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머문 식탁
어렸을 때 엄마는 일요일 아침에 떡볶이랑 김밥을 자주 말곤 했었는데 그 날엔 방문을 타고 들어오는 김밥 냄새와 디즈니 만화동산 시그널 소리에 벌떡 깼다. 아, 떡볶이 국물에 김밥을 찍어 먹으며 디즈니를 보는 초딩의 일요일 아침이란. 다 싸고 남은 달걀 지단 종종 썰어 김밥 쌓은 접시 한 편에 두면 나와 정은지는 더 큰 조각을 집어가려고 눈치싸움을 했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우리는 항상 물었다. 엄마 내일 김밥 싸?
겨울에는 내복 바람으로 접시를 들고 소파에 앉아 만화를 보며 먹었다. 여름에는 콧잔등에 땀흘리며 매운 거 먹으랴 디즈니 보랴 한 눈 팔다 행여나 거실 대자리 틈에 떡볶이 국물을 흘리기라도 하면 (엄마는 내가 흘리는 것만 기다리고 있었는지) 나는 순식간에 목덜미를 냅다 맞았다.
나 정말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데 김밥 먹으려고 산에 올랐다. 나에게 이 정도다. 내가 김밥에 이렇게 약하다. 정상 바위에 퍼져 앉아 라이온킹을, 신데렐라를, 좋아했던 무릎에 구멍 난 파란색 미키마우스 누빔 내복을 떠올렸다. 그리고 정글북의 후반부, 인간 여자애가 시냇물을 기를 때 모글리를 홀리며 부르던 노랠 흥얼거리며 김밥을 씹었다. 대단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