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경옥 Oct 24. 2022

대화하는 수업


“자 그럼 앞으로 나와서 이야기해볼까요?”

지목받은 학생들은 흔들리는 동공을 숨기지 못한다. 


‘걱정 마 얘들아, 쌤이 민망하지 않게 해 줄게.’ 

선생님이 속으로 응원하는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그들은 용기 내어 일어서서 터벅터벅 걸어온다. 



대학교에서 교직 강의를 들을 때면 교수님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매번 강조하시던 게 있다. 학교에 가면 강의식 수업에 의존하지 말아라, 조별 수업 등을 활용해서 협동학습을 해라, 결국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을 구성하라는 것이다. 사실 중, 고등학교 때도 조별 수업을 한 적이 별로 없었고 강의식 수업이 익숙했기에 실제로 그게 가능할지 큰 기대감은 없었다. 과연 학생이 수업에서 말을 많이 하고 참여하게끔 유도한다 해서 좋은 수업일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래도 교육방향의 흐름을 따라야 하기에 대학교 과제로 수업실연을 할 때면 모둠을 만들어 수업을 하는 것처럼 가상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지도안(교수학습지도안)을 설계할 때도 학습 전개 부분에는 조별 학습을 넣었다. 교사 임용 2차 시험에도 수업지도안 작성 및 수업실연 과정이 있는데 당연하게 조별 활동을 계획해 넣었다.


교단에 서기 전까지는 수업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다. 그런데 교사로 부임하자마자 막상 수업에 들어가려고 보니, 한 시간 내내 강의식 수업을 진행하는 게 두려웠다. 혼자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공허함을 참을 수 없었고, 결국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교사가 되었다. 대학 교육에서 배운 여러 수업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꺼내 든 것이다. 교탁 앞에 서 있는 '내가' 수업 한 시간, 한 시간을 버티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게 첫 수업부터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했고, 지금까지도 혼자만 수업을 진행해본 일이 거의 없다.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이 거창한 것은 아니다. 매 수업마다 조를 구성해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수업 중간중간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수업 방향의 변화를 주며 진행을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무의식적으로 주는 피드백이 수업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학생을 참여하게 하는 수업이 매번 순탄하게 흘러갈 수만은 없다. 특히 선생님과 학생, 학생과 학생끼리도 어색한 학기 초는 정말 어렵다. 한 번은 1학기 둘째 주쯤이었는데 모둠을 짜서 아이들을 앉혀놨더니 서로를 눈싸움하듯이 쳐다보며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수업 한 시간은 얼음이 낀 듯 오싹했고, 아이들도 나도 힘들었다. 수업종이 치자마자 교실을 벗어나고 싶어서 달리듯이 운동장에 나갔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며 한 바퀴 걷고 있는데 눈물도 찔끔 난 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지금까지도 그날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로 그날의 수업을 곱씹게 된다. 


'그래,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어느 정도 여유를 줘보자, 그 어느 쪽에도 실망하지 말자.'


수업은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같은 방식으로 같은 내용을 지도하더라도 반마다, 학생마다 그 반응이 다르다. 그래도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은 학생들이 결국 마음을 열고 수업에 참여해준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말로 표현 못할 희열을 느낀다. 


수업을 할 때마다 배우고 커가는 중이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교실 앞문을 열어 나올 때면 뿌듯함에 어깨가 들썩일 때고 있고 한껏 작아져버릴 때고 있다. 수업 컨디션에 따라 기분이 오락가락한 것은 아주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섬세하게 수업에 대해 반성적 태도를 가져볼 줄 안다는 것이지만 그만큼 변수에 예민한 감성파 선생님이라는 것이다.




내 수업 방식을 표현하자면 ‘대화하는 수업’ 정도가 알맞겠다. 강의식 수업이 두려워 시작한 것이지만 이제는 나의 수업 방식이 마음에 든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수업이 좋다. 그들의 눈빛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민하고, 앞으로 진행될 수업을 같이 바꿔나가는 게 좋다. 개념을 설명할 때, 조를 구성해서 수업할 때, 수행평가를 치를 때도 대화하고 싶다. 따뜻하고 친근한 선생님이고 싶다.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몸 일부를 완성해나가는 느낌이 들 수 있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학습을 하게끔 도와주고 싶다. 


바람직한 수업 방식은 그 누구도 확실히 정의할 수 없다. 선생님의 성향도 다르겠지만 과목 자체의 성격도 다 다르고 학생들의 학습 방식도 다 다르니까. 심지어 강의식 수업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할 때도 있다는 점도 동의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선생님들은 모두 각자의 수업스타일이 있다. 아이들은 다양한 선생님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예비 사회인으로서의 지혜를 얻을 것이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지금까지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수업장면이 있다. 스쳐간 학생 중 누군가도 학창 시절을 떠올렸을 때 나의 수업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선생님 수업은 대화하듯이 친근했다고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교무실 내 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