는 오히려 미국인들보다 그 한국인들 사이에서 오히려 버벅거리는 쭈구리 좁밥이 되곤 했다.


어느 날엔 University of Pennsylvania 유학생이 나에게 학교와 전공을 물었는데 괜히 얼굴이 새 빨개져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선 종일 의기소침해져 있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의 또래가 대학생 인턴으로 새로 와 있으니 별 다른 숨은 의도 없는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지금의 연륜과 짬바로는 ‘우와 아이비리그 학생 실제로 처음 봐요! 그 말로만 듣던 아이비리그.. 학교 좋아요? 엄청 크죠? 공부만 잘해서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SAT 많이 어렵죠? 수능보다 더요?’라고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내가 궁금했던 걸 속사포로 모두 쏟아냈을 텐데. 대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개구리였던 당시의 나에게 여태 만나 본 적 없는 내 또래의 좋은 집안, 화려한 고스펙은 동경과 부러움을 넘어 열등감 그 자체였다.


나는 그 자리에 가는데도 일 년이나 걸렸고 그 일 년간 하루 10시간씩 토플 공부를 했다. 심장이 터질 듯한 세 번의 영어 인터뷰를 한 단계씩 통과하면서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듯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되지도 않는 영어로 미국인들에게 어떤 설명을 하고 배려 따윈 없는 속도로 말하는 전화를 받고 있노라면 좌절스러운 순간이 훨씬 더 많음을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나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매일같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주해야 하는 괴로운 일이기도 했다.


왠지 항상 여유로워 보이는 카투사들은 그런 나에게 질투의 대상이었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부류였다. 나의 행동과 말에서 열등감이 묻어날까, 혹시라도 찌질한 모습이 보이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느라 그들을 늘 피해 다녔는데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나는 ‘말 없고 일만 하는 신비주의 직원’이라는 소문이 났다. 그들과 어울려 주말 시내 구경을 하며 유쾌하게 지내는 다른 직원들이 부러웠지만 나는 또 ‘신비주의’라는 그 틀에 내 스스로가 갇혀 결국 어울리지 못했다. 가슴엔 열등감 덩어리를 안고 있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신비스러운 모습을 깨고 싶지 않았던 모순적인 면도 있었던 거다.


약 십 년이 흘렀다. 나는 나의 열등감을 이제는 드러낼 줄 안다. 세월과 시간이 안겨다 준 어쩌면 선물 같은 리빙 포인트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까지 내 안의 어떤 열등감을 다스리지 못하고 사로잡혀 있다면. 아찔하다. 그리고 상대는 분명 그것을 알아챈다.

“서울에서 집을 산 게 보통일이냐? 나 배 아프게 부러워. 그래서 오늘 밤부터 한동안 앓느라 잠도 못 잘 것 같아. 성공이란 이런 거구나. 이건 향수 냄새야? 아니 이건 성공의 냄새야. 너한테 지금 막 나는 거 같애.”


이제는 솔직하게 얘기한다. 그 편이 훨씬 내 마음에 안정과 여유를 가져다준다. 상대방의 기분 또한 띄워줄 수 있는 말들이자 나의 질투를 똑바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열등감을 느낀다. 그리고 오롯이 나의 열등감과 제대로 마주할 때 내가 건강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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