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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 수 Nov 02. 2019

김밥예찬 2

우리가 머문 식탁

누워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장을 봐와서는 열두시도 훨씬 넘은 밤에 김밥을 쌌다. 집에 갈 때 마다 엄마에게 순위를 매긴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보내는데 김밥은 항상 top 5다.

오이 채썰어 단초물에 담그고 당근 볶고 달걀 지단을 부쳤다. 어질러진 싱크대를 보는 순간 대충 하긴 글렀음을 짐작했다. 참치에 다진 청양고추를 넣어 마요네즈를 섞고 밥에 참기름과 소금간을 한 뒤 식히면서 잠시 쉬는데 가슴골에 땀이 흘렀다. 손질하는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처음으로 김밥이 한 줄에 2-3천원 하는 것은 정말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밥은 그냥 사 먹으라던 엄마 말이 진심인 것도 이젠 알겠다.

음식하는 사람은 냄새에 질려서 잘 안 먹게 된다는데 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싸면서 세 줄을 먹었는데. 내일 수업 때 싸가서 초딩들에게 인기를 얻을거다. 그리고 저녁에는 콩나물국 끓여서 같이 먹을거고 남으면 계란물 입혀서 구우면 된다. 소풍날 아침에 눈 뜨면 온 집에서 나던 그 냄새와 새벽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김밥으로 끼니를 떼웠던 고3 입시 시절이 떠오르는 추억이 떠ㅇ,, 아, 김밥은 그냥 너무 맛있다.

대충 떼우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쌓아둔 김밥을 보며 건강하게 나를 잘 먹여 살리는 일에 소홀하지 않는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우리가머문식탁 #김밥예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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