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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경옥 Oct 25. 2022

출퇴근 해방일지

왕복 3시간의 고독한 출퇴근. 역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불안함은 현실이 되었다. 

출근길, 너무 깊은 잠을 자버렸는지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다시 반대편에서 오는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타면 얼추 잘 도착할 거야.'

아침부터 머릿속이 복잡하다.



첫 학교는 비행기가 잘 보이는 공항 근처에 있었다. 비행기가 가까이 지나갈 때면 교실 수업을 하다가도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심지어는 비행기가 지나가는 길에 운동장에 큰 그림자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원래 사는 곳에서는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갈 때면 진귀한 광경이라도 본 듯 모두가 하늘을 보며 신기해한다. 그런데 학교 근처 주민들은 비행기가 지나가도 본인이 하던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 학교에서 적응해서인지 나 역시 이젠 하늘에 비행기가 떠도 그리 신기하진 않다. 


교사 임용시험을 치를 때는 먼저 근무할 지역을 고른다. 지역별로 티오가 나오기 때문에 경쟁도 지역 안에서만 한다. 아무래도 티오가 더 많은 지역이면 합격할 확률이 높을 것 같아 고민도 해봤지만, 본래 살던 집을 떠날 자신이 없어서 서울지역을 선택했다. 원래 거주지 근처에도 학교가 많이 있었고 교통편도 좋은 편이라 발령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합격의 기쁨도 잠시, 발령 난 학교 위치를 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서울에 있는 학교이긴 하지만 집에서 거의 한 시간 반 가까이 가야 도착할 수 있는 학교였다. 공립학교의 발령이란 교육청이 정해주는 학교에 나가 근무하겠다는 각오도 되어있어야 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친구는 경기도 지역에서 합격했는데 오히려 우리 집과 30분도 걸리지 않는 위치로 발령받았다. 수험생 시절에는 합격만 해도 세상을 다 얻을 것 같았는데 인간의 간사함이란,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버텨가며 살아야 할까 막막해질 뿐이었다.



출근 시간은 8시 20분이다.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집 밖을 나와 열심히 달린다.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매일같이 지하철 시간에 맞춰 달리기를 했다. 머리를 감은 후 덜 말린 탓에 물이 뚝뚝 흐른 상태로 달리기도 부지기수였다. 다행인지 거주지와 학교는 거리가 멀어서 이런 나의 초췌한 몰골을 본 학생은 없다.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이면 지상으로 나가 세상을 볼 수 있다. 또다시 버스로 갈아타 학교에 도착, 이미 기진맥진이다. 자가용을 이용해 출근을 해보려고 시도도 해보았는데 서울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다 보니 대중교통과 시간이 거의 비슷하게 소요됐다. 퇴근길은 운이 좋지 않으면 3시간 가까이 걸려버린 적도 있다. 서울이 이렇게 큰 지역이다.

같이 합격해서 만난 동기 선생님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집이 학교 저 반대편 종점역 근처였다. 퇴근을 같이 하는 날이면 지하철에서 굿바이 인사를 한 후 나보다 20~30분은 더 가야 집 근처 정류장에 도착한다. 새벽 요금을 내가며 2시간 걸려 출근하다니, 남의 불행을 보고 안도하면 안 되는데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 와중에 이 선생님한테 부러운 게 있다면 출퇴근 모두 지하철 자리에 앉아서 오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퇴근 때는 쉽게 앉을 수 있었지만 출근 때는 눈치 싸움을 성공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역, 어느 칸에서 사람이 많이 내리고 타는지, 어떤 사람이 곧 내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지까지, 첫 출근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지하철계 자리 사수 달인이 되었다. 


지하철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일단 모자란 잠을 보충할 수 있다. 물론 집이 멀지 않다면 애초에 조금 더 잘 수 있었겠지만. 학교 일이 많다면 지하철에서 미리 할 수도 있고 남은 일을 집에 가면서 해결할 수도 있다. 꽤나 집중이 잘 된다는 것도 신기하다. 마치 지하철이라는 독서실에서 사람들의 움직이는 소음이 백색소음으로 활용하는 것과 같다. 지하철 안에서의 한 시간이 너무 답답하지 않아야 하니까 보조 배터리는 필수이다. 탑승 전 여행에 대비한 화장실 들리기, 음악을 들을 거라면 플레이리스트는 30곡 이상을 준비하기 등 사전 준비사항이 많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결국 지하철 한 정거장, 한 정거장 지나 출근했고, 그 세월 지나 근무 기간을 모두 채우는 날도 왔다. 출퇴근이 버거웠는데도 5년을 꽉 채워 근무한 그 세월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이후 거주지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발령을 받아 근무하니까 삶의 질이 상당히 높아진 기분이다. 


첫 학교는 집에서 멀다고 참 많이도 툴툴댔고, 지금 와서 다시 출근하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리움, 애틋함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거리가 멀어 쉽게 갈 일이 없는 동네여 선지 저 머나먼 고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좋게 생각하면, 먼 학교에서라도 교사가 필요하다는 티오를 내주었기 때문에 임용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거다. 고마운 학교다.


자가용을 운전해서 슥슥 출근하는 지금은 오히려 학교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 알 틈이 없다. 그러고 보면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 호선의 지하철 역 이름을 거의 외운다며 자랑하던 과거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전혀 모르는 동네지만 버스를 타지 않고 지하철역이 보일 때까지 걸어가 보겠다는 패기를 부렸던 일도 있다. 지하철 안에 혼자 외로이 앉아 학교 일과를 돌아보며 우울해하던 적도 있다. 가끔 과거의 내 모습과 지하철 풍경이 한 장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떠오를 때면 피식하고 웃게 된다. 


그렇다면, 혹시 지금의 힘듦도 결국 나중에는 그리워질 수 있을까. 

웃으며 돌아볼 날이 있을까. 

오늘을 꾹꾹 눌러 담아 살다 보면 이 하루가 추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역시,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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